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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102. 지천의 시, 한시가 어렵다는 인식을 가중시키다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102. 지천의 시, 한시가 어렵다는 인식을 가중시키다

건방진방랑자 2021. 10. 28.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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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의 시, 한시가 어렵다는 인식을 가중시키다

 

 

春事闌珊病起遲 봄 풍경이 끝물인데, 병이 더디게 나은지라.
鶯啼燕語久逋詩 꾀꼬리 울고, 제비 재잘대도 오래도록 시를 못 지었네.
一篇換骨脫胎去 한 편의 환골탈태(윤두수가 보내온 시)가 오니,
三復焚香盥手時 향을 사르고 손을 씻고 세 번이나 반복하여 읽었다네.
天欲此翁長漫浪 하늘은 이 늙은이(윤두수)에게 오래도록 자유롭게 해주고선,
人從世路苦低垂 나는 세상길에서 괴롭게도 떨구고자 하는 구려.
銀山松桂芝川水 은산의 소나무와 계수나무, 지천의 물이
應笑吾行又失期 응당 비웃겠지, 나의 행실이 또한 실기했다고.

 

소화시평권상 102에서 이 시를 처음 해석했을 땐 그저 보이는 그대로만 해석했다. 깊게 생각해볼 여지도 없었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도 모르니 난감하기만 했다. 이런 상태로 수업을 들으러 왔으니 이 시의 해석엔 빨간줄이 한 가득 그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중간하게 해석한 경우엔 당연히 이럴 수밖에 없다.

 

1~2구의 의미가 시간이 흐르도록 시를 짓지 못하는 작가의 심정이란 건 알지도 못했다. 그런데 교수님은 증오음(贈梧陰)이란 제목을 통해 그걸 유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주더라. 이미 보내온 시에 차운한 시란 얘기다. 차운을 했다는 건 이미 윤두수에게 시를 받았고 그 시에 근거하여 운자를 따라 답장하는 시를 지었다는 뜻이다. 답장하는 시이니, 시를 짓지 못해선 안 되지만 황정욱은 시를 짓는 게 자꾸 늦어지고 있다고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3~4구는 강서시파의 특징이 제대로 묻어나는 부분이다. 보통 7언시일 경우 ‘4/3’으로 띄어 읽으며 해석하면 되는데, 여기선 그게 완전히 무너져 있기 때문이다. ‘일편환골탈태거(一篇換骨脫胎去)’라는 구절의 경우 ‘2/4/1’로 띄어 읽어야 하며 그렇게 읽을 때 해석도 용의해진다. 하지만 한 편이란 것과 환골탈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랬더니 교수님은 명확하게 알려주더라. ‘한 편이란 윤두수가 보내준 시를 말하는 것이며, ‘환골탈태는 윤두수의 편지를 칭송하는 내용이란다. 그러니 이 말대로 해석해보면 당신이 쓴 한 편의 시는 환골탈태한 작품으로 잘 받아보았습니다라는 뜻이 된다. 여기서 간다[]’라고 되어 있는 것도 내가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 아닌 당신의 편지가 왔다는 의미인 ()’의 의미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세상에나 이건 완전히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여 한자 자체의 원뜻을 무시하고 새롭게 창조해내는 격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강서시파의 시는 난삽하다는 말을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4구를 단순히 대구형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왜 향을 사르고 손을 씻는지, 그리고 세 번 반복하는 것의 주체가 무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세 번 반복하여 향을 사르고 손을 씻었다정도로 봤는데 완전히 엇나갔다. 교수님은 이것이 윤두수의 시를 받은 황정욱이 취한 태도라고 말해줬다. 그만큼 경건한 마음으로 향도 피우고 손도 씻은 후에 무려 세 번이나 반복해서 시를 읽었다는 표현으로 풀어야 한다는 점이다.

 

5~6구는 또 다시 내용이 확 바뀐다. 편지를 읽고 나서 든 황정욱의 마음이 담겨 있으니 말이다. 그는 5구에선 하늘이 윤두수에겐 자유롭게 지내며 좋은 시도 펑펑 쓸 수 있는 재능을 주었지만, 자신에겐 아무리 시를 쓰려 애써도 제대로 쓸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낙담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기 전까지는 도무지 이 구절을 해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재밌는 점은 6구의 ()’이라는 게 황정욱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사실이다. 보통 한문에서 인()은 나 외의 다른 사람을 가리킨다. 학이5만 보더라도 나 외의 사람을 사랑하는 걸 말하고 있으며, 여기선 흥미롭게도 인()과 민()을 구분하여 사용하여, ()은 조정에서 일을 하는 관리와 같은 권력자를 지칭하는 말로, ()은 일반 백성을 지칭하는 말로 이분화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윤두수에 대한 부러움과 자신이 시를 짓지 못하는 모습을 표현하며, 7~8구에선 그 감정을 증폭시키며 마무리 지었다. 즉 시도 짓지 못하고 기회를 잃어버린 자신을 아마도 산마저도 비웃고 있을 거라 마무리 지은 것이다. 그리고 교수님은 실기(失期)한 게 단순히 답장만 쓰지 못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다른 정황이 있을 거라고 말해줬다. 아마도 윤두수가 보낸 시의 마지막 구절엔 자네 우리 절에 와서 함께 놀자구라는 말이 쓰여 있었을 것이니, 여기선 때를 놓쳐 초청에도 응하지 못한 자신을 산마저도 비웃을 것이다라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시는 답장을 제때 짓지 못한 자신에 대해, 초정에도 응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담은 답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재밌는 점은 답장도 제 때에 짓지 못하고 초정에도 제대로 응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 것으로 못 가서, 못 써서 미안이란 감정을 시로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본다면 글을 쓴다는 게 어려운 듯도 하지만 쉽다는 것도 바로 알 수 있다. 때론 왜 이렇게 글이 쓰기 싫지라는 테마로도 글을 쓸 수 있으니 말이다. , 글쓰기란 게, 시 쓰기란 게 대단한 것이어야 한다는 인식만 없다면 그 상황을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시가 되고 글이 되는 셈이다. 그러니 글을 쓰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왜 글쓰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지 그 느낌만 풀어내도 충분히 훌륭한 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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