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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송시열 - 동국명필발東國名筆跋 본문

산문놀이터/조선

송시열 - 동국명필발東國名筆跋

건방진방랑자 2019. 5. 2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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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國名筆跋

 

책의 내용

歐公嘗錄汴渠碑 而自病其好古之弊 然又歎當時士夫忽書不學 而間有以書自名者 亦不知其甚貴 也 今朗善公子集刻吾東廿五人名筆以傳於世 雖不勉歐公之所病 而亦以勉其所歎也 其下有小跋數十字 手寫附刻焉

 

 

귀한 것은 적게 마련이고 그걸 수록하여 익히다

公子平生以書自喜 得入晉人三昧 名雖廿五人名筆 而眞成廿六焉矣 蓋其廿五人人不過數行 故其跋若病其草草 然宋賢以柳公權書不完者爲尤佳 蓋以少爲貴者 自古語也 然非少者爲貴 貴者自少也 故歐公嘗把玩古書 以爲消日之樂而曰 物惟不足然後其樂無窮 然則公子不惟得作書之妙 亦妙於觀書之法也

 

훗날 관첩이 될 수도 있는 책

按宋太宗鏤前賢眞蹟 名以官帖 以賜二府 太祖則只欲以錢文 遮 措大眼孔 然則此一事 太宗反復勝耶 其官帖後爲廿五帖 今公子所刻 其數偶同 亦奇矣 安知日後亦不爲官帖也 則聖上必以頒愛錢人 以養廉恥也 然聖上方將以岐陽蒐鼓之銘 策礪群臣 宋帝何足願歟 崇禎庚戌二月日 恩津宋時烈書 -宋子大全

 

 

해석

 

책의 내용

 

歐公嘗錄汴渠碑

구공(歐公 구양수(歐陽脩)를 말함)이 일찍이 변거비(汴渠碑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에 있음)를 기록하면서

 

而自病其好古之弊

스스로 옛것[]를 좋아하는 폐단을 병으로 여겼다.

 

然又歎當時士夫忽書不學

그러나 당시의 사부(士夫)가 글씨를 소홀히 여기고 배우지 않는가 하면,

 

而間有以書自名者 亦不知其甚貴也

간혹 글씨를 가져 스스로 이름하는 이도 매우 귀중한 것임을 알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였다.

 

今朗善公子集刻吾東廿五人名筆以傳於世

이제 낭선 공자(朗善公子 이름은 우())가 우리나라 25명의 명필(名筆)을 모아 새겨서 세상에 전하였으니 이는

 

雖不勉歐公之所病 而亦以勉其所歎也

비록 구공(歐公)이 병으로 여기던 바에는 유의하지 않았지만 그가 탄식하던 바에는 유의한 것이며,

 

其下有小跋數十字 手寫附刻焉

그 밑에 있는 간략한 발문(跋文) 수십 자는 손수 써서 부각(附刻)한 것이다.

 

 

 

귀한 것은 적게 마련이고 그걸 수록하여 익히다

 

公子平生以書自喜 得入晉人三昧

공자는 평생에 글씨를 좋아하여 진() 나라 사람의 삼매(三昧 왕희지(王羲之) 필법의 깊은 경지를 말함)를 얻었으니,

 

名雖廿五人名筆 而眞成廿六焉矣

명목은 비록 25명의 명필이지만 실제로는 26명이 되는 셈이다.

 

蓋其廿五人人不過數行

대저 그 25명의 글씨는 저마다 몇 줄에 불과하기 때문에

 

故其跋若病其草草

그 발문에서 너무 초초(草草 글씨가 적은 것)함을 병으로 여긴 듯하다.

 

然宋賢以柳公權書不完者爲尤佳

그러나 송 나라의 현인(賢人)은 유공권(柳公權 당 나라 사람)의 글씨가 불완전한 것을 더욱 아름답게 여겼으니,

 

蓋以少爲貴者 自古語也

적은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말이다.

 

然非少者爲貴 貴者自少也

하지만 적은 것이 귀한 것이 아니라, 귀한 것은 적게 마련이다.

 

故歐公嘗把玩古書 以爲消日之樂而曰

그러므로 구공이 일찍이 옛 글씨를 감상하는 것을 소일(消日)하는 낙()으로 삼으면서,

 

物惟不足然後其樂無窮

물건이란 많지 않아야 그 즐거움이 무궁하다.”하였다.

 

然則公子不惟得作書之妙

그렇다면 공자는 글씨를 모아 새기는 묘리(妙理)만을 얻었을 뿐이 아니라,

 

亦妙於觀書之法也

글씨를 보는 법에도 묘리를 얻은 것이다.

 

 

 

훗날 관첩이 될 수도 있는 책

 

按宋太宗鏤前賢眞蹟 名以官帖

상고하건대, 송 태종(宋太宗)은 옛 어진 이의 진적(眞蹟 진짜 필적)을 새겨서 관첩(官帖)이라 이름하고

 

以賜二府

이부(二府 여기서는 중서성(中書省)과 추밀원(樞密院)을 일컬음)에 내렸으며,

 

太祖則只欲以錢文 遮 措大眼孔[각주:1]

태조는 다만 돈[]으로 조대(措大 선비에 대한 비칭(卑稱))들의 눈을 가리려 하였다.

 

然則此一事 太宗反復勝耶

그러니 이 한 가지 일로는 태종이 도리어 태조보다 나은 편이 아니겠는가.

 

其官帖後爲廿五帖 今公子所刻 其數偶同 亦奇矣

그 관첩은 뒤에 25첩으로 되었는데 이제 공자가 새긴 것과 그 수가 우연히 같으니, 역시 기이한 일이다.

 

安知日後亦不爲官帖也

이 또한 다음날 관첩이 되지 않을지 누가 단정하겠는가.

 

則聖上必以頒愛錢人 以養廉恥也

성상(聖上)도 반드시 이를 돈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서 염치(廉恥)를 기르게 할 것이다.

 

然聖上方將以岐陽蒐鼓之銘[각주:2]

그러나 이제 성상이 바야흐로 기양(岐陽 지명(地名))의 수고명(蒐鼓銘)으로써

 

策礪群臣 宋帝何足願歟

군신(群臣)을 책려(策勵)하려 하니, 송제(宋帝)의 고사를 어찌 바랄 나위가 있겠는가.

 

崇禎庚戌二月日 恩津宋時烈書 -宋子大全

숭정 경술년(1670, 현종11) 2월 일에 은진 송시열은 쓴다.

 

 

 

 

 

  1. 송 태조(宋太祖)가 조보(趙普)에게 “소위 선비들이란 그 안목이 작으니, 아예 10만 관(貫)의 돈을 주어서 찌그러진 집에 채우도록 하라.”는 데서 인용된 말이다. [본문으로]
  2. 蒐鼓銘 : 당 나라 한유(韓愈)가 지은 석고문(石鼓文)으로, 주 선왕(周宣王)의 중흥(中興) 업적을 찬양한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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