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1. 반어적 용법과 상상력
君子之道, 費而隱. 군자의 길은 명백하면서도 또한 가물가물 숨겨져 있다. 費, 用之廣也. 隱, 體之微也. 비(費)는 용(用)의 넓음이다. 은(隱)은 체(體)의 작디작음이다. |
여기 ‘비(費)’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비용’할 때 쓰는 말이지만, 이 구절에서의 뜻은 영어로 하면 ‘익스텐시브(extensive, 광범위한)’, ‘에비던트(evident, 명백한)’란 말입니다. 즉, 광범위하다, 명백하다, 어디든지 가지 않는 데가 없다는 뜻이죠. 주자 주(註)에 ‘비 용지광야(費 用之廣也)’라고 했듯이 그 기능이 한없이 넓은 것을 말합니다.
그 다음에 접속사 ‘이(而)’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그리고’의 뜻이 있고, 앞과 뒤가 반대될 때 연결해 주는 뜻이 있어요. ‘∼이면서도 ∼이다’라는 식으로 상반되는 것을 연결할 때 이 ‘이(而)’를 씁니다. 여기서도 그 뜻이죠. 비(費)하고 은(隱)하다. 비(費)는 에비던트(Evident)한 것이고, 은(隱)은 상당히 서브틀(Subtle, 섬세한)한 것, 아주 미묘하다는 말인데, 히든(Hidden), 즉 숨겨져 있다는 겁니다. 정반대의 개념이 ‘이(而)’를 통해서 연결되고 있죠. 영어로는 그냥 ‘벗(but)’ 그러면 되요. ‘∼is extensive and evident but subtle’
그러면, ‘비(費)하면서 은(隱)하고, 은(隱)하면서 비(費)하다’는 게 도대체 뭡니까? 쉽게 이해가 되세요? 이 ‘비이은(費而隱)’은 동양사상의 상당히 심오한 측면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동양사상은 항상 논리적으로 상반되는 개념들을 하나로 꿰뚫는 성격이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반어적 용법이라든가 아주 파라독시컬(Paradoxical)한 스테이트먼트(Statement, 진술)가 상당히 많습니다. 도가(道家)계열의 저술들을 보면 이런 식의 용법이 거의 99%를 차지해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를 깨닫는데 상상력을 동원하라는 겁니다. 우리의 상상력을 사장시키지 말고 자꾸만 길러서, 그것이 다시 우리를 자극시키도록 하라는 말이죠.
비(費)하지만 은미(隱微)하다. 역시 도가계통에서 잘 쓰는 말입니다.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고,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言者不知 知者不言-『노자(老子)』 56장, 『장자(莊子)』 「천도(天道)」]” 그런 식의 말이예요. 또 “접으려면 피고, 필려면 접고[將欲歙之, 必固張之]”, “강하게 하려면 약하게 하고[將欲弱之, 必固强之]” 등등이 도가에 팽배한 논리구조인데, 중용(中庸)이라는 문헌에도 같은 구조가 들어와 있는 것으로 봐서 유가(儒家)에도 도가(道家)적인 사유구조가 들어와 있다고 봐야합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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