奕棋論
백성이 편안한 이유는 육예와 사민이 있기 때문이다
世之人 衣絺絡狐貉 食魚肉菓穀 夜而眠 晝而業 安其身 養其神 無疾病顚連者 何也 以其有六藝也 四民也 六藝之外 無有藝 四民之外 無有民焉
바둑에서 생사를 가르는 듯한 묘한 분위기가 못마땅하게 느껴지다
或曰 堯作奕棋 以敎丹朱 皮氏日休 已辨之矣 余素不能奕棋 非徒不能 亦不欲爲也 十五六之歲 往少年會 大張此技 旁觀四圍 每下一子 必大喧哄曰 某將死 某將活 活者死者 焦思沮氣 若决眞死活者 余瞠目曰 頃刻而有翻覆 言笑而有殺伐 吾未知其可也
바둑, 아무런 이익될 게 없는데 도대체 왜 두는 거요?
有人曰 子安知此趣乎 蒭豢之不若也 子不學則已 如學 當忘寢食 余笑曰 吾性甚魯 但知局方而子圓 未知其動靜虛實之機也 觀不移晷 頭暈目眩 不知蒭豢之不若 奚暇忘寢食乎 是技也 雖入三昧 當敵安有智略 經國安有裨補 但廢業而淪性爾 此技一出 所謂博塞,雙陸奇怪變幻之技雜出 士大夫不知此爲大恥愧 專心以爲務 罔識晝夜 傾家産 廢恒業者 有之 至於爭博道 提殺太子 導雙陸 縱淫皇后 或父子對局 奴主爭道者 亦有之 是父子决勝負之機 奴主懷生殺之心 尤未知其可也 嗚呼 變詐橫流 禮節解惰 將至後世 不見六藝與四民 駸駸然趨于技戱 士不知禮樂之爲何事 民不知農賈之爲何業 然猶欲飽食煖衣 賭其勝負 其所謂絺絡狐貉 魚肉菓穀 何由以生 其何能夜眠晝業 安身養神 無疾病顚連哉 棋之害其亦大矣 老莊旣肆 楊墨刑名 縱橫堅白之術幷出 因是而吾道晦 棋者 六藝四民之老莊也 博塞雙陸奇怪變幻之技 是楊墨刑名縱橫堅白之術也 廓而闢之 孰當如吾孟子者也
요임금이 바둑을 만들었대도 바둑이 아닌 요임금의 도를 배우자
學棋者曰 是堯之所敎也 吾學聖人之所爲 以養吾智 誰敢咎者 余解之曰 如其堯作棋 奈之何不學堯之道 學堯之技乎 吾聞孔子學堯者也禮樂 堯之所嘗爲也 只聞問禮於老聃 學琹於師襄 未聞學奕棋於誰某也 衆其嘲余之不爲棋曰 拙人也 余不懼不知棋之爲拙 懼知棋之不爲拙也 余又慰嘲者曰 棋者 技之雅者也 凡物惑則膠 但存其雅 不賭不爭 閒晝無事 消一二局 猶有古人之道也 -『靑莊館全書』
해석
백성이 편안한 이유는 육예와 사민이 있기 때문이다
世之人 衣絺絡狐貉
세상 사람들이 치격(絺綌 여름에 입는 시원한 갈포옷)과 호학(狐貉 겨울에 입는 따뜻한 갖옷)을 입고
食魚肉菓穀 夜而眠 晝而業
어육(魚肉)과 과곡(菓穀)을 먹으며, 밤에는 잠자고 낮에는 일하며,
安其身 養其神 無疾病顚連者 何也
몸을 편안히 하고 정신을 길러서 질병과 전련(顚連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것)함이 없는 것은 어째서인가?
以其有六藝也 四民也
육예(六藝 예(禮)ㆍ악(樂)ㆍ사(射)ㆍ어(御)ㆍ서(書)ㆍ수(數))와 사민(四民 사(士)ㆍ농(農)ㆍ공(工)ㆍ상(商))이 있기 때문이다.
六藝之外 無有藝 四民之外 無有民焉
육예 이외에 다른 예(藝)가 없으며, 사민 이외에 다른 백성이 없다.
바둑에서 생사를 가르는 듯한 묘한 분위기가 못마땅하게 느껴지다
或曰 堯作奕棋 以敎丹朱
어떤 이는 말하기를, “요(堯) 임금이 바둑을 만들어 단주(丹朱 요 임금의 아들)를 가르쳤다.” 하였으나,
皮氏日休 已辨之矣
피일휴(皮日休 당(唐) 나라의 문인(文人). 자는 습미(襲美))가 그것이 아님을 밝혔다.
余素不能奕棋 非徒不能 亦不欲爲也
나는 본래 바둑을 잘 두지 못한다. 잘 두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한 두려고 하지 않는다.
十五六之歲 往少年會 大張此技
15~16세 때에 소년대회(少年大會)에 갔었는데, 바둑 경기를 크게 벌였다.
旁觀四圍 每下一子 必大喧哄曰
옆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이 빙둘러 바둑알 하나를 놓을 때마다 반드시 크게 떠들썩하게 말하기를,
某將死 某將活 活者死者
“모(某)는 장차 죽고, 모는 장차 살 것이다.”하며 사는 자와 죽는 자가
焦思沮氣 若决眞死活者
초조하게 생각하며 기운이 없는 것이, 참으로 죽고 사는 것을 결정하는 것과 같았다.
余瞠目曰 頃刻而有翻覆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말하기를, “잠깐 사이에 번복(飜覆)이 있고,
言笑而有殺伐 吾未知其可也
웃고 말하면서도 살벌(殺伐)이 있으니, 나는 그 옳은 줄을 알지 못하겠다.”하니
바둑, 아무런 이익될 게 없는데 도대체 왜 두는 거요?
有人曰 子安知此趣乎 蒭豢之不若也
어떤 이가 말하기를, “그대가 어찌 그 맛을 알겠소. 고기맛이 바둑 재미만 못하오.
子不學則已 如學 當忘寢食
그대가 배우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만일 배운다면 마땅히 침식(寢食)을 잊게 될 것이오.”하였다.
余笑曰 吾性甚魯 但知局方而子圓
나는 웃으며 말하기를, “나는 천성이 심히 노둔하여 판은 네모지고 알은 둥근 것만 알 뿐,
未知其動靜虛實之機也
그 동정(動靜)이나 허실(虛實)의 기미는 알지 못하겠소.
觀不移晷 頭暈目眩 不知蒭豢之不若
한 시간도 못 보아서 머리가 아프고 눈이 어지러워 재미가 고기맛보다 좋은 것을 알지 못하니,
奚暇忘寢食乎
어느 겨를에 침식을 잊을 수 있겠소.
是技也 雖入三昧
이 기예(技藝)가 비록 삼매경에 들어갈 수 있다 하더라도
當敵安有智略 經國安有裨補
실제로 적을 만나면 무슨 지략이 생길 것이며, 국가를 다스림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但廢業而淪性爾
다만 일을 못하고 성품을 잡기에 빠지게 할 뿐이다.
此技一出 所謂博塞,雙陸奇怪變幻之技雜出
이 기예가 나오자 이른바 박색(博塞 장기)ㆍ쌍륙(雙六) 등 기괴(奇怪)하고 변환(變幻)스러운 기예가 섞이어 나왔는데
士大夫不知此爲大恥愧
사대부들도 이것이 크게 수치스러운 것인 줄을 알지 못하고,
專心以爲務 罔識晝夜 傾家産 廢恒業者
마음을 오로지 이것에 일삼아 낮인지 밤인지 모르고 가산을 탕진하고 항업(恒業)마저 폐하는 자가 있었으며,
심지어는 장기의 길을 다투다가 장기판을 들어 태자를 죽이기도 하였고,
쌍륙을 두다가 황후를 간음하기도 하였다. 혹은 부자간에 대국하기도 하고,
奴主爭道者 亦有之 是父子决勝負之機
주인과 노복이 길을 다투기도 하니, 이는 부자간에도 승부를 결단하고,
奴主懷生殺之心 尤未知其可也
노주간(奴主間)에도 생살(生殺)의 마음을 품게 하니, 더욱 그 옳은 줄을 알지 못하겠다.
嗚呼 變詐橫流 禮節解惰
아, 속임수가 천하에 유행되고 예절이 해이되어,
將至後世 不見六藝與四民 駸駸然趨于技戱
후세에 육예와 사민은 볼 수 없고 점점 기희(技戲)에만 힘쓰게 되면,
士不知禮樂之爲何事
선비들은 예악이 어떤 것인지 모르게 될 것이며,
民不知農賈之爲何業
백성들은 농고(農賈)가 어떤 것인지 모르게 될 것이다.
然猶欲飽食煖衣 賭其勝負
그러면서도 오히려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고 승부 내기만을 하려 한다면
其所謂絺絡狐貉 魚肉菓穀 何由以生
이른바 치격(絺綌)ㆍ호학(狐貉)ㆍ어육(魚肉)ㆍ과곡(菓穀)이 어떻게 해서 생길 것이며,
其何能夜眠晝業 安身養神
어찌 밤에는 잠자고 낮에는 일하며 몸을 편안히 하고 정신을 길러
無疾病顚連哉 棋之害其亦大矣
병이나 전련(顚連)함이 없을 수 있겠는가? 바둑의 해(害)됨이 크도다.
노장(老莊 노자(老子)ㆍ장자(莊子)의 도교(道敎)를 말한다)이 이미 퍼지매 양묵(楊墨)ㆍ형명(刑名)ㆍ종횡(縱橫)ㆍ견백(堅白)의 술책이 함께 나오니,
因是而吾道晦
따라서 우리의 도[吾道 유도(儒道)를 말한다]는 어두워졌다.
棋者 六藝四民之老莊也
바둑은 육예ㆍ사민에 있어 노장과 같은 것이며,
博塞雙陸奇怪變幻之技 是楊墨刑名縱橫堅白之術也
장기ㆍ쌍륙이나 기괴하고 변환스러운 기예는 양묵ㆍ형명ㆍ종횡ㆍ견백의 술책과 같은 것이니,
그 누가 우리 맹자(孟子)와 같이 깨끗이 물리쳐 버리겠는가?” 하였다.
요임금이 바둑을 만들었대도 바둑이 아닌 요임금의 도를 배우자
學棋者曰 是堯之所敎也
바둑을 배우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것은 요 임금이 가르친 것이다.
吾學聖人之所爲 以養吾智 誰敢咎者
나는 성인이 만든 것을 배워서 우리의 지혜를 기르는데 누가 감히 허물하랴.”하므로
余解之曰 如其堯作棋
나는 설명하기를, “가령 요 임금이 바둑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奈之何不學堯之道 學堯之技乎
어찌하여 요 임금의 도(道)는 배우지 않고, 요 임금의 기예만을 배우려 하는가? 배운 분이다.
吾聞孔子學堯者也禮樂 堯之所嘗爲也
나는 들으니 공자는 요 임금을 예약은 요 임금이 일찍이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다만 ‘노담(老聃)에게 예(禮)를 물었고, 사양(師襄)에게 거문고를 배웠다’는 말은 들었어도
未聞學奕棋於誰某也
‘누구에게 바둑을 배웠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衆其嘲余之不爲棋曰 拙人也
모두들 내가 바둑을 두지 못한다고 조롱하여 ‘옹졸한 사람이다’
余不懼不知棋之爲拙
하지만 나는 바둑을 두지 못하여 옹졸한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懼知棋之不爲拙也
오히려 바둑을 알아서 옹졸한 사람이 될까 두려워한다.”하였다.
余又慰嘲者曰 棋者 技之雅者也
나는 또 조롱하는 사람들을 위로하여 말하기를, “바둑이란 기예 중에서는 고상한 것이다.
凡物惑則膠 但存其雅
모든 물건이 혹하면 빠지는 것이니 다만 그 고상한 것만을 남기고,
不賭不爭 閒晝無事 消一二局
내기를 하거나 다투지도 말고, 일 없는 한가한 대낮에 한두 판을 둔다면
猶有古人之道也 -『靑莊館全書』
오히려 인의 도(道)가 있을 것이다.”하였다.
인용
- 태자(太子)는 오왕 비(吳王濞)의 태자인 오 태자(吳太子)를 말한다. 한 문제(漢文帝) 때 오 태자가 황태자(皇太子)와 술을 마시며 장기를 두었다. 오 태자는 본래 교만하고 건방졌는데, 장기의 길을 다투다가 공손치 못하자, 황태자는 장기판으로 오 태자를 때려 죽였다.《史記 卷106 吳王濞傳》 [본문으로]
- 쌍륙은 오락물의 한 가지이다. 당 중종(唐中宗)은 무삼사(武三嗣)를 궁중으로 불러들여 어상(御床)에 앉히고는 비(妃) 위후(韋后)와 함께 쌍륙을 두게 하고 자신은 옆에서 셈을 하여 주었는데, 무삼사가 비를 간통했다는 추문이 있었다.《舊唐書 卷51 中宗韋庶人傳》 [본문으로]
- 전국 시대(戰國時代)의 구류 백가(九流百家)를 말한다. 양묵은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일컫는다. 양주는 철저한 개인주의(個人主義)를 주창하였으며, 묵적은 겸애설(兼愛說)을 주창한 학자이다. 형명(刑名)은 한비자(韓非子)ㆍ신불해(申不害) 등의 법가자류(法家者流)를 말하며, 종횡(縱橫)은 소진(蘇秦)ㆍ장의(張儀) 등의 종횡가(縱橫家)를 말하며, 견백(堅白)은 견백동이(堅白同異)의 설을 주장한 공손룡(公孫龍)을 말한다. 유교에서는 이들을 모두 이단으로 배척한다. [본문으로]
- 맹자는 전국 시대에 태어나 양묵(楊墨) 등 이단(異端)을 “부모가 없고, 임금이 없는 도다.[無父無君之道]” 하여 심히 배척하였다. 그리고 양웅(揚雄)은 “옛날에 양묵이 정로(正路)를 막자 맹자가 배척하여 깨끗이 물리쳤다.” 하였다.《韓昌黎集 卷18 與孟尙書書》 즉 바둑이나 장기ㆍ쌍륙 등은 육예(六藝)나 사민(四民)에 있어 노장(老莊)이나 양묵 등 기타 잡술(雜術)과 같은 이단이므로 맹자와 같이 훌륭한 사람이 나와서 깨끗이 물리쳤으면 한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 노담은 노자(老子), 사양(師襄)은 노(魯)의 악관(樂官)이다.《史記》 孔子世家에 “공자가 주(周) 나라에 가서 노자에게 예를 물었고, 태사(太師) 양자(襄子)에게 거문고 타는 것을 배웠다.” 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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