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答京之之一 (5)
건빵이랑 놀자
5. 총평 1 그리움이라든가 누군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모두 망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설사 망상이라 할지라도 그립고 아련한 마음을 우리는 어찌할 수가 없다. 2 이 글은 짤막한 편지지만 글 쓴 사람의 진정이 오롯이 담겨 있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여운이 참 깊다. 일생에 이런 편지를 한 통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리라. 3 옛날의 편지에는 크게 보아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격식을 갖추어서 쓰는 비교적 긴 편지이고, 다른 하나는 크게 격식을 따지지 않고 안부나 소회所懷를 전하는 짤막한 편지이다. 전자는 보통 ‘서書’라고 부르고, 후자는 ‘간찰簡札’이나 ‘척독尺牘’이라고 부른다. 경지에게 보낸 답장 세 통은 모두 후자에 속한다. 척독은 ‘서’에 비해 글쓰기가 자유롭고 격식에..
4.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곳 어제 당신께서는 정자 위에서 난간을 배회하셨고, 저 역시 다리 곁에 말을 세우고는 차마 떠나지 못했으니, 서로간의 거리가 아마 한 마장쯤 됐을 거외다. 모르긴 해도 우리가 서로 바라본 곳은 당신과 제가 있던 그 사이 어디쯤이 아닐까 하외다. 昨日足下, 猶於亭上, 循欄徘徊, 僕亦立馬橋頭, 其間相去已爲里許. 不知兩相望處, 還是那際. 당시 연암은 경지와 유별留別했던 듯하다. 떠나는 사람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을 ‘유별’이라 하고, 남아 있는 사람이 떠나는 사람을 전송하는 것을 ‘송별’이라 한다. 연암이 떠나왔으니, 연암은 유별한 게 되고, 경지는 송별한 게 된다. 두 사람 모두 작별이 퍽 아쉬웠던 모양이다. 경지는 말을 타고 떠나가는 연암을 정자 위 난간에서 ..
3. 석별의 아쉬움을 잇는 ‘사이’ 이야기 지난번 백화암百華菴에 앉아 있을 때 일이외다. 암주菴主인 처화處華가 멀리 마을에서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를 듣고는 비구 영탁靈托에게 이렇게 게偈를 읊더이다. “탁탁 하는 방망이 소리와 툭툭 하는 다듬잇돌 소리, 어느 것이 먼저인고?” 그러자 영탁은 합장하며 이렇게 말했사외다. “먼저도 없고 나중도 없으니 그 사이에서 소리가 들리옵나이다.” 頃坐百華菴, 菴主處華, 聞遠邨風砧, 傳偈其比丘靈托曰: “椓椓礑礑, 落得誰先?” 托拱手曰: “不先不後, 聽是那際?” 갑자기 문세가 확 전환되면서 앞서 「『말똥구슬』 서문蜋丸集序」에서 봤던 것과 같은 이상한 일화가 제시되고 있다. 뭘 말하려는 걸까? 처화가 툭 던진 물음은 방망이 소리가 먼저냐 다듬잇돌 소리가 먼저냐는 것이다. 어느..
2. 첫 시작부터 본론으로 들어간 편지 전의감동 시절 연암은 자신이 살던 집 건물에 ‘방경각放瓊閣’이라는 이름과 영대정映帶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 전하는 연암의 문집에는 ‘방경각 외전放璚閣外傳’이라는 이름하에 「양반전」 등 이른바 9전九傳을 수록해놓고 있다. 연암은 전의감동에 살 때 이전에 창작한 전들을 모아 『방경각 외전』이라는 책을 엮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의감동 시절 연암은 이 책 말고 또 하나의 창작집을 스스로 엮었으니, 『영대정잉묵映帶亭賸墨』이 그것이다. ‘영대정 잉묵’이란 영대정에서 엮은 하잘 것 없는 편지글이라는 뜻이다. ‘하잘 것 없는’이라는 말은 겸사로 한 말이다. 연암 자신의 편지글 모음집인 이 책은 정확히 1772년 10월에 편찬되었다. 연암은 이 책에 자서(映帶亭賸墨自序)를 붙..
1. 경지란 누구인가? 이 편지는 경지京之라는 사람에게 보낸 답장이다. 경지가 누군지는 확실치 않다. 나는 그가 혹 당대의 저명한 서예가이자 퉁소 연주자인 이한진李漢鎭(1732~?)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고 있다. 이한진은 호가 경산京山이고, 자는 중운仲雲이며,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경지’는 그의 또 다른 자字가 아닐까 한다. 이한진은 감역監役이라는 말단 벼슬을 지냈을 뿐이다. ‘감역’이라는 벼슬은 대개 문과에 급제하지 못한 양반이 음직蔭職으로 하는 벼슬이다. 홍대용과 박지원도 감역 벼슬로부터 벼슬을 시작했다. 이한진은 전서篆書와 퉁소에 능하고 아취가 있었으며, 성대중成大中(1732~1809)ㆍ홍대용ㆍ이덕무ㆍ박제가ㆍ홍원섭洪元燮(1744~1807) 등과 교유했다. 성대중의 문집인 『청성집』에 실려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