세 번째 후기에서도 밝혔다시피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진 저자와 역자, 편집자의 생각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며, 나오고 난 후엔 독자들의 생각이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한 권의 책을 둘러싼 여러 요인들이 부딪히고 합력하며 한 권의 책에 대한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독자들끼리 읽은 소감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책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중요하다. 이번 모임엔 역자와 편집자가 함께 참석했으니, 책에 대한 주변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 생활 자체가 철학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충분히 공감한다.
『곤란한 결혼』의 곤란한 출간 과정
역자인 박솔바로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 지지학교를 운영하고 계신 준규쌤의 아들이다. 준규쌤과는 함께 일을 했던 적이 있어 역자와도 자연스럽게 몇 번 스치듯 마주친 적은 있지만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친숙한 듯 어색한 사이이고, 아는 듯 모르는 사이인 그렇고 그런 관계란 말씀. 그래서 이번 모임을 통해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목소리 톤이나 억양에서 준규쌤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좋아하면 닮아간다’던데, 역시나 그 말은 진리였던 거다.
첫 질문은 왜 하필 많고 많은 책 중에 『곤란한 결혼』이었냐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들으면 누구나 거창한 의미를 얘기하고 싶어진다. 누군가 나에게 “왜 한문 교사가 되고 싶었나요?”라고 물으면, “한문은 언어잖아요. 언어는 열쇠라고 생각해요. 그 문자로 사유하고 생각하던 시대를 열어젖힐 수 있는 열쇠 말이죠. 그래서 지금과는 다른 문화와 사고방식 속에 살던 시대를 지금의 아이들에게 소개해주고... 이러쿵 저러쿵....”라는 식으로 의미심장하게 말하려 하듯, ‘비혼시대에 경종을 울리고 싶다’든지, ‘결혼을 하지 못해 눈칫밥 먹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든지 하는 식의 답변이 돌아올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역자는 단호하고도 한 치의 꾸밈도 없이 “일본에선 1년 전에 나온 신간인데, 아버지가 ‘한 번 번역출간해 보는 건 어때?’라고 권유해줘서 해보게 됐어요”라고 대답한다. 한껏 자신을 띄울 수 있는 기회임에도 있는 그대로 말한 것이다. 그건 마치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왜 여기 이 세상에 왔는가?”라는 물음에 “나는 지구에 춤추러 왔습니다”고 대답하던 박진영의 기백이 느껴졌다. 두 대답 모두 ‘무겁기보단 가볍게, 진지하기보단 경쾌하게, 의미심장하기보단 생기발랄하게’를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 엄청난 물음에 이처럼 간단하게 자신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
그런 대답에 이어진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이야긴, 여느 소설 못지않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전개로 긴장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처음 역서를 출간하는 일이니만치 어떤 과정에 의해 책이 나오는지 몰랐다고 한다. 그저 단순히 ‘선착순으로 빨리 번역한 사람이 출간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달려들어 밤낮 가리지 않고 번역에 몰두했단다. 번역을 마친 후 그 원서를 출판사에 내밀면 별 다른 어려움 없이 출판이 착착 진행될 줄만 알았는데, 현실은 그처럼 간단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번역서의 출간은 선착순이 아닌, 계약순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선 『곤란한 결혼』이란 책을 출간하고 싶은 한국 출판사가 일본 출판사와 계약을 마친 후에 역자는 번역을 할 수 있고 번역이 마친 후에야 책으로 나오는 시스템으로,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더욱이 민들레 출판사가 일본 출판사와 계약을 맺을 때만 해도 이미 3군데 출판사에서 계약 신청을 해놓은 상태여서, 상황은 오리무중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다른 출판사가 계약을 따게 되면, 몇 달간 고군분투했던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니 말이다. 그런데 행운의 여신은 그의 무모한 도전에 감동을 받았던지, 민들레 출판사가 계약할 수 있도록 했고 이렇게 책으로 나올 수 있도록 했다. 이쯤 되면 천운이라 할 수 있다.
▲ 이런 여러 고비를 넘겨가며 마침내 이 책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민들레 도서목록에 『곤란한 결혼』이 들어갈 만한가, 그렇지 않은가?
그런 역자의 힘겨웠던 출간 과정에 대한 이야기만큼이나 편집자의 이야기도 꽤나 흥미로웠다. 민들레 출판사는 지금까지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교육서를 출판해왔다. 그래서 『넘나들며 배우기』, 『바보 만들기』,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와 같이 충분히 논쟁적인 내용을 담은 책들을 꾸준히 출판해왔던 것이다. 그런 출판사의 성격에서 보자면 『곤란한 결혼』이란 교육서보단 사회과학서나 자기개발서에 가깝기에 뜬금없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처음엔 이 책을 출간할지 말지에 대해 내부에서 치열한 논쟁까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이 단순히 결혼에만 국한되지 않고, 교육과 결혼을 사회 유지의 두 가지 축으로 본다든지, 결혼을 해서 낯선 타인과 함께 사는 어려움을 통해 개인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기회로 본다든지 하는 부분은 충분히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기에 출판하기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모임에 참석한 어떤 분은 “이 책이 민들레의 도서목록에 그렇게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교육은 단순히 한 현상내지는 한 과정에 국한된 게 아닌, 삶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결혼까지 사유의 대상으로 놓고 고민해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민들레에서 나올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 민들레의 도서목록에 끼기에 [곤란한 결혼]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고 생각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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