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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꽃은 비에 피고 바람에 지네(소화시평 상권101)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꽃은 비에 피고 바람에 지네(소화시평 상권101)

건방진방랑자 2021. 10. 28.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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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비에 피고 바람에 지네

 

 

花開昨夜雨 花落今朝風 꽃은 지난 밤 비에 폈고 꽃은 오늘 아침 바람에 졌다네.
可惜一春事 往來風雨中 가련쿠나, 한철 봄 일이 바람과 비속에 오고 가니.

 

 

花開因雨落因風 꽃은 비 때문에 피었다가 바람 때문에 지니,
春去秋來在此中 봄은 가고 봄이 오는 것이 이 가운데에 있구나.
昨夜有風兼有雨 지난밤 바람이 불고 또한 비까지 와
梨花滿發杏花空 복숭아꽃은 만발했고 살구꽃은 졌다네.

 

소화시평권상 101에 소개된 송한필의 시(위의 시)권벽의 시(아래의 시)는 모두 같은 운치를 담고 있다. 비에 봄꽃이 만개했다가 하룻밤 사이에 바람이 불어 꽃이 져버렸으니 말이다. 봄 또한 송익필이 말한 달처럼 순식간에 상황이 변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금세 꽃이 펴서 좋아했더니 바람이 불자 져버렸고, 달 또한 더디게 둥글어지더니 보름달이 됐다 싶자 기울어지니 말이다. 어쩌면 이 당시의 사람들은 변화무쌍한 자연을 보며 자신을 돌아보는 소재로 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피었을 때가 길지 않더라도 그 순간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봄이 왔음을 만끽하며 지나간 봄을 아쉬워하기보다 그 순간을 누릴 수 있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얼핏 보면 똑같아 보이는 두 시에 대해 홍만종은 뜻은 일치하지만 각각 운치가 있다[意則一串, 而各有風致].’라는 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건 같아 보이는 두 시에 분명한 차이점이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홍만종의 이런 평가에 대해 교수님도 두 시의 차이를 한 번 생각해보라고 주문하셨다.

 

 

 

 

그래서 두 눈을 크게 뜨고 두 시의 차이를 찾다 보니 하나 보이는 게 있더라. 송한필과 권벽이 생각하는 봄의 느낌은 확연히 달랐으니 말이다. 송한필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봄이 지나가는 것이라 느끼고 있었지만, 권벽은 봄을 세분화하여 살구꽃이 핀 봄은 갔지만 복숭아꽃이 핀 봄은 왔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 보였다. 이런 정도의 차이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교수님도 너무 막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단서를 주신다. “이 시엔 정감이 다르게 피력되어 있으니 정감적인 부분에서 한번 생각해보세요.”

 

정감이라고 하는 부분을 중심에 두고서 두 시를 보고 있으니 그제야 보이더라. 송한필의 시는 가는 봄에 대한 아쉬움을 한껏 피력하고 있었던 것이고 권벽의 시는 간 봄에 대해선 아쉬워하지만 또 다른 봄이 온 것에 대해선 환호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니 권벽은 영고성쇠(榮枯盛衰)하는 자연의 흐름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교수님은 송한필의 시는 작가의 주관적인 시선이 깊게 개입되어 있는데 반해 권벽의 시는 객관적인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라 말해줬다.

 

그러면서 외적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것에 대한 얘기까지 함께 해줬다. 우리도 그렇듯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나의 생각이나 철학을 그대로 관철할 수 있길 바란다는 얘기다. 환경에 깊은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마치 나의 의지가 약한 것처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자기기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린 수시로 환경에 휩쓸리고 상황에 영향을 받으며 나의 생각을 새롭게 정립하고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단재학교에 있으면서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 수시로 생각을 고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거기에 아무리 나의 이상 자체가 탁월하다 하여 밀어붙일 수만은 없다. 그러니 고민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생각을 새롭게 정립해가는 과정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에 의해 피어난 꽃들이 바람에 의해 졌다. 이걸 단순히 말하면 외적 환경에 모든 게 좌지우지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달리 말하면 꽃은 필 때 핀 것이고, 질 때 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럴 때 외적 환경은 시기적절함일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시기적절하게 필 때 피고 질 때 질 수 있는 용기나 과단성이 필요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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