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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도올선생 중용강의, 14장 - 3. 기자의 시건방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14장 - 3. 기자의 시건방

건방진방랑자 2021. 9. 18.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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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기자의 시건방

 

 

본인이 있는 앞에서 이런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잘 모르겠는데, 내가 오구라씨를 만난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오구라씨가 世界(せかい)라는 잡지의 기자와 함께 이리 원광대학교에 한 번 왔었어요. 세계(世界)라는 잡지의 경향은 우리나라의 신동아보다는 사상계에 가까운 잡진데, 1945년에 창간되어서 50년 동안 일본 사상계를 지켜온 잡지입니다. 참 아이러니칼한 게, 일본의 역사는 극우의 역사인데 반하여, 일본 근세 지성인들은 모두 극좌의 세계라는 거예요. 그 사람의 경향이 가 아니면 아예 지식인 축에 끼지도 못했습니다. 아주 대체적으로(roughly) 하는 말이지만 우리나라 7.80년대도 다 그랬어요.

 

세계(世界)편집장의 부탁으로 오구라씨가 나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편지는 못 받아 봤지만, 그 내용은 세계(世界)50주년 기념으로 1월호에 ‘20세기 아시아 문명의 새로운 비젼을 그리고 싶은데, 필자를 구하다 보니까 김용옥만한 필자가 없는 것 같아서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다고 하더라고. 그런 건 나에게는 아주 고마운 일이죠.

 

그런 목적으로 그 기자하고 오구라씨가 이리에 갔지만 나를 못 만나서 거기서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날 전주로 찾아왔는데, 아침에 내가 학교로 가니까 누가 와 있다고 그래요. 학생들이 그 말을 듣고 또 어떤 놈인지 야단 되게 맞겠구나싶어서 또 난리가 났는가 보다 하고 있는데(왜냐하면 외부에서 나를 찾아온 사람치고 나에게 야단 안 맞은 사람이 없거든), 학생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내가 그 두 사람에게 상당히 정중히 대했어요. 왜냐하면 내가 세계(世界)라는 잡지가 어떤 잡지인가를 알고 있고, 그런 잡지사에서 나를 알아보고 필자로 삼자고 글을 부탁하러 왔기 때문에, 나는 예의를 갖추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오구라씨가 앉아 있지만, 오구라씨는 잘 모를 겁니다. 사실은 고백을 하는 건데. 우선 그 기자라는 놈이 젊은 애예요. 거기다가 기자들 특유의 착각성을 가지고 건방지게 구는데 뭔가 문제가 있더라고. 기자들 말이죠, 자기들이 언론의 파워를 아니까, 아주 쉽게 누구 한 사람쯤은 병신 만들 수도 있고, 마치 자기들이 세계를 움직이는 것처럼 착각하기 쉬운데, 그건 아주 잘못된 점입니다.

 

오구라씨는 나에 대해 책을 읽어서 잘 아는데, 이 친구는 나에 대한 사전지식(information)이 없는 놈이야. 아마 오구라씨를 통해 추천을 받은 모양인데, 좋아! 그것까지도 봐줄 수 있다고 해. 그러나 이 녀석이 나를 찾아와서 하는 행동이 가관이더라구. 나는 말이죠, 외국 사람 대할 때는, 내가 여러분 대할 때와는 다르게 우리나라 지성계를 대변하는 한국의 선비로서 조금도 부끄럼이 없는 행동을 합니다. 그런데 이놈이 나를 척 보니까 애숭이 같거든. 모자 쓰고 잠바 입고 거기다가 학생이야. 원광대학교 학새! 그래서 우습게 보였는지, 이놈이 나를 보고 처음 한 말이 아나타(あなた, 당신)’일본어의 일상적 회화에서 아나타라는 말이 물론 그렇게 천박한 느낌의 말은 아니다. 일본어에서는 우리말보다 공대어(honorific system)가 많이 단순화되어 있고 평준화되어 있다. 허나 김선생님께 글을 부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김선생님의 사회적 위치를 상식적으로 감안할 때 아나타라는 호칭은 자연스러운 말이 아니다. 우리 어감으로 누굴 그렇게 처음 만나는 마당에 “‘당신에게 글을 부탁하려고 찾아왔습니다.”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선생님의 고명을 듣고운운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평범한 말씨일 것이다. 이런 마당에 아나타운운한다는 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상대방을 얕잡아 보려는 의도가 개재되어 있음을 감지 안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당연히 센세이(せんせい, 선생님)’가 되었어야 한다. 어떻게 지가 나를 놓고 감히 아나타(あなた)’라고 그럽니까? 출판계에서만 말해도 나는 통나무출판사를 지금의 위치로까지 끌어올린, 자기네 나라의 이와나미 소덴(いわなみ しょてん, 岩波書店)의 창시자와 같은 그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인데, 어떻게 감히 그런 식으로 말을 해. 나는 내색 않고 정중하게 내 감정을 숙였지.

 

그러면서 요놈을 한 번 골탕을 먹여야 하겠구나, 본때를 한 번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지금 식사를 제대로 대접할 형편이 안 되니, 아무 데서나 식사를 하자고 하고 구내식당에 앉혀 놓고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김용옥의 일본말은 유창하니까, 별 어려움 없이 내가 전하고 싶은 의사를 표현해 들어갔지. 그러니까 짜식이 조금은 기가 죽는 것 같더라고. 그런데, 어쨌거나 내가 집으로 초대를 하려고 했어요. 내가 웬만해서는 우리 집에 초대를 안 합니다. 우리 원광대학교 총장도 내 집에 오고 싶어 하는데 못 왔고, 전주에 살면서 누구도 내 방으로 초대한 적이 없어요. 사실, 이 이야기도 야회 가서 하려고 했는데, 지금 고백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초대한다고 이야기하니까, 이 친구가 어떻게 나왔는지 아십니까? 오구라씨가 변소에 갔다가 올 때쯤인데, 오구라씨를 딱 보면서 오구라씨는 자기가 신용하는 사람이고 어쩌구. 하더니, 나에게서 돌아서면서 오구라씨에게 하는 말이 우치니 츠레데이쿤다데(うちに つれていくんだて)”. “쟤가 자기 집에 우리를 데려 간대라는 말이거든. 그 순간에 나는 그 새끼 귓싸대기를 갈겨 버릴려고 했어요. 그러나 어린애 말버릇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했기에 참았죠. 내가 없을 때면 또 몰라, 어떻게 내가 보는 앞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냔 말이야. 거기서 걔는 완전히 나간 거야. 회복할 수가 없어!

 

그런데 그때까지도 걔는 나의 감정 상태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내가 세계(世界)에 기고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줄 알고 있더라고. 그놈은 이제 죽었지. 그래서 내가 정중하게 집에 데려다 놓고서는, 나에게 무릎 꿇고 센세이(せんせい)’하게끔 해서 돌려보냈어요.

 

이건 서브틀(Subtle)한 감정의 문제지만, 한국 사람들은 이런 서틀한 문제들을 외국사람 앞에서 감지할 능력이 없습니다. 나는 결코 오구라씨 같은 일본 지성인들이 한국을 동경해서 찾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걸 바라지도 않습니다. 단지, 일본사회가 가진 문제점을 깊게 반성하고 일본사회를 개혁시킬 수 있는 위대한 지성인들로 성장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국을 이해해 달라는 이야기는 안 해요. 그렇지만 그런 상황에서 그 기자 같은 놈이 한국에 와서, 한국의 교수들에게 세계잡지 ‘50주년 기념 특대호에 당신의 글을 헤드 아티클(Head article, 서문)로 싣고 싶다고 하면, 일본에서 유학이나 하고 돌아온 사람 같으면 환장하고 달려들겠지. 그렇지 않겠어요? 그래서, “그런 사람 많으니까, 그런 사람 데려다가 실어라!”라고 해 버렸지.

 

일본인들 특유의, 굉장히 겸손한 것 같으면서도 오만한 그 잘못된 버릇이 감히 김용옥 앞에서 그 따위 말버릇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오구라씨는 눈치를 못 채고 그 뒤로도 나에게 계속 세계잡지에 이러저러한 것을 기고해 달라고 그러는데, 문제를 인식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 한, 세계편집장이 와도 어림없어요. 모든 상황에 있어서 그런 식의 시각 속에서 한국 사람으로서 프라이드를 갖고 산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 사람이 나를 알고 거기까지 찾아 왔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최대의 경의와 한국의 지성인들을 대접할 공경심을 가지고 일본사회가 가진 문제점을 자각하려는 태도로 무엇인가를 시도하려고 해야지. 어떻게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그렇게 건방지게 나옵니까? 그러나 또 하나의 문제는 어리석은 기자애들의 장난에 한국 지성인들이 놀아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 사회의 문제가 있는 것이고, 그런 일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수준이 결정되는 거예요.

 

어떠한 경우에도, 위에 있으면서 아랫사람을 능멸하려 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아래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끌어내리지 마라! 모든 인간사회에서 상하관계는 명백한 현실입니다. 그걸 무시한 데모크라시(Democracy, 민주주의)는 환상일 뿐이지요. 인류의 앞날이 서구문명이 제시한 데모크라시라는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명백한 현실을 바로 보고, 그 현실 속에서 인간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중용(中庸)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상적인 인간세의 모습은 무엇인지 본문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합시다. 나와 남의 평등을 사회보장을 통해서만 받으려 하지 말고[正己 不求於人], 궁극적인 가치 기준은 나에게 있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則無怨 上不怨天 下不尤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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