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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金鑢: 1766(영조 42)~1822(순조 22) 본문

한문놀이터/인물지도

김려金鑢: 1766(영조 42)~1822(순조 22)

건방진방랑자 2019. 1. 18.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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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金鑢: 1766(영조 42)~1822(순조 22)

본관은 연안(延安). 후기 학자. 자는 사정(士精), 호는 담정(藫庭).

 

1766   김재칠(金載七)3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남
1780 15 성균관에 들어감.
1792 27 성균관 진사시에 급제.
1797 32 11월에 강이천(姜彝天)의 비어옥사(蜚語獄事)에 연루되어 함경도 경원(慶源)에 유배되었지만 배소(配所)에 도착하기 전 왕명으로 다시 부령(富嶺)으로 이배(移配). 12월에 부령에 도착. 감담일기(坎萏日記)저술.
1799 34 부친 김재칠 사망. 정안전(貞雁傳)을 지음. 이 글로 인해 김종원(金鍾遠)의 옥사가 일어남.
1801 36 4월 신유사옥(辛酉邪獄)으로 다시 추국(推鞫)을 받고 진해로 유배됨. 이때 사유악부(思牖樂府)를 지음.
1806 41 김려의 아들 김유악(金維岳)이 아버지의 무죄를 주장하며 사건의 재심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려 해배(解配). 유배에서 돌아온 후 선친의 묘소가 있는 공주에 가서 삼년 동안 시묘지기를 함.
1811 46 여릉(廬陵)의 별장에서 서울 삼청동으로 이주함. 이 시기에 만선와잉고(萬蟬窩媵藁)를 지음.
1812 47 정릉참봉(靖陵參奉)의 벼슬을 받음.
1817 52 연산현감(連山縣監)으로 재직.
1821 56 함양군수로 재직 중 임지에서 사망.

 

해석

1. 이옥(李鈺)과 김건순(金建淳) 등과 문학적인 교유를 맺었으며 정조의 문체반정정책의 지탄 대상이 됨.

2. 진해의 어족에 대한 저술인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와 역대의 야사를 정리한 한고관외사(寒皐觀外史)를 지어 박학다식의 학풍을 보임.

3. 우초속지(虞初續志),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 담정유고(藫庭遺稿), 담정총서(藫庭叢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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