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편지에 으레 쓰던 문장을 쓰지 말라
이어서 다시 한편의 글을 더 읽기로 한다. 「영대정승묵자서映帶亭賸墨自序」이다. 당시 척독尺牘, 즉 편지글의 병통에 대해 쓴 글인데, 문집에 이미 앞의 60자가 결락되어 있어 문맥을 소연히 파악하기가 힘들다.
‘다음과 같이 삼가 아뢴다’는 이른바 ‘우근진右謹陳’이란 말은 진실로 속되고 더럽다. 유독 모르겠거니와 세상에 글 짓는 자를 어찌 손꼽아 헤일 수 있으리오만, 판에 찍은 듯이 모두 이 말을 먹지도 못할 음식을 주욱 늘어놓듯이 쓰니, 공용 격식의 글머리나 말 머리에 으레 쓰는 투식의 말 되기에야 어찌 해가 되겠는가? 「요전堯典」의 ‘옛날을 상고하건데’란 뜻의 ‘왈약계고曰若稽古’나, 불경佛經의 ‘나는 이렇게 들었노라’란 뜻의 ‘여시아문如是我聞’은 바로 지금의 ‘우근진’일 뿐이다. 所謂右謹陳, 誠俚且穢. 獨不知世間操觚者何限, 印板總是餖飣餕餘, 則何傷於公格之頭辭發語之例套乎? 堯典之‘曰若稽古’, 佛經之‘如是我聞', 迺今時之右謹陳爾. |
‘우근진右謹陳’이란 당시 편지글에서 습관처럼 쓰던 말이다. 편지 쓰는 사람들은 백이면 백 어김없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이 말을 쓴다. 격식을 따지는 공문서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상 쓰는 편지글에서야 굳이 이 말만은 꼭 써야하는 까닭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서경書經』 「요전堯典」을 보면 글이 시작되는 곳마다 ‘왈약계고曰若稽古’를 되뇌고 있고, 그 많은 불경에는 어김없이 ‘여시아문如是我聞’이 서두에 적혀 있다. 그 ‘여시아문’ 중에는 부처님이 직접 하지 않은 자기 말도 얼마나 많겠는가 말이다. 그러고 보면 습관처럼 쓰는 투식의 말은 예나 지금이나 있는 것이었구나.
『서경書經』에서 썼고, 불경에서도 쓰고 있으며, 지금 편지 쓰는 사람들도 한결 같이 모두 다 쓰고 있으니, 나도 덩달아 ‘우근진’을 쓴다 해서 해될 것은 무언가?
홀로 봄 숲에 우는 새는 소리마다 각각 다르고, 해시海市에서 보물을 살펴보면 하나하나가 모두 새롭다. 하주荷珠, 즉 연잎에 구르는 이슬은 절로 둥글고 초박楚璞은 깎지 않아도 보배롭다. 그럴진대 척독가尺牘家가 『논어論語』를 조술祖述하고 풍아風雅를 거슬러가며, 그 사령辭令은 정자산鄭子産과 숙향叔向에게서 배우고, 장고掌故는 유향劉向의 『신서新序』와 유의경劉義慶의 『세설신어世說新語』를 본받는다면, 그 핵실核實하고 꼭 알맞은 것이 홀로 책策에 뛰어났던 가의賈誼나 주의奏議에 능했던 육지陸贄일 뿐이 아닐 것이다. 저가 고문사古文辭로 한번 이름이 나게 되면 단지 서序와 기記가 으뜸이 되는 줄만 알아, 허황된 것을 얼기설기 엮거나 엉뚱한 것을 끌어 당겨 와서는, 이러한 것들이 소가小家의 묘품玅品이 됨을 배척하면서, 볕드는 창 깨끗한 안석에서 졸다가 베개로 고이기나 한다. 獨其聽禽春林, 聲聲各異, 閱寶海市, 件件皆新. 荷珠自圓, 楚璞不劚, 則此尺牘家之祖述論語, 泝源風雅, 其辭令則子産叔向, 掌故則新序世說, 其核實剴切, 不獨長策之賈傅, 執事之宣公爾. 彼一號古文辭, 則但知序記之爲宗, 架鑿虛譌, 挐挹浮濫. 指斥此等爲小家玅品, 明牕淨几, 睡餘支枕. |
그러나 봄날 숲 속에 우는 새는 그 소리가 제각금 모두 다르다. 페르샤의 보물가게에는 하나도 같은 보석이 없다. 연잎 위로 구르는 이슬은 동글동글 둥글고, 화씨和氏의 구슬은 굳이 가공하지 않더라도 진秦나라의 열다섯 성과 맞바꿀 수가 있다. 세상 사물은 이렇듯 한결 같지가 않은데, 유독 글 쓰는 사람들은 한결같은 투식만을 금과옥조로 여긴다. 조금만 낯설거나, 처음 보는 것이 나오면 그들은 도무지 이것을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좋은 편지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우근진’의 투식을 버려야 한다. 편지글의 모범은 당송팔대가의 글에만 있지 않고, 『소황척독蘇黃尺牘』에만 있지도 않다. 그것은 『논어』 속에도 있고 『시경』 속에도 있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정자산鄭子産과 숙향叔向의 외교 문서나, 유향劉向의 『신서新序』와 유의경劉義慶의 『세설신어世說新語』 같은 고사故事 책 속에도 있다. 봄 숲의 새 울음처럼, 페르시아의 보석처럼, 편지글의 내용과 형식은 제각금 달라야 한다. 꼭 이래야 한다는 법은 없다. 하주荷珠는 하주대로, 초박楚璞은 초박대로의 가치가 있다. 왜 천편일률로 하는가? 왜 각기 다른 개성을 하나의 틀 속에 부어 획일적으로 찍어내는가?
▲ 전문
▲ 정조가 어렸을 때 쓴 한글편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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