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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경지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 - 2. 첫 시작부터 본론으로 들어간 편지 본문

책/한문(漢文)

경지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 - 2. 첫 시작부터 본론으로 들어간 편지

건방진방랑자 2020. 4. 18.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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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첫 시작부터 본론으로 들어간 편지

 

 

전의감동 시절 연암은 자신이 살던 집 건물에 방경각放瓊閣이라는 이름과 영대정映帶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 전하는 연암의 문집에는 방경각 외전放璚閣外傳이라는 이름하에 양반전등 이른바 9九傳을 수록해놓고 있다. 연암은 전의감동에 살 때 이전에 창작한 전들을 모아 방경각 외전이라는 책을 엮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의감동 시절 연암은 이 책 말고 또 하나의 창작집을 스스로 엮었으니, 영대정잉묵映帶亭賸墨이 그것이다. ‘영대정 잉묵이란 영대정에서 엮은 하잘 것 없는 편지글이라는 뜻이다. ‘하잘 것 없는이라는 말은 겸사로 한 말이다. 연암 자신의 편지글 모음집인 이 책은 정확히 177210월에 편찬되었다. 연암은 이 책에 자서(映帶亭賸墨自序)를 붙였는데 그 말미에 한 책을 필사해서 방경각 동쪽 다락에 보관한다. 임진년(1772) 초겨울 상순에 연암거사燕巖居士가 쓰다(於是抄寫一卷, 藏棄于放瓊閣之東樓. 歲壬辰孟冬上瀚. 燕巖居士書)”라는 말이 있어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경지에게 보낸 답장은 바로 이 책의 맨 앞에 실린 편지다. 1772년이면 연암이 36세 때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적어도 연암 36세 이전의 편지랄 수 있다. 대체로 30대 전반의 어느 시점에 쓴 편지가 아닐까 추정된다.

한편, 이덕무의 친한 벗 중에 윤병현尹秉鉉이라는 이가 있는데, 이 분이 경지景之라는 자를 사용했다. 윤병현은 서출로 짐작된다. 이 편지의 경지가 혹 윤병현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 편지가 영대정잉묵映帶亭賸墨의 맨 앞에 실려 있다는 점으로 봐서, 그리고 편지의 문투나 분위기로 봐서, 수신인은 적어도 연암과 동격의 위치에 있던 사람이라고 해야 할 듯하고, 이 점에서 고아한 선비로 알려져 있는 이한진 쪽에 좀 더 마음이 쏠린다.

 

 

이별의 말 정다웠지만, 옛말에 천리 밖까지 따라가 배웅할지라도 끝내는 헤어져야 한다고 했거늘 어쩌겠습니까. 다만 한 가닥 아쉬운 마음이 떠나지 않고 착 달라붙어 있어, 어디서 오는지 자취가 없건만 사라지고 나면 삼삼히 눈에 아른거리는 저 허공 속의 꽃 같사외다[각주:1].

別語關關, 所謂送君千里, 終當一別, 柰何柰何. 只有一端弱緖, 飄裊纏綿, 如空裡幻花.

이 편지는 일반적인 형식을 따르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편지는 그 서두에 의례적인 말이 나오게 마련이다. 하다못해, 주신 편지를 잘 받았다든지, 보내신 편지를 받들어 읽고 답장을 쓴다든지 하는 이런 말이 서두에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편지는 그런 게 전혀 없다. 편지의 첫 글자에서부터 곧바로 마음속의 진정을 토로하고 있다. 이 점에서 이 편지는 격식과 의례를 따르기보다 마음의 진실을 따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편지란 의례적이고 사무적이며 반말만 가득한 것이 될 수도 있지만, 이처럼 더 없이 정답고 진실한 의사소통의 방식이 될 수도 있다. 요컨대 쓰기 나름인 것이다.

아마도 연암과 경지는 얼마 전에 이별했던 듯하다. 두 사람은 이별할 때 너무 아쉬워 다정한 말들을 서로 주고받았던 모양이다. “이별의 말 정다웠지만(別語關關)” 운운한 말은 그래서 한 말일 터이다. 하지만 집에 들어와 가만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아쉬움이 가느다란 실처럼 마음속에 연면히 자리하고 있어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다. 그건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허공 속의 꽃(空裡幻花)’처럼 손에 잡히지도 않고 실체도 없는 것이건만 눈앞에 삼삼히 어른거리며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이 단락은 이런 연암의 마음을 시적인 언어로 잘 그려내고 있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경지란 누구인가?

2. 첫 시작부터 본론으로 들어간 편지

3. 석별의 아쉬움을 잇는 사이이야기

4.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곳

5. 총평

 

  1. 공리환화空裡幻花: ‘환화幻花’는 ‘허공 속의 꽃’이라는 말로 실체가 없는 가상假像을 일컫는 불교 용어다. ‘공중화空中花’라고도 한다. 『능엄경楞嚴經』에 나오는 ‘제이월第二月’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있는 듯하나 실제로는 없는 사물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미망에 빠진 중생들은 늘 망령되이 가상을 진상眞像으로 믿는바 이것은 마치 눈이 흐릿한 사람이 공중에 꽃이 있고 하늘에 달이 둘 있다고 오인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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