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연암의 개성 넘치는 표현이 담긴 편지들
이제 연암의 『영대정승묵』에 실린 편지글 세 편을 읽으며 이번 글을 마무리 하겠다.
어린아이들 노래에 이르기를, “도끼를 휘둘러 허공을 치는 것은 바늘 가지고 눈동자 찌름만 같지 못하네”라 하였소. 또 속담에도 있지요. “삼공三公과 사귈 것 없이 네 몸을 삼갈 일이다”라는 말 말입니다. 그대는 잊지 마십시오. 차라리 약한 듯 굳셀지언정 용감한 체 하면서 뒤로 물러 터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오. 하물며 외세의 믿을만한 것이 못됨이겠습니까? 孺子謠曰: “揮斧擊空, 不如持鍼擬瞳.” 且里諺有之: “无交三公, 淑愼爾躬.” 足下其志之. 寧爲弱固, 不可勇脆. 而況外勢之不可恃者乎? |
「여중일與中一」, 즉 중일中一이란 이에게 보낸 세 번째 편지이다. 아마 그가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무슨 일을 해결해 보려고 애쓰는 것을 보고 안쓰러워 보낸 글이지 싶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도끼를 휘두른대도 목표물을 맞히지 못하면 헛힘만 빠질 뿐이다. 차라리 작은 바늘로 상대의 급소를 찌르는 편이 훨씬 낫다. 굳이 높은 벼슬아치에게 연줄을 대려고 애쓸 것 없다. 내가 내 몸가짐을 바로 해 애초에 그런 일이 없도록 했어야 했다. 겉으로 위세등등하면서 뒤로 무른 것보다는 외유내강이 훨씬 더 낫다. 외세는 결코 믿을 것이 못된다. 경전의 말을 끌어오는 대신 아이들의 동요와 민간의 속담을 인용해 충고를 던진 것이다. 속빈 강정이기보다 매일 먹는 밥과 해묵은 장맛으로 쓴 글이다.
정옹鄭翁은 술이 거나해질수록 붓이 더욱 굳세어졌었지요. 그 큰 점은 마치 공만 하였고, 먹물은 날리어 왼쪽 뺨으로 떨어지곤 했더랍니다. ‘남南’자를 쓰다가 오른쪽 내려 긋는 획이 종이 밖으로 나가 방석을 지나자, 붓을 던지더니만 씩 웃고는 유유히 용호龍湖를 향해 떠나갑디다.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군요. 鄭翁飮逾豪而筆逾健. 其大點如毬, 墨沫飛落左頰. 南字右脚過紙歷席, 擲筆笑, 悠然向龍湖去. 今不可尋矣. |
「답창애答蒼厓」, 즉 창애蒼厓 유한준兪漢雋에게 보낸 아홉 번째 편지글이다. 전문이래야 42자에 불과한데, 鄭翁이 술이 거나한 채로 글씨 쓰는 광경이 마치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다. 글은 모름지기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맛이 있어야 한다.
귀에 대고 하는 말은 듣지를 말고, 절대 남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며 할 얘기라면 하지를 말 일이오. 남이 알까 염려하면서 어찌 말을 하고 어찌 듣는단 말이오. 이미 말을 해 놓고 다시금 경계한다면 이는 사람을 의심하는 것인데, 사람을 의심하면서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하겠소. 附耳之言勿聽焉, 戒洩之談勿言焉. 猶恐人知, 奈何言之, 奈何聽之? 旣言而復戒, 是疑人也, 疑人而言之, 是不智也. |
「답중옥答仲玉」의 첫 번째 편지이다. 원래 세상일이란 것이 그렇다. 귓속말은 대부분 떳떳치 못한 말이다. ‘이건 절대 비밀인데’ 하며 하는 이야기는 으레 그 말까지 함께 옮겨지게 마련이다. 역시 전문이래야 44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간결한 필치 속에 이미 자신이 하고픈 말은 다 담고 있다. 글이란 이렇게 맵짜야 한다.
속빈 강정 같은 시, ‘우근진右謹陳’일 뿐인 문학, 판에 박힌 투식, 나는 이런 것들을 거부한다. 봄 동산의 새 인양, 페르시아의 보석같이, 연잎 위를 구르는 이슬처럼 영롱한 목소리가 듣고 싶다. 눈에 시고 귀에 젖도록 보고 들었으되 전혀 새롭고, 새 그릇에 담은 해묵은 장맛 같이 웅숭깊은 그런 시가 읽고 싶다. 실상은 텁석부리 더벅머리일지라도 고사 육노망처럼 바라보게 만드는 그런 글과 만나고 싶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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