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장 2. 후천적인 네 가지 덕성
그 다음에 나오는 관유온유9寬裕溫柔), 발강강의(發强剛毅), 제장중정(齊莊中正), 문리밀찰(文理密察)의 이 네 가지 덕성은 총명예지가 선천적인 것(a priori)임에 비해 후천적(a posteriori)으로 얻을 수 있는 덕성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을 유교의 덕목에서 인(仁)·의(義)·예(禮)·지(知)로 말하는 것이죠(주자 주: 其下四者乃仁義禮知之德). 잘 살펴보면 느낌이 비슷하게 맞아 떨어지죠? 관유온유(寬裕溫柔)은 인(仁)이고, 발강강의(發强剛毅)은 의(義)이고, 제장중정(齊莊中正)은 예(禮)이고, 문리밀찰(文理密察)은 지(知)와 연결이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중용(中庸)의 저자는 이미 인(仁)·의(義)·예(禮)·지(知)라는 유교적 개념을 전제로 하고, 선행하는 그 덕목에 맞추어서 이 네 구절을 구성했다고 볼 수가 있어요. 결국 이 구절들은 저자 당대의 인(仁)·의9義)·예(禮)·지(知)에 대한 해석을 내포하는 것이겠지요.
仁 | 寬裕溫柔 |
義 | 發强剛毅 |
禮 | 齊莊中正 |
知 | 文理密察 |
“관유온유 족이유용야(寬裕溫柔 足以有容也)”
인(仁)은 관유온유(寬裕溫柔)와 연결해서 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자하다(benevolent)’는 생각에 가깝다고 볼 수 있어요. 내가 말하는 센서티비티는 오히려 총명예지로 올라갑니다. 시대적으로 해석이 변하니까요. 나는 공자의 인(仁)이란 것은 센서티버티란 심미적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맥락이 다릅니다. 그래서 ‘족이유용(足而有容)’ 용(容)은 포용력을 말하는 것이겠죠.
“발강강의 족이유집야(發强剛毅 足以有執也)”
발강강의(發强剛毅)란 굳세다, 강하다, 발분하다의 개념이니까, 의(義)의 개념에 가깝게 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집(執)할 수 있다[足以有執]”에서 집(執)이란 선(善)을 굳건하게 잡는다는 뜻이예요. 즉, 의(義)를 지키는 사람은 선(善)을 끝까지 고수한다는 뜻인데, 집(執)이란 개념이 불교가 들어옴에 따라 변해 버렸습니다. 불교에서는 고집멸도(苦執滅道)라고 해서, 집(執)을 속세인연의 근본적 원인이나 일체개고(一切皆苦)의 근원이 되는 부정적 의미로 파악하고 인간의 욕망이나 집착을 말하지만,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의 중국 고전에서는 집(執)이 의(義)를 지킨다는 개념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다시 새겨 두면 좋겠습니다.
“제장중정 족이유경야(齊莊中正 足以有敬也)”
계속 그 다음 구절을 보면, 제장중정(齊莊中正)이 나오는데, 이것은 경(敬)이라는 말과 연결이 되어 있어요. 이것이 예(禮)에 해당됩니다. 제(齊)가 사실은 재(齋)입니다. 이것은 ‘목욕재계’라고 할 때의 재인데, 옛날 사람들은 목욕을 할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재(齋)란 신성한 예식을 치루기 위해 내 몸을 정결하게 한다는 의미예요.
경(敬)은 지금은 단순히 존경(respect)이란 의미로 쓰고 있지만, 신유학의 해석에서는 재(齋)에서 경(敬)으로 가고 그 경(敬)에서 나오는 게 그 유명한 주일무적(主一無適)이란 개념입니다. 이것은, 재(齋)를 거친 사람들은 신성한 예식을 치루기 때문에 귀신과 교통을 해야 하는데, 귀신과 만나야하므로 한 가지에 집중한다[主一]는 것이고, ‘무적(無適)’이란 ‘딴 생각이나 잡념으로 인해 흩어지지 않는다’는 뜻이예요. 이것이 인간을 가장 위대하고 또 인간답게 만드는 것인데,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서, 독수리가 창공을 ‘쫙∼‘ 유유자적하게 날다가 어느 순간 먹이를 발견하고 그 먹이를 향해 전일(全一)하게 의식을 집중하는 순간! 그 상태가 바로 독수리의 경(敬)인 것입니다. 결국 근세유학에서 굉장히 중요시되는 경(敬)이라는 것은 근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집중력(attention power)이라고 볼 수 있어요.
경(敬)하다는 것은 집중이 가능한 상태인데, 공부를 할 때도 책상에 몇 시간 앉아 있느냐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집중을 잘 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죠. 집중 없이 10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집중해서 한 시간 앉아 있는 게 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식의 시간은 바로 이 집중력으로 결정이 되는 거예요. 물리적으로 똑같은 하루 24시간을 산다고 해도, 사람에 따라 100시간으로 늘어날 수도 있는 겁니다. 장(莊)은 ‘진지하다, 해롱거리지 않는다, 굳건하다’의 개념입니다.
“문리밀찰 족이유별야(文理密察 足以有別也)”
주자 주를 보면, “문 문장야 리 조리야 밀 상세야 찰 명변야(文 文章也 理 條理也 密 詳細也 察 明辨也)”라고 하고 있습니다. 문리(文理)에서 문(文)은 문(紋)과 통하는 것이고, 리(理)는 옥의 결을 말하는 것이니까, 둘 다 질서의 개념을 말하고 있지요. 그 문리(文理)를 자세히 구분하여 명변하는 게 바로 지(知)라는 거예요. 별(別)은 ‘변별한다’, ‘구별한다’의 뜻입니다. 지(知)는 지혜(wisdom)의 막연한 측면을 말하는 게 아니고, 분별적으로 문(文)과 리(理)를 상세하게 밝히는 것[密察]이라는 점을 여러분이 잘 알아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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