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7. 작자성인(作者聖人)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그것을 최초로 만든 놈이 있다 이겁니다. 그것이 누구냐? 그게 바로 ‘컬츄럴 히어로(Cultural Hero)’입니다. 불을 발명했다, 신농씨(神農氏)가 뭘 했다, 복희씨(伏羲氏)는 또 저걸 했다 등 이런 것이 다 문명을 최초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얘기입니다.
일본 유학(儒學)에서는 소라이(荻生徂來) 등이 ‘작자위성(作者謂聖)’이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있는 말인데, “문명을 최초로 만든 놈들이 바로 성인(聖人)이다”라는 것입니다. “They are makers of civilization”이라는 것이지요. 예악(禮樂)을 작(作)했다, 예악(禮樂)을 지었다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 ‘작(作)’의 주체가 바로 ‘컬츄럴 히어로(Cultural Hero)’입니다.
희랍에서는 이 ‘컬츄럴 히어로(Cultural Hero)’에 관한 이야기가 다양한 희랍신화의 주인공들로 나와요. 예를 들어, 거미가 신(神)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거미처럼 옷감 짜는 일(weaving)을 기막히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나중에 천벌을 받고 거미가 되었다든가 하는 식으로 신화화되요. 그것은 처음으로 옷을 짜 입은 사람들의 얘기겠지요.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신화의 주인공으로 된 것입니다. 희랍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문명을 최초로 ‘시작(始作)’한 사람들의 얘기입니다. ‘시작(始作)’이라는 말에 ‘작(作)’이 들어가지요?
그런데 동양에서도 예외 없이 ‘컬춰럴 히어로’는 신화로 나타납니다. 요(堯)임금·순(舜)임금, 문(文)·무(武)·주공(周公)이 역사적 실존인물로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 동양인들은 그런 이야기들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비교적 ‘역사적’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몇년 몇 월 몇 시에 이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만들었다고 믿었어요. 요(堯)임금·순(舜)임금에 대한 얘기들도 사실은 ‘픽션(Fiction)’일 뿐입니다. 다만 공자(孔子)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예요. 왜냐? ‘내가 지금 이어 받고 있는 이 문명을 최초로 만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때야말로 문명의 발생과 그들의 시간적 거리가 상당히 짧아서(몇 백 년 밖에 안됐거든요), 그래서 ‘作’이라는 말이 매우 구체적이지요. 17, 18, 19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중국문명이 최초로 만들어진 모습에 대한 예찬들입니다.
소라이는 이 말을 정확하게 지키고자 합니다. 이것이 에도(江戶) 유학(儒學)의 특성입니다만, ‘작자위성(作者謂聖)’이라고 하는 것은 거꾸로 “작(作)하지 않은 놈은 성인(聖人)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후대에는 성인(聖人)이 나올 수 없습니다. “과연 최초에 문명을 만든 놈만이 성인(聖人)이냐?”라는 것이 소라이학(學)의 최대의 논쟁점입니다. 문명은 다시 만들어질 수 없는가? 사실, 완전히 쌩으로 다시 만들기는 이미 어렵지요.
내가 요순시대에만 태어났어도, 나 같이 우수한 머리를 가지고 이 정도 언변으로 구라를 풀고 다녔으면, 대단한 성인(聖人)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려워요. 주공(周公)과 비교가 안 됩니다. 왜냐하면, 주공(周公)시대는 아무 것도 없었을 때였고, 무엇이든 일단 만들면 사람들이 그대로 따랐을 것이니까. 내가 지금 아무리 만든다고 해봤자 기존에 있는 것을 다 뜯어 고치고 나의 식으로 해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되겠어요? 지금 우리는 이미 작(作)할 챈스(Chance)가 없는 문명권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라이학(學)을 굉장히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작(作)이라는 것이 후대에는 불가능하다고 본 것은 소라이의 지나친 시각일 뿐이라고 해석하고, 요즘은 후대에도 가능하다고 해석하는 학파들이 있습니다. 동경대학(東京大學) 학파들의 싸움이지요.
여기서 ‘무우자기유문왕호(無憂者其惟文王乎)’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문명을 최초로 만든 새끼들이니까, ‘해피(Happy)’한 새끼들이다! 이 말이예요. 이놈들은 참 행복하실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이런 이야기입니다. 문왕(文王)이라는 사람은 사실은 위(位)가 없었던 사람이죠? 문왕(文王)의 아들인 무왕(武王)이 주(紂)임금을 죽이고 주(周)나라를 세운 거잖아요. 그러니까 문왕(文王)은 아들 무왕(武王)이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기연만 딴 사람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을 무왕(武王)에 비유하면, 문왕(文王)은 저 거제도에 살고 있는 멸치장수 할아버지입니다. 문왕(文王)은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죠. 그러니까 문왕(文王)은 아무 것도 아니예요. 멸치장수 같은 사람일 뿐이예요. 그런데 나중에 무왕(武王)이 왕위에 오르니까, 무왕의 아버지인 멸치장수도 올라가고, 그뿐만 아니라 멸치장수의 아버지, 할아비까지 올라가는 것이죠.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도 이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왕계(王季)로서 아버지로 삼았고, 무왕(武王)을 가지고서 아들로 삼았으니[以王季爲父 以武王爲子]’ 문왕(文王)은 멸치장수인데, 멸치장수격인 “문왕(文王)은 왕계(王季)로서 아버지로 삼았다.” 그러니까, 왕계(王季)는 실제로 누구인지 더더욱 모르지요. 멸치장수 정도도 안 되는 사람이었는지 어쨌는지 알 게 뭐냐고.
‘부작지 자술지(父作之 子述之)’라고 하였습니다. 『예기(禮記)』에 ‘작자위성 술자위명(作者謂聖 述者謂明)’이라고 나옵니다. 소라이는 여기의 ‘성(聖)‘이 형용사일 수 있다고 하는 등, 사실은 해석에 문제가 있는 부분이지만, 하여튼 작(作)과 술(述)의 명백한 차이를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작(作)했고, 아들이 그것을 술(述)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작(作)은 문왕(文王) ‘레벨(Level)’에서 그쳤어요. 그런데, 무왕(武王)이 쿠데타에 성공한 것이 여든여섯 살 때였고, 재위(在位)한 것이 칠년 밖에 안 됩니다. 또한, 무왕(武王)의 아들이 성왕(成王)인데, 무왕(武王)이 죽었을 때, 이 애가 열 살 밖에 안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말년에 이삭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죠. 따라서 성왕(成王)이 어리기 때문에 무왕(武王)의 동생인 주공(周公)이 섭정(攝政)을 했습니다. 문왕(文王)이 멸치장수이고, 무왕(武王)이 영삼(永三)이니까, 영사(永四)라든가 영이(永二)가 있었을 거 아냐. <폭소>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섭정(攝政)했으니까, 주공(周公)은 술(述)의 ‘레벨(Level)’에 머물 뿐이지만, 그런데 사실은 작(作)의 가장 대표적인 사람으로 주공(周公)을 칩니다. 주공(周公)이 작(作)의 진짜 모범(Paragon)이예요. 그리고 진짜 술(述)한 사람은 공자(孔子)죠. 작(作)이라는 것은 문명을 최초로 만든 행운을 누린 행복한(lucky & happy)한 놈들에게 해당되는 일이고, 아무나 안 되는 것이며, 그것을 술(述)한 대표적 인물을 공자(孔子)로 보는 것이 후대의 유교적 모델입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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