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생의 이야기를 전해준 세 노인과의 기연
허생후지(許生後識)②
余年二十時, 讀書奉元寺. 有一客能少食, 終夜不寐, 爲導引法. 至日中, 輒倚壁坐, 少合眼爲龍虎交, 年頗老, 故貌敬之, 時爲余談許生事, 及廉時道裵時晃完興君夫人, 亹亹數萬言, 數夜不絕, 詭奇怪譎, 皆可足聽. 其時自言姓名爲尹映. 此丙子冬也.
其後癸巳春, 西遊, 泛舟沸流江, 至十二峯下, 有小庵, 尹映獨與一僧居此庵. 見余躍然而喜, 相勞苦, 十八年之間, 貌不加老, 年當八十餘, 而行步如飛. 余問: “許生一二有矛盾事.” 老人卽擧解說, 歷歷如昨日事. 曰: “子前讀昌黎文, 當▣.” 又曰: “子前欲爲許生立傳, 文當已就否?” 余謝未能. 語間余呼尹老人, 老人日: “我姓辛, 非尹也, 子誤認.” 余愕然問其名, 曰: “吾名嗇也.” 余詰之曰: “老人豈非姓名尹映耶, 今何改言辛嗇也?” 老人大怒曰: “君自誤認, 乃謂人變姓名耶?” 余欲再詰, 則老人轉益老, 靑瞳瑩瑩. 余始知老人, 乃異趣之士, 或廢族, 或左道異端, 避人晦遮之徒, 是未可知也. 余闔戶去, 老人嘖嘖言: “可哀, 許生妻竟當復飢也.”
又廣州神一寺有一老人, 號篛笠李生員, 年九十餘, 力扼虎, 善奕棋, 往往談東方故事, 言論風生, 人無知名者. 聞其年貌, 甚類尹映, 余欲一見, 而未果. 世固有藏名隱居, 玩世不恭者, 何獨於許生, 而疑之乎?
谿菊下小飲, 援筆書之. 燕巖識.
해석
余年二十時, 讀書奉元寺.
내 나이 스무살에 봉원사(奉元寺)【봉원사(奉元寺): 서울특별시(--特別市) 서대문구(西大門區) 봉원동(奉元洞)에 있는 절】에서 책을 읽었다.
有一客能少食, 終夜不寐, 爲導引法.
어떤 한 손님이 소식을 하고 밤새도록 자지 않으며 도인법(導引法)【도인법(導引法): 도교에서 선인이 되기 위하여 시행하는 장생양생법】을 삼았다.
至日中, 輒倚壁坐, 少合眼爲龍虎交,
해가 중천에 이르니 갑자기 벽에 기대 앉고 조금 있다가 눈을 감으니 용호교(龍虎交)【용호교(龍虎交):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물과 불의 교합 도인술(導引術)의 하나.】를 했다.
年頗老, 故貌敬之, 時爲余談許生事, 及廉時道裵時晃完興君夫人, 亹亹數萬言, 數夜不絕, 詭奇怪譎, 皆可足聽.
나이가 매우 많았기 때문에 그를 겉으로 존경하는 척했는데 당시에 나를 위해 허생의 일을 말해줬고 염시도(廉時道)【염시도(廉時道): 신광수(申光洙)의 『석북잡록(石北雜錄)』과 이원명(李源命)의 『동야휘집(東野彙輯)』에는 염시도(廉時度)로 되어 있고, 일명씨의 『성수총화(醒睡叢話)』에는 염희도(廉喜道)로 되어 있다.】와 배시황(裵時晃)【배시황(裵是晃):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는 배시황(裵是熀)으로 되어 있고,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藁)』에는 배시황(裵是愰)으로 되어 있다.】과 완흥군부인(完興君夫人)【완흥군부인(完興君夫人): 완흥군은 인조(仁祖) 때 정사공신(靖社功臣) 삼등의 하나인 이원영(李元榮)인 듯하다.】 등을 부지런하고도 부지런히 수만 마디 말로 여러 밤에 끊이지 않고 하니 놀랍고 기이하고 괴이하고 변화무쌍해 모두 들을 만했다.
其時自言姓名爲尹映. 此丙子冬也.
이때 스스로 이름은 윤영(尹映)이라 말했으니 이때가 병자(1756)년이었다.
其後癸巳春, 西遊, 泛舟沸流江, 至十二峯下, 有小庵, 尹映獨與一僧居此庵.
그 후 계사(1773)년 봄에 서쪽으로 유람하다가 비류강(沸流江)【비류강(沸流江): 평안남도 신양군과 은산군을 흐르는 대동강의 지류】에 배를 띄우고 십이봉(十二峯)【십이봉(十二峯): 성천부 동북 30리에 있는 흘골산(紇骨山). 속칭 무산(巫山) 12봉이라 한다.】 아래에 이르렀는데 작은 암자가 있었고 윤영과 한 스님이 이 암자에 살고 있었다.
見余躍然而喜, 相勞苦, 十八年之間, 貌不加老, 年當八十餘, 而行步如飛.
나를 보고 뛸 듯 기뻐하며 서로 수고로움을 위로했는데 18년 사이에 외모는 더 늙지 않았고 나이는 80여살에 당도했지만 걸음걸이는 나는 듯했다.
余問: “許生一二有矛盾事.” 老人卽擧解說, 歷歷如昨日事.
나는 “허생전엔 한두 가지 모순된 일이 있습니다.”라고 물으니, 노인은 곧바로 해설을 제시하니 일일이 어제 일 같았다.
曰: “子前讀昌黎文, 當▣.”
그리고 노인은 “자네가 전에 한창려(韓昌黎)의 문장을 읽더니 마땅히 ~ 했구만.”이라 말했다.
又曰: “子前欲爲許生立傳, 文當已就否?” 余謝未能.
또 “자네는 전에 허생의 입전(立傳)을 지으려 했었는데 문장은 마땅히 이미 지어졌는가?”라고 말했고 나는 지을 수 없었음을 사례했다.
語間余呼尹老人, 老人日: “我姓辛, 非尹也, 子誤認.”
말하는 사이에 나는 ‘윤노인(尹老人)’이라 불렀지만 노인은 “나의 성은 신(辛)이지 윤(尹)이 아니니 그대가 잘못 안 것이네.”라고 말했다.
余愕然問其名, 曰: “吾名嗇也.” 余詰之曰: “老人豈非姓名尹映耶, 今何改言辛嗇也?”
나는 놀라며 이름을 물으니, 노인은 “내 이름은 색(嗇)이라네.”라고 말했고 내가 그를 “노인은 어째서 성명을 윤영(尹映)이 아니라 하시고 지금은 어째서 신색(辛嗇)이라 고쳐 말씀하시나요?”라고 따졌다.
老人大怒曰: “君自誤認, 乃謂人變姓名耶?” 余欲再詰, 則老人轉益老, 靑瞳瑩瑩.
노인은 크게 “그대가 스스로 잘못 알고서 사람이 성명을 바꿨다고 하는가?”라고 화내니 나는 두 번째로 따지려 하니 노인은 더욱 더 굳어지며 푸른 눈동자는 반짝반짝했다.
余始知老人, 乃異趣之士, 或廢族, 或左道異端, 避人晦遮之徒, 是未可知也.
나는 비로소 노인이 다른 취향의 선비임을 알았으니 혹은 폐족(廢族)이거나 혹은 좌도(左道)【좌도(左道): 옛날 유교(儒敎)의 종지(宗旨)에 어긋나는 다른 종교(宗敎)를 이르던 말.】나 이단(異端)으로 남을 피해 은둔한 무리인지 알 수 없었다.
余闔戶去, 老人嘖嘖言: “可哀, 許生妻竟當復飢也.”
내가 문을 닫고 떠나니 노인은 시끄럽게 평판하며[嘖嘖] “슬퍼할 만하니 허생의 아내는 마침내 마땅히 다시 굶주릴 테지.”라고 말했다.
又廣州神一寺有一老人, 號篛笠李生員, 年九十餘, 力扼虎, 善奕棋, 往往談東方故事, 言論風生, 人無知名者.
또 광주(廣州) 신일사(神一寺)에 어떤 한 노인이 호를 ‘약립이생원(篛笠李生員)’이라 하니 나이 아흔 몇 살로 힘은 범을 잡고 잘 바둑을 뒀으며 이따금 우리나라의 옛 이야기를 말할 적엔 말이 바람이 생기는 듯해지만 사람들 중 이름을 아는 이가 없었다.
聞其年貌, 甚類尹映, 余欲一見, 而未果.
나이와 모습을 들으니 매우 윤영(尹映)과 유사해 내가 한 번 보고자 했지만 과연 하지 못했다.
世固有藏名隱居, 玩世不恭者, 何獨於許生, 而疑之乎?
세상에 짐짓 이름을 숨기고 은둔하며 세상을 가지고 놀며 공손치 못한 자이리니 어찌 유독 허생에게만 그걸 의심하리오?
谿菊下小飲, 援筆書之. 燕巖識.
평계(平谿)【평계(平谿): 연암서당(燕巖書堂) 앞에 있는 시내 이름】의 국화 밑에서 조금 마시고서 붓을 끌어다 그걸 쓴다. 연암이 기록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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