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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心似와 形似 - 5. 유한준의 문집에 혹평을 날리다 본문

책/한문(漢文)

心似와 形似 - 5. 유한준의 문집에 혹평을 날리다

건방진방랑자 2020. 3. 3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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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유한준의 문집에 혹평을 날리다

 

 

부쳐 보내신 글 묶음을 양치하고 손 씻고 무릎 꿇고서 장중히 읽고는 말하기를, “문장은 모두 기이하다. 그러나 이름과 물건을 많이 빌려와 인용하고 근거로 댄 것이 꼭 맞지가 않으니 이것이 흠결이 된다고 하였지요. 청컨대 노형老兄을 위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寄示文編, 漱口洗手, 莊讀以跪曰: “文章儘奇矣. 然名物多借, 引據未襯, 是爲圭瑕. 請爲老兄復之也.

답창애지일答蒼厓之一이다. 아마도 유한준이 자신의 문집 엮은 것을 연암에게 보내 평해줄 것을 요청했던 모양이다. 칭찬을 기대하고 있던 유한준에게 연암은 대뜸 좋기는 좋은데 이름을 자꾸 빌려오고, 여기저기서 인용을 끌어온 것이 맞지 않아 그게 흠이라고 지적하였다. 형사形似 추구의 지나침을 나무란 것이다.

 

 

문장에는 방법이 있으니, 마치 소송하는 자가 증거를 들이대고, 장사치가 물건을 사라고 외치는 것과 같아야 합니다. 비록 말의 이치가 밝고 곧아도 만약 다른 증거가 없다면 무엇으로 재판에서 이기겠습니까? 그래서 글 짓는 자는 경전經傳을 널리 인용하여 자기 뜻을 밝히는 겝니다. 성인聖人께서 지으시고 현인賢人이 풀이하셨으니 이보다 더 미덥겠습니까만, 그래도 오히려 강고康誥에 말하기를 밝은 덕을 밝히라고 했다고 하고, “제전帝典에 이르기를, ‘높은 덕을 환히 밝히라고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文章有道, 如訟者之有證, 如販夫之唱貨. 雖辭理明直, 若無他證, 何以取勝? 故爲文者, 雜引經傳, 以明己意. 聖作而賢述, 信莫信焉, 其猶曰: “康誥曰: ‘明明德.’” 其猶曰: “帝典曰: ‘克明峻德.’”

소송이 붙어 재판에 이기려면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증거는 없이 그저 눈물을 흘리며 자기는 정직한 사람이니 믿어달라고만 호소한다면 어찌 재판에 이길 수 있겠는가? 땔감 파는 장수가 땔감을 지고 가며 소금 사려!”하고 외친다면 어찌 땔감 한 단인들 팔수가 있겠는가?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증거 없이는 안 된다. 꼭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글 짓는 사람들이 경전에서 말을 끌어와 제 뜻을 밝히는 것도 이와 꼭 같다. 꼭 맞는 인용은 글에 신뢰와 힘을 불어넣어 준다.

 

 

그렇지만 벼슬이름과 땅이름만은 서로 빌려 써서는 안 됩니다. 섶을 지고서 소금 사려! 하고 외친다면 비록 하루 종일 길을 가더라도 땔감 한단도 팔지 못할 것입니다. 진실로 황제가 사는 도읍을 모두 장안長安이라 일컫고, 역대 삼공三公을 죄다 승상丞相이라고 부른다면 명실名實이 뒤죽박죽이 되어 도리어 비루하게 될 뿐이지요. 이는 곧 좌중을 놀래키는 진공陳公이요[각주:1], 찡그림을 흉내내는 서시西施일 뿐입니다[각주:2]. 그래서 글 짓는 사람은 더러워도 이름을 감추지 아니하고, 비루해도 자취를 숨기지 않습니다. 맹자가 성씨는 함께 하는 바이지만, 이름은 혼자만의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또한 다만 말하기를, “글자는 함께 하는 바이지만, 글은 혼자만의 것이라고 말해봅니다.

官號地名, 不可相借, 擔柴而唱鹽, 雖終日行道, 不販一薪. 苟使皇居帝都, 皆稱長安, 歷代三公, 盡號丞相, 名實混淆, 還爲俚穢. 是卽驚座之陳公, 效顰之西施. 故爲文者, 穢不諱名, 俚不沒迹. 孟子曰: “姓所同也, 名所獨也.” 亦唯曰: “字所同而文所獨也.”

그런데 고금의 서울을 모두 장안이라 하고, 역대의 정승을 무조건 승상이라고만 말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이름만 같은 진공陳公이요, 찡그림만 흉내 낸 동시東施에 지나지 않는다. 찡그려 아름다웠던 것은 서시西施의 본바탕이 아름다웠기 때문이지 찡그림이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었다. 같이 찡그렸는데도 서시가 찡그리면 온 나라 사내들이 가슴을 설레었고, 동시가 흉내 내자 부자는 문을 닫고, 거지는 그 마을을 떠났다. 모동貌同만 있었지 심동心同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려의 서울은 개성이고, 조선의 서울은 한양인데 이를 모두 장안이라 하고, 영의정을 일러 승상이라 한다면, 과연 이 글이 조선의 글인가 진한秦漢 적 글인가? 조선 사람이 지금의 생각을 쓰면서, 진한 적의 말투나 흉내 내고 있으니 이래서야 어찌 가슴으로 전해오는 느낌이 있으랴.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성씨姓氏는 누구나 같지만 이름은 다르다고. 연암은 이렇게 말한다. 글자는 누구나 공유하지만 문장은 자기만의 것이어야 한다고. 누구나 같이 쓰는 성씨나 글자는 결코 변할 수 없는 공변된 의미 자질이요 보편 가치이다. 그러나 그 공변된 의미와 보편 가치가 참 의미를 드러내는 것은 성 뒤에 붙은 이름에서이다. 글자를 조합해서 엮은 문장에서이다. 이름이 놓이고서야 수많은 같은 성씨 중에서 단 한 사람이 떠오른다. 누구나 항용하던 말인데도 내가 글로 쓰게 되니 전혀 새롭게 되었다. 남의 이름이 멋있다고 내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쓰지 않듯이, 다른 이의 글이 훌륭하대서 남의 옛 글을 그대로 베껴 써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글은 내가 썼는데 정작 내 생각은 찾을 데가 없고, 옛 귀신의 공허한 중얼거림만 남게 된다. 베낄 것을 베껴라. 그런데도 사람들은 베껴야 할 것은 안 베끼고, 베끼지 말아야 할 것은 굳이 베낀다. 그래서 자꾸 글쓰기가 꼬인다.

칭찬을 듣자고 보낸 자기 글을 두고 이런 혹평을 받은 유한준의 기분이 좋았을 턱이 없었겠다.

 

 

 

 

인용

목차

작가 이력 및 작품

1. 진짜 같아지려 하면 할수록

2. 옛 것을 배우는 두 가지 방법

3. 제 목소리를 담아 문집을 지은 낙서야

4. 하늘이 저렇게 파란 데도

5. 유한준의 문집에 혹평을 날리다

6. 지금을 담아내자 말하던 유한준의 아들

 

 

  1. 한나라 때 진준陳遵은 모습이 장대하고 문사文辭에 능하였다. 당시 그와 이름이 꼭 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이 모인 곳에 가서 자신의 이름이 진맹공陳孟公이라고 소개하면 좌중이 모두 놀라 어쩔줄 몰랐는데, 막상 이르러 보면 다른 사람이었으므로 그 사람을 일러 ‘진경좌陳驚坐’라 한데서 나온 말. 『한서漢書』 유협전游俠傳, 「진준전陳遵傳」에 보인다. [본문으로]
  2. 춘추시대 월越나라 미녀 서시西施가 가슴이 아파 얼굴을 찌푸리고 다녔는데, 그 마을에 사는 못생긴 여자가 그것을 보고 아름답게 여겨 똑깥이 찡그리고 다니자, 그 마을의 부자는 문을 닫아걸고 나오지 않고, 가난한 사람은 처자를 이끌고 마을을 떠나갔다는 고사. 『장자莊子』「천운天運」편에 보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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