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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 - 월사집서(月沙集序) 본문

산문놀이터/조선

장유 - 월사집서(月沙集序)

건방진방랑자 2019. 8. 1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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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고난 문장실력과 경륜실력으로 혼란한 이 시대를 잘 이끈 월사

월사집서(月沙集序)

 

장유(張維)

 

 

달하면서도 문장이 좋은 사람도 있다

歐陽氏論文章有窮而後工之語, 操觚家多稱引爲口實. 夫雕蟲寒苦之徒, 風呻雨喟, 啽哢飛走, 爭姸醜於一言半辭者, 以是率之猶可也. 乃若鴻公哲匠冠冕詞壇, 彰其色而黼黻靑黃, 協其聲而笙簧金石, 以大鳴一世者, 此其人與才, 豈囿於窮途之域, 而格其巧拙哉? 歷觀前代豪傑之士, 以文章致身宰輔, 兼擅藝苑之譽者, 蓋曠世罕覯, 而唯我朝爲最盛, 此殆祖宗右文之效. 若故相國月沙李公, 眞其人哉?

 

벼슬자리에서 글로 인정받다

公自布衣時, 已有盛名, 甫釋褐, 攝官起居注. 宣廟臨朝, 見公記注贍敏, 爲倚案注目久之, 不覺硏滴墜水沾公衣, 命黃門拭之, 此公受知之始也. 兵亂後恒管槐院文書, 每一篇進, 上未嘗不稱善, 錫賚相踵, 或命錄進草本. 辨誣事, 特命進秩充副使, 所草奏本同時應制者凡數人, 而獨公作稱旨. 華人見者萬口傳誦, 至廷臣覆議, 稱其明白洞快, 讀之令人涕涔涔欲下, 自是公之文名, 遂震耀寰宇. 無何而踐八座握文衡, 爲一代宗匠, 論者謂文人遭遇之盛, 古今鮮公比云. 宣廟知公雖深, 然無如消長之數何, 竟未能究其用. 遘否運, 當彝倫變故之際, 守正不撓, 屢阽不測. 今上龍飛, 公與諸耆碩同被眷遇, 竟膺大拜. 艱危之日, 盡瘁彌綸, 惓惓忠愛之誠, 屢形於章疏, 而公亦已老矣. 公於文詞, 天才絶人, 雖高文大冊, 多口占立就, 而辭暢理盡, 自中繩墨. 宣廟嘗稱之曰: “寫出肺肝, 蘊籍典重.” 其知公也至矣.

 

서문을 짓게 된 연유

公旣沒而諸子將行家集, 謂維嘗出公門下, 辱徵弁卷之文. ! 公之文章, 不唯國人知之, 天下之人擧知之, 晩生末學, 强欲贅以一言, 是何足爲公重哉? 然維嘗觀皇朝汪學士煇敍公朝天, 有曰: “生意洋然, 神理煥發, 卓異曺劉, 駕軼李杜.” 夫汪公身生華夏文明之會, 其所見者大矣, 朝天一稿, 在公特豹文之一斑. 然其稱道乃爾, 如使汪公盡見其所未見, 其爲說豈止於是耶?

 

불후의 성사를 간직한 문집

夫文章, 世固不乏. 若公雍容大雅, 質文之備, 內以明主爲知己, 外爲中華所稱慕, 施之廊廟則藻飾治道, 用之急難則昭雪國誣, 名實純粹, 照映竹素. 古人所謂: ‘經國大業不朽盛事, 非公其誰當之? 公之詩文, 以卷計者八十有一而續集不與焉, 國朝名家集, 未有若是多者. 易大傳曰: “富有之謂大業.” 不如是, 何以稱大家數? 嗚呼盛哉!

德水張維撰. 谿谷先生集卷之七

 

 

 

 

해석

 

달하면서도 문장이 좋은 사람도 있다

 

歐陽氏論文章有窮而後工之語, 操觚家多稱引爲口實.

구양수(歐陽脩)가 문장을 논의하며 곤궁해진 후에야 기교로워진다[有窮而後工].’라는 말을 하고부터 붓을 잡은 작가들이 많이 일컬고 인용함으로 구실(口實)을 삼는다.

 

夫雕蟲寒苦之徒, 風呻雨喟, 啽哢飛走, 爭姸醜於一言半辭者, 以是率之猶可也.

대체로 수식만 일삼는[雕蟲] 추워 괴로워 하는[寒苦] 무리들은 바람에 신음하고 비에 읊조리며 날짐승과 들짐승에 잠꼬대하고 한 마디 말이나 반절의 말로 고움과 추함을 다투는 이들은 이 말로써 그것을 경솔히 하는 것이 오히려 괜찮으리라.

 

乃若鴻公哲匠冠冕詞壇, 彰其色而黼黻靑黃, 協其聲而笙簧金石, 以大鳴一世者, 此其人與才, 豈囿於窮途之域, 而格其巧拙哉?

이에 커다랗고도[鴻公] 현명한 재상[哲匠]이 문단에 으뜸이 되어 그 색으로 보불청황(黼黻靑黃)을 드러내고 그 소리로 생황금석(笙簧金石)을 어우러지게 함으로 한 시대를 크게 울리는 이들은 그 사람과 재주가 어찌 불우한 지경에 국한되어 기교로움과 졸렬함을 헤아르리오?

 

歷觀前代豪傑之士, 以文章致身宰輔, 兼擅藝苑之譽者, 蓋曠世罕覯, 而唯我朝爲最盛, 此殆祖宗右文之效.

전대의 호걸한 선비들을 두루 보면 문장으로 신분이 재상에 이르렀고 겸하여 문단의 칭송을 차지한 이들은 대체로 세상에 드물고 보기에 드물지만 오직 우리의 조정에서만 가장 극성하니 이것은 아마도 임금들께서[祖宗] 문장을 숭상한 공효이리라.

 

若故相國月沙李公, 眞其人哉?

() 상국(相國) 월사(月沙) 이공(李公)은 참으로 그러한 사람이다.

 

 

 

벼슬자리에서 글로 인정받다

 

公自布衣時, 已有盛名, 甫釋褐, 攝官起居注.

공은 벼슬하기 전부터 이미 융성한 명성이 있었고 막 과거에 급제하고서석갈(釋褐): ‘천복(賤服)인 갈()을 벗는다.’는 뜻으로, 과거(科擧)에 합격(合格)한 자()가 평민(平民)의 옷을 벗고 새로이 관복(官服)을 입음. 기거주(起居注)기거주(起居注): 고려 시대의 관직. 중서문하성에 속한 벼슬로 기거랑(起居郞)기거사인(起居舍人)과 함께 임금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하였음.의 관직을 섭렵했다.

 

宣廟臨朝, 見公記注贍敏, 爲倚案注目久之, 不覺硏滴墜水沾公衣, 命黃門拭之, 此公受知之始也.

선조(宣祖)께서 조정에 임하셔서 이공이 기록한 것이 넉넉하고도 민첩한 것을 보고 책상에 기대 주목한 지 오래되어 부지불식간에 연적의 떨어진 물방울에 이공의 옷을 적시자 내시[黃門]에게 명하여 그걸 닦게 했으니 이것이 공이 남의 눈에 든[受知] 처음이다.

 

兵亂後恒管槐院文書, 每一篇進, 上未嘗不稱善, 錫賚相踵, 或命錄進草本.

임란(壬亂) 후 항상 승문원[槐院]의 문서를 관장했는데 매번 한 편이 진상(進上)됨에 임금께선 일찍이 칭찬하지 않음이 없었고 하사하심[錫賚]이 서로 이어졌고 혹 초본(草本)을 기록하여 진상하라 명하셨다.

 

辨誣事, 特命進秩充副使, 所草奏本同時應制者凡數人, 而獨公作稱旨.

종계변무(宗系辨誣)가 일어남에 미쳐 특명으로 직질(職秩)을 올려 부사(副使)에 충당되었고 임금께 올리는 글[奏本]을 씀과 동시에 응제(應製)한 이가 대체로 여러 사람이었지만 유독 공의 지은 것이 임금의 뜻에 알맞았다.

 

華人見者萬口傳誦, 至廷臣覆議, 稱其明白洞快, 讀之令人涕涔涔欲下, 自是公之文名, 遂震耀寰宇.

중국사람 중 본 이들이 만 사람의 입으로 전하였고 조정의 신하에 이르러 내용을 뒤집는 회의를 하며[覆議] ‘명백하고도 통쾌해서 그것을 읽는 사람에게 눈물이 뚝뚝 떨어지려 하게 한다고 칭송했으니 이로부터 공의 문장 명성은 마침내 천하를 떨치며 빛나게 됐다.

 

無何而踐八座握文衡, 爲一代宗匠, 論者謂文人遭遇之盛, 古今鮮公比云.

오래지 않아[無何] 팔좌(八座)팔좌(八座): 중국의 상서(尙書)에 해당하는 여덟 고관(高官)으로, 육조(六曹)의 판서(判書), 홍문관대제학(弘文館大提學)ㆍ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홍문관 대제학을 가리킨다.를 거쳐 문형(文衡)을 장악해 한 시대의 으뜸이 되니 논하는 이들이 문장가가 임금의 총애를 받는 융성함이 고금으로 공에 비견할 이 드물다.’라고 말했다.

 

宣廟知公雖深, 然無如消長之數何, 竟未能究其用.

선조께서 공을 알아주심이 비록 깊었지만 성쇠(盛衰)함의 운수는 어찌할 수가 없어 마침내 그 쓰임을 궁구하지 못했다천지간의 길흉화복이 번갈아 바뀌는 것이 소장인데, 여기서는 불행히도 선조(宣祖)가 승하하여 월사가 재능을 다 발휘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는 뜻으로 말하였다..

 

遘否運, 當彝倫變故之際, 守正不撓, 屢阽不測.

이윽고 비색(否塞)한 운수를 만나광해조(光海朝) 때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유폐시킨 일을 말한다. 이륜(彝倫)의 변고(變故)에 당할 즈음에 공은 바름을 지키고 흔들리지 않아 자주 위태로워짐에 예측할 수가 없었다.

 

今上龍飛, 公與諸耆碩同被眷遇, 竟膺大拜.

지금의 임금께서 오르심에 미쳐 고과 여러 원로들이 함께 임금의 특별대우[眷遇]를 입어 마침내 크게 제배(除拜)됨에 응했다.

 

艱危之日, 盡瘁彌綸, 惓惓忠愛之誠, 屢形於章疏, 而公亦已老矣.

어렵던 날이 더욱 병들었지만 더욱 경륜에 힘써 간절한 충군애국(忠君愛國)의 정성이 자주 소장(疏章)에 드러났지만 공은 또한 이미 노쇠했다.

 

公於文詞, 天才絶人, 雖高文大冊, 多口占立就, 而辭暢理盡, 自中繩墨.

공은 문장에 있어 천부적 자질이 남보다 뛰어나 비록 고상한 문장이나 양이 많은 문장도 대체로 입으로 부르면[] 곧장 이루어졌지만 말은 통하고 이치는 다하여 절로 법칙승묵(繩墨): 대목이 나무를 바로잡는 먹줄인데, 사람의 행동하는 바를 준칙에 비유한 것이다.에 맞았다.

 

宣廟嘗稱之曰: “寫出肺肝, 蘊籍典重.” 其知公也至矣.

선조께서 일찍이 묘사한 것이 폐와 간에서 나와 깊이 있고 법도 있다.”라고 칭찬했으니 공을 알아줌이 지극한 것이었다.

 

 

 

서문을 짓게 된 연유

 

公旣沒而諸子將行家集, 謂維嘗出公門下, 辱徵弁卷之文.

공이 이미 숨지고 여러 자식들이 장차 가문의 문집을 간행하고자 했고 일찍이 공의 문하에서 나왔다고 하며 외람되이 책 서두의 문장을 요청했다.

 

! 公之文章, 不唯國人知之, 天下之人擧知之, 晩生末學, 强欲贅以一言, 是何足爲公重哉?

! 공의 문장은 나라 사람들이 알 뿐만 아니라 천하의 사람이 모두 그걸 아니 만생말학(晩生末學)인 내가 억지로 군더더기로 한 마디 말을 붙이려 해도 어찌 공에게 귀중하다 여겨지겠는가?

 

然維嘗觀皇朝汪學士煇敍公朝天, 有曰: “生意洋然, 神理煥發, 卓異曺劉, 駕軼李杜.”

그러나 일찍이 중국의 학사(學士) 왕휘(汪煇)가 서술한 공의 조천록(朝天錄)를 보면 살아있는 기운이 넘실대고 신적인 이치가 환하게 발해 조식(曹植)과 유정(劉楨)보다 탁월하고 이백과 두보를 능가한다[駕軼].”라고 말했다.

 

夫汪公身生華夏文明之會, 其所見者大矣, 朝天一稿, 在公特豹文之一斑.

대저 왕공(汪公)은 중화 문명한 시기에 태어나 본 것이 크고 조천록한 권은 공에게 있어 표범 무늬의 한 무늬였을 뿐이다.

 

然其稱道乃爾, 如使汪公盡見其所未見, 其爲說豈止於是耶?

그리도 칭찬한 말이 이러했으니 만약 왕공(汪公)이 보지 못했던 것을 죄다 보게 했다면 말하는 것이 어찌 여기에 그쳤겠는가?

 

 

 

불후의 성사를 간직한 문집

 

夫文章, 世固不乏.

대체로 문장이란 세상에 진실로 적지 않다.

 

若公雍容大雅, 質文之備, 內以明主爲知己, 外爲中華所稱慕, 施之廊廟則藻飾治道, 用之急難則昭雪國誣, 名實純粹, 照映竹素.

공과 같이 화락하고 조용하며[雍容] 매우 우아해서 바탕과 문장이 구비됐고 안으로 현명한 군주를 지기(知己)를 삼고 밖으론 중국의 칭송을 받으며 조정에 베풀면 다스림의 도를 꾸며주고[藻飾] 위급한 때에 쓰면 나라의 속임을 밝히고 설욕하며 명실(名實)이 순수(純粹)하고 문집[竹素]에 빛난다.

 

古人所謂: ‘經國大業不朽盛事, 非公其誰當之?

옛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는 큰 일이고 썩지 않을 융성한 일이다[經國大業不朽盛事]’라고 말한 것이 공이 아니라면 누가 그걸 감당하리오?

 

公之詩文, 以卷計者八十有一而續集不與焉, 國朝名家集, 未有若是多者.

공의 시문(詩文)은 권수(卷數)로 계산하면 81권인데 속집(續集)은 여기에 참여하지 않으니 나라 조정 문장가의 문집 중 이와 같이 많은 것은 있지 않다.

 

易大傳曰: “富有之謂大業.” 不如是, 何以稱大家數? 嗚呼盛哉!

주역대전(周易大傳)풍부히 소유하는 것을 대업(大業)이라 한다.”라고 했으니, 이와 같지 않다면 어찌 대문장가라 말하겠는가? ! 성대하구나!

 

德水張維撰. 谿谷先生集卷之七

덕수(德水) 장유(張維)는 찬술(撰述)한다.

 

 

인용

저자 / 지도

앞 글(風謠續選序) / 뒷 글(習齋集序)

한시미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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