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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 - 고죽집서孤竹集序 본문

산문놀이터/조선

송시열 - 고죽집서孤竹集序

건방진방랑자 2019. 5. 2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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孤竹集序

 

온갖 고초에도 넉넉하게 버틴 고죽 어르신

余少也則聞孤竹詩詞 是近世絶調 時余未能曉事 不知他求於公也 壯歲得依金文敬公門墻 獲與公嗣孫鎭安公父子游 因想像公家法之懿風流之美 而惜其只以詩聞也 及其老也 遍閱公遺事 又從先輩長者 得公之事蹟尤詳 然後乃喟然而歎曰 是將以人掩詩 而乃反以詩而掩人耶 自恨其淺之爲知公也 蓋撮而言之則公之所與游 牛 栗兩先生也 朴 思庵 鄭松江 辛白麓諸公也 古語云不見其山 願見其木 斯實語也 栗谷嘗以氷霜素履稱公 蓋其淸苦之節 人有所不堪 而處之悠然

 

최경창 어르신의 시적 재능

見山海等閃姦之狀 便絶舊要 以故玉堂湖堂銓郞之選 皆被阻遏而終不悔焉 其以先見之明 諷切栗谷 又似獻可之於司馬文正 而其言之符合如左契焉 然則公之爲人 不待臚列而可知也 公之詩雖逼於天寶元和 豈足以掩其人乎 抑公之詩 栗谷先生稱之以淸新俊逸 有人合刊於白玉峯詩集 則崔簡易岦以爲非所班 而著說以難之 華使朱給事之蕃歎賞不已 並與鄭圃 隱諸賢之作 刊布於中朝 若是者 詩可以掩人乎 人可以掩詩乎 必有能辨之者矣

 

고죽 어르신의 정보

公海州人 諱慶昌字嘉運 孤竹其號也 隆慶戊辰及第 官至鍾城府使 鎭安公諱振海 今收輯公詩而繡梓者 其季胤碩英 嘗游文敬公門下者也 鎭安公亦淸疏喜爲詩 文敬公嘗稱其固窮之節云 時崇禎癸亥 恩津宋時烈敍 -宋子大全

 

 

해석

 

온갖 고초에도 넉넉하게 버틴 고죽 어르신

 

余少也則聞孤竹詩詞 是近世絶調

내가 소년 시절에, 고죽의 시사(詩詞)가 근세(近世)의 절조(絶調)임을 들었으나

 

時余未能曉事 不知他求於公也

그때 나는 세상일을 알지 못했으므로 공을 따로 알려고 할 줄도 몰랐다.

 

壯歲得依金文敬公門墻

그후 장년(壯年)이 되어 김 문경공(金文敬公 문경은 김집(金集)의 시호)의 문하(門下)에 들어가서,

 

獲與公嗣孫鎭安公父子游

공의 사손(嗣孫) 진안공(鎭安公) 부자(父子)와 교유하게 되면서부터

 

因想像公家法之懿風流之美

공의 아름다운 가법(家法)과 풍류(風流)를 상상하게 되어서는,

 

而惜其只以詩聞也

공이 다만 시로써 세상에 알려진 것을 애석하게 여겼고,

 

及其老也 遍閱公遺事

다시 노경(老境)에 이르러 공의 유사(遺事)를 열람하는 한편,

 

又從先輩長者 得公之事蹟尤詳 然後乃喟然而歎曰

선배 장자를 따라서 공의 사적을 더욱 상세하게 알게 되어서는 이분은 사람이 시()보다 앞섰는데,

 

是將以人掩詩 而乃反以詩而掩人耶

어찌 도리어 시가 사람보다 앞섰다는 셈이 되었는가.’고 탄식하면서,

 

自恨其淺之爲知公也

나 자신이 공을 앎이 천박했음을 스스로 유감스럽게 여겼다.

 

蓋撮而言之則公之所與游 牛 栗兩先生也 朴 思庵 鄭松江 辛白麓諸公也

대저 요약해서 말한다면, 공이 교유한 바는 우계(牛溪)ㆍ율곡(栗谷) 두 선생과 박사암(朴思庵 박순(朴淳))ㆍ정송강(鄭松江 정철(鄭澈))ㆍ신백록(辛白麓 신응시(辛應時)) 제공(諸公)이었다.

 

古語云不見其山 願見其木 斯實語也

옛말에 그 산은 보지 못했으나, 그 나무를 보기 원한다.’ 했으니, 이는 실제를 말한 것이다.

 

栗谷嘗以氷霜素履稱公

율곡이 일찍이 공을 빙상소리(氷霜素履 온갖 고초에도 본분을 변치 않는다는 뜻)라고 일컬었으니,

 

蓋其淸苦之節 人有所不堪 而處之悠然

이는 그의 청고(淸苦)한 절조가 보통 사람으로서는 견디지 못할 바이나 공은 태연하게 여겼던 때문이다.

 

 

 

최경창 어르신의 시적 재능

 

見山海等閃姦之狀 便絶舊要

이산해(李山海) 등의 간사한 모습을 보고는, 오랜 사귐도 대뜸 끊어 버렸다.

 

以故玉堂湖堂銓郞之選

이런 까닭으로 옥당(玉堂)ㆍ호당(湖堂)과 전랑(銓郞)의 선발에

 

皆被阻遏而終不悔焉

모두 저해를 당하였으나 끝내 후회하지 않았다.

 

其以先見之明 諷切栗谷

또 율곡에게 풍간한 그의 선견지명(先見之明)

 

又似獻可之於司馬文正[각주:1] 而其言之符合如左契焉

마치 헌가(獻可)가 사마 문정(司馬文正)에게 말한 예와 같아서, 그 말이 마침내 증표(證票)처럼 들어맞았다.

 

然則公之爲人 不待臚列而可知也

그러니 공의 사람됨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公之詩雖逼於天寶元和

공의 시가 비록 당()의 천보(天寶)ㆍ원화(元和) 연대의 격조와 근사하지만,

 

豈足以掩其人乎 抑公之詩

어찌 시가 사람보다 앞섰다 할 수 있겠는가.

 

栗谷先生稱之以淸新俊逸

또 율곡 선생이 공의 시를 청신(淸新) 준일(俊逸)하다고 칭찬하였으며

 

有人合刊於白玉峯詩集

어떤 이가 백옥봉(白玉峯 백광훈(白光勳))의 시집(詩集)에다 합쳐서 간행(刊行)하므로

 

則崔簡易岦以爲非所班 而著說以難之

간이재(簡易齋) 최립(崔岦), 그 시집에 함께할 바가 아니라는 뜻으로 논설을 지어 논란하였고,

 

華使朱給事之蕃歎賞不已

중국 사신(使臣) 급사(給事) 주지번(朱之蕃)은 감탄해 마지않으면서,

 

並與鄭圃 隱諸賢之作 刊布於中朝

정포은(鄭圃隱) 등 여러 현인(賢人)의 작품과 함께 출간(出刊)해서 중국에 널리 전하였다.

 

若是者 詩可以掩人乎 人可以掩詩乎

그렇다면 시가 사람보다 앞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이 시보다 앞선 것인가.

 

必有能辨之者矣

반드시 이를 분별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고죽 어르신의 정보

 

公海州人 諱慶昌字嘉運 孤竹其號也

공은 해주인(海州人)으로 휘는 경창(慶昌), 자는 가운(嘉運)이며 고죽은 그의 호이다.

 

隆慶戊辰及第 官至鍾城府使

융경(隆慶 명 목종의 연호) 2(1568, 선조1)에 급제해서 벼슬이 종성 부사(鍾城府使)에 이르렀다.

 

鎭安公諱振海 今收輯公詩而繡梓者

진안공(鎭安公)의 휘는 진해(振海)이며, 이번에 공의 시를 편집 간행한 이는

 

其季胤碩英 嘗游文敬公門下者也

그의 막내아들 석영(碩榮)인데, 일찍이 문경공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鎭安公亦淸疏喜爲詩

진안공도 조촐하고 소탈하면서 시를 좋아했으므로

 

文敬公嘗稱其固窮之節云

문경공이 그의 확고한 지조를 칭찬하였다.

 

時崇禎癸亥 恩津宋時烈敍 -宋子大全

숭정 기원 후 계해년(1683, 숙종9)에 은진 송시열은 쓴다.

 

 

인용

작가 이력 및 비평

 

 

 

  1. 헌가는 송 나라 여회(呂誨)의 자이고, 문정(文正)은 사마광(司馬光)의 시호. 여회가 일찍이 사마광에게 “왕안석(王安石)이 반드시 천하를 어지럽히고야 말 것이다.” 하였으나 사마광이 믿지 않았다가 그가 죽은 뒤에 모두가 그의 말과 들어맞자, 사마광이 그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을 감탄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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