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를 보고 지은 제화시
제화산수(題畫山水)
강희안(姜希顔)
仙山欝岧嶢 雲氣連蓬瀛
선산울초요 운기련봉영
茅亭隱巖下 綠竹繞簷楹
모정은암하 록죽요첨영
高人奏綠綺 細和松風淸
고인주록기 세화송풍청
彈成太古曲 超然悟長生
탄성태고곡 초연오장생
峯巒高崒嵂 飛泉瀉天渠
봉만고줄률 비천사천거
噴薄千萬丈 可望不可居
분박천만장 가망불가거
騎驢者誰子 咫尺行趑趄
기려자수자 지척행자저
長嘯一回首 天地眞籧篨
장소일회수 천지진거저 『東文選』 卷之五
해석
仙山欝岧嶢 雲氣連蓬瀛 | 신선 산이 울창하고 깎아지는 듯하니 구름 기운이 봉래(蓬萊)와 영주(瀛州)에 이어져 있네. |
茅亭隱巖下 綠竹繞簷楹 | 띠풀 정자는 바위 아래 숨었고 푸른 대나무는 처마 기둥을 에워쌌네. |
高人奏綠綺 細和松風淸 | 고상한 사람이 녹기금(綠綺琴)을 연주하니 세밀하고 솔바람과 화음하여 맑구나. |
彈成太古曲 超然悟長生 | 탄 것이 태고의 곡조를 이루니 넘어서 장생법을 꺠우친 듯하네. |
峯巒高崒嵂 飛泉瀉天渠 | 봉우리 높고도 험하고 높고 나는 샘물이 하늘 도랑에 쏟아져 |
噴薄千萬丈 可望不可居 | 천만 길이 솟아오르니[噴薄] 바라볼 순 있어도 살 수는 없어라. |
騎驢者誰子 咫尺行趑趄 | 나귀 탄 사람은 누구인가? 지척을 가는 데도 머뭇거리네[趑趄]. |
長嘯一回首 天地眞籧篨 | 긴 한숨에 한 번 머리 돌리는 세상이 참으로 거친 자리 같구나【거저(籧篨): 갈대나 대를 엮어서 만든 거친 자리[粗席]를 말한 것으로, 즉 천지(天地)는 인간에게 있어 덮고 까는 자리와 같음을 의미한 것이다. 유령(劉伶)의 「주덕송(酒德頌)」에 “하늘을 천막으로 삼고 땅을 자리로 삼는다[幕天席地].”고 한 것도 바로 그런 뜻이다.】. 『東文選』 卷之五 |
해설
이 시는 산수를 그린 그림을 보고 쓴 제화시(題畵詩)로, 선계(仙界)를 지향하고 있는 작가의 의식이 잘 드러난 시이다.
산이 신선이 사는 산처럼 울창하고 높으니, 하늘에 떠 있는 구름 기운이 신선이 산다는 선산(仙山)인 봉래와 영주에 이어져 있는 듯하다. 그 산 아래에 띠풀로 이은 정자가 있는데 바위 밑에 고요히 놓여 있고, 그 정자 주변은 푸른 대나무가 처마를 둘러싸고 있다. 그 속에 도인(道人)인 고상한 사람이 녹기금을 타니, 그 가야금 소리가 조용히 솔바람과 어울려 맑다. 그 소리는 태고의 곡조를 이루니, 아마도 초연히 장생법(長生法)을 깨달았겠다.
산봉우리가 높고 높이 솟아 있으니, 엄청난 양의 폭포수가 은하수처럼 쏟아진다. 그 폭포의 위용을 보니, 천만 길을 뿜어 쏟아져 바라보는 것은 가능하지만 살 수는 없겠다. 그런데 그 폭포 밑에 나귀를 타고 천천히 소요하며 가는 저 사람은 누구인가? 먼 거리가 아닌 짧은 거리에서도 머뭇거리며 쉽게 가지를 못하고 있다. 길게 휘파람을 불며 한 번 머리를 돌려 보니, 천지는 참으로 살 만한 곳이로다.
강희안이 이처럼 선계(仙界)를 지향하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훌륭한 목민관(牧民官)이었다. 그의 「행장(行狀)」에, “형조판서로 있을 때에 도둑이 멋대로 날뛰었는데, 공이 옥을 다스린 것이 엄하고 밝으므로 간사한 무리들이 숨어 버려 서울의 감옥이 텅 비게 되었다. 옛날 제도에 감옥이 비게 되면 임금께 아뢰게 되어 있으므로, 낭관이 옥이 비었음을 아뢰자고 하였으나 공이 말리면서 말하기를, ‘고요(皐陶, 순의 신하로 법리에 통하여 형벌과 옥을 만들었음)처럼 법을 잘 처리한 이가 아니면 어찌 감히 옥이 다 비었다고 아뢸 수 있겠느냐?’하니, 부하들이 부끄러워하고 탄복하였다[判刑部時, 盜賊恣行, 公治獄嚴明, 奸徒竄伏, 京獄空虛. 舊制, 獄空則啓之, 郞官請啓獄空, 公拒之曰: ‘若非皐陶淑問 安敢居此?’ 僚佐愧服.].”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 외에도 허균(許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는 강희맹(姜希孟)의 한아(閑雅)한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강희맹(姜希孟)의 「양초부(養蕉賦)」는 대단히 훌륭하며, 그의 시 또한 청경(淸勁)하다. 그 「병여음(病餘吟)」에, ‘남창에 종일토록 세사(世事) 잊고 앉았으니, 뜰엔 사람 없어 새는 날기 배우네. 가는 풀에 그윽한 향내 있는 곳 구하기 어려운데, 묽은 연기 낡은 빛에 부슬부슬 비 내리네’라 하고, 「영매(詠梅)」에, ‘어두울 녘 울타리 가에서 퍼진 가지 보고서, 느린 걸음 향내 찾아 물가에 와 닿으니, 천년의 나부산(羅浮山) 둥근 달이, 지금에 와 비치니 꿈이 깨일 때로세’라 한 시구들은 모두 한아(閑雅)하여 읊조릴 만하다[姜景醇, 「養蕉賦」極好. 其詩亦淸勁, 其病餘吟曰, “南窓終日坐忘機, 庭院無人鳥學飛. 細草暗香難覓處, 澹烟殘照雨霏霏.” 詠梅曰, “黃昏籬落見橫枝, 緩步尋香到水湄. 千載羅浮一輪月, 至今來照夢回時.” 俱閑雅可見].”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72~73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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