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전쟁터의 분위기가 지금도 감도는 고북구를 밤에 나오며
고북구의 지리적 특성
自燕京至熱河也, 道昌平則西北出居庸關, 道密雲則東北出古北口. 自古北口循長城, 東至山海關七百里, 西至居庸關二百八十里, 中居庸山海而爲長城險要之地, 莫如古北口. 蒙古之出入常爲其咽喉, 則設重關以制其阨塞焉.
기록에 나타난 고북구
羅壁「識遺」曰: “燕北百里外, 有居庸關, 關東二百里外, 有虎北口, 虎北口, 卽古北口也.” 自唐始名古北口, 中原人語長城外, 皆稱口外, 口外皆唐時奚王牙帳.
按『金史』, 國言稱留斡嶺, 乃古北口也, 葢環長城稱口者, 以百計.
緣山爲城而其絶壑深磵, 呿呀★穴+坎陷, 水所衝穿則不能城而設亭鄣. 皇明洪武時, 立守禦千戶所, 關五重
고북구를 지나는 감정을 적다
余循霧靈山, 舟渡廣硎河, 夜出古北口, 時夜已三更. 出重關, 立馬長城下, 測其高可十餘丈. 出筆硯噀酒磨墨, 撫城而題之曰: “乾隆四十五年庚子八月七日夜三更, 朝鮮朴趾源過此.” 乃大笑曰: “乃吾書生爾, 頭白一得出長城外耶.”
昔蒙將軍自言吾起臨洮, 屬之遼東, 城塹萬餘里, 此其中不能無絶地脈. 今視其塹山塡谷, 信矣哉.
고북구는 전쟁터
噫! 此古百戰之地也.
後唐莊宗之取劉守光也, 別將劉光濬克古北口,契丹太宗之取山南也, 先下古北口. 女眞滅遼, 希尹大破遼兵, 卽此地也; 其取燕京也, 蒲莧敗宋兵, 卽此地也, 元文宗之立也, 唐其勢屯兵於此, 撒敦追上都兵於此. 禿堅帖木兒之入也, 元太子出奔此關趨興松, 明嘉靖時, 俺答犯京師, 其出入皆由此關
其城下乃飛騰戰伐之塲, 而今四海不用兵矣, 猶見其四山圍合, 萬壑陰森.
달과 북두칠성, 그리고 산새소리가 마치 전쟁터의 분위기를 방불케 하네
時月上弦矣, 垂嶺欲墜, 其光淬削, 如刀發硎; 少焉月益下嶺, 猶露雙尖, 忽變火赤, 如兩炬出山. 北斗半揷關中, 而蟲聲四起, 長風肅然, 林谷俱鳴. 其獸嶂鬼巘, 如列戟摠干而立, 河瀉兩山間鬪狠, 如鐵駟金鼓也.
天外有鶴鳴五六聲淸戛, 如笛聲長★口+弱, 或曰: “此天鵞也.” -『熱河日記』
해석
고북구의 지리적 특성
自燕京至熱河也,
연경으로 열하에 이르기까지
道昌平則西北出居庸關,
창평으로 길 잡으면 서북쪽으로 거용관으로 나오고
道密雲則東北出古北口.
밀운으로 길 잡으면 동북쪽으로 고북구로 나온다.
自古北口循長城, 東至山海關七百里,
고북구로부터 장성을 돌아 동쪽으로 산해관에 이르기까지 7백리이고,
西至居庸關二百八十里,
서쪽으로 거용관에 이르려면 2백 80리로,
中居庸山海而爲長城險要之地, 莫如古北口.
거용관과 산해관 중간은 장성의 험악하고 중요한 땅이 되니 고북구 만한 게 없다.
蒙古之出入常爲其咽喉,
몽고의 출입로로 항상 목구멍 같은 곳이 되니
則設重關以制其阨塞焉.
겹겹이 관문을 설치하여 좁은 요새를 제압하게 했다.
기록에 나타난 고북구
羅壁「識遺」曰: “燕北百里外, 有居庸關,
나벽 2의 「지유」엣 말했다. “연경의 북쪽 100리 밖에 거용관이 있고
關東二百里外, 有虎北口, 虎北口, 卽古北口也.”
거용관의 동쪽 200리 밖에 호북구가 있다고 하니 호북구가 곧 고북고다.”
自唐始名古北口,
당나라 때부터 처음으로 고북구라 불러
中原人語長城外, 皆稱口外,
중원 사람들이 장성 밖을 말할 적에 모두 구외라 불렀으니,
구외는 모두 당나라 때 오랑캐 추장 해왕 장수들의 막사였다.
按『金史』, 國言稱留斡嶺, 乃古北口也,
『금사』를 살펴보면 “그 나라 말로 유알령이라 했으니 곧 고북구다.”라고 말했으니,
葢環長城稱口者, 以百計.
대체로 장성을 둘러 구라고 말해지는 곳은 백 가지로 헤아릴 수 있다.
緣山爲城而其絶壑深磵, 呿呀★穴+坎陷,
산을 따라 성을 만들었으니 깎아지른 골짜기와 깊은 시내는 입을 벌린 듯 구멍이 뚫린 곳은
물이 부딪쳐 성을 만들지 만들지 못하고 정장을 설치했다.
皇明洪武時, 立守禦千戶所, 關五重
명나라 홍무 시기에 수어천호를 세워 다섯 겹 관문을 만들었다.
고북구를 지나는 감정을 적다
余循霧靈山, 舟渡廣硎河, 夜出古北口,
나는 무령산을 돌아 배로 광형하를 건너 밤에 고북구를 나가니
時夜已三更.
때는 밤으로 이미 삼경이었다.
出重關, 立馬長城下,
겹 관문으로 나와 장성 아래에 말을 세우고,
測其高可十餘丈.
높이를 헤아리니 십 여장이 되었다.
出筆硯噀酒磨墨, 撫城而題之曰:
붓과 벼루를 꺼내 술을 부어 먹을 갈고 성을 어루만지며 썼다.
“乾隆四十五年庚子八月七日夜三更, 朝鮮朴趾源過此.”
“건륭 45년 경자 8월 7일 밤 삼경에 조선 박지원 이곳을 지나다.”
乃大笑曰: “乃吾書生爾, 頭白一得出長城外耶.”
곧 크게 웃으며 말했다. “곧 나는 서생일 뿐으로 머리가 쇠어서야 한 번 장성 밖으로 나가는 구나.”
昔蒙將軍自言吾起臨洮,
옛날로 몽염 장군이 스스로 말했다. “나는 임조에서 일어나
屬之遼東, 城塹萬餘里, 此其中不能無絶地脈.
요동에 이어 성과 해자가 만 여리이니 이 가운데에 지맥을 끊지 않을 수 없다.”
今視其塹山塡谷, 信矣哉.
지금 보니 산을 파고 골짜기를 메운 것이 참이로다.
고북구는 전쟁터
噫! 此古百戰之地也.
아! 이곳은 옛날에 백 번 싸운 땅이다.
후당의 장종이 유수광을 잡자 별장인 유희준은 고북구에서 이겼고,
契丹太宗之取山南也, 先下古北口.
거란의 태종이 산남을 취할 때 먼저 고북구로 내려왔다.
女眞滅遼, 希尹大破遼兵,
여진이 요를 멸망시킬 때 여진 장수 희윤이 요나라 병사들을 대파했으니,
卽此地也;
곧 이곳이고
其取燕京也, 蒲莧敗宋兵, 卽此地也,
연경을 취할 때 여진 장수 포현이 송나라 병사를 패배시켰으니 곧 이곳이며
元文宗之立也, 唐其勢屯兵於此,
원나라 문종이 즉위하자 여진 장수 당기세가 이곳에 군사를 주둔케 했고,
撒敦追上都兵於此.
여진 장수 산돈이 상도의 병사를 이곳에서 추적했다.
독견첩목아가 들어올 때 원나라 태자는 이 관문으로 빠져나가 흥송으로 달아났고
明嘉靖時, 俺答犯京師,
명나라 가정 때엔 엄답이 수도로 침범할 때도
其出入皆由此關
출입이 모두 이 관문을 경유했다.
其城下乃飛騰戰伐之塲, 而今四海不用兵矣,
성문 아래가 곧 날고 오르며 싸우던 싸움터로 지금 사해는 병기를 쓰지 않지만,
猶見其四山圍合, 萬壑陰森.
오히려 네 방면의 둘러싸여 온 골짜기가 음침하고 삼엄하다.
달과 북두칠성, 그리고 산새소리가 마치 전쟁터의 분위기를 방불케 하네
時月上弦矣, 垂嶺欲墜,
때에 달은 상현달로 산 고개에 드리워져 떨어지려 하니
其光淬削, 如刀發硎;
그 빛은 잘게 부서지니 숫돌에서 막 나온 칼 같았고
少焉月益下嶺, 猶露雙尖,
이윽고 달이 더욱 고개로 내려오자 오히려 두 끝이 뾰족함을 드러냈고
忽變火赤, 如兩炬出山.
갑자기 환하게 변하니 두 횃불이 산에서 나온 것 같았다.
北斗半揷關中, 而蟲聲四起,
북두는 반쯤 관문 속에 꽂혀 있으니 벌레소리가 사방에서 일어나고
長風肅然, 林谷俱鳴.
긴 바람이 쓸쓸하니 숲과 골짜기 모두 울렸다.
其獸嶂鬼巘, 如列戟摠干而立,
짐승 같은 언덕과 귀신 같은 바위는 나열한 창과 모든 방패를 세워놓은 듯했고,
河瀉兩山間鬪狠, 如鐵駟金鼓也.
황하는 두 산 사이로 쏟아지는 시끄러운 소리는 철을 두른 사마가 뛰고 징과 북을 두르리는 소리 같았다.
天外有鶴鳴五六聲淸戛, 如笛聲長★口+弱,
하늘 밖에 학이 5~6번 우는 소리 있어 맑기가 젓대 소리 길게 부는 것 같았으니,
或曰: “此天鵞也.” -『熱河日記』
혹자는 “이것은 거위소리라네.”라고 말했다.
인용
'문집 > 열하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희기 후지 - 1. 도로 너의 눈을 감아라 (0) | 2020.03.25 |
---|---|
환희기 후지 - 2. (0) | 2020.02.19 |
앙엽기 - 21. 利瑪竇塚 (0) | 2019.08.18 |
앙엽기 - 20. 眞覺寺 (0) | 2019.08.18 |
양엽기 - 19. 崇福寺 (0) | 2019.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