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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62. 김종직의 파란만장을 담은 시 佔畢齋金宗直, 善山人也. 嘗出宰善山, 有詩曰: ‘津吏非瀧吏, 官人卽邑人. 三章辭聖主, 五馬慰慈親. 白鳥如迎棹, 靑山慣送賓. 澄江無點綴, 持以律吾身.’ 詞極典雅. 「長峴村家」詩曰: ‘籬外紅桃竹數科, 零零雨脚閒飛花. 老翁荷耒兒騎犢, 子美詩中西崦家.’ 可謂詩中有畵. 且如 ‘霜後梧桐猶窣窣, 月明鳷鵲自飜飜.’ 其寒淡如此, ‘鳩鳴穀穀棣棠葉, 蝶飛款款蕪菁花.’ 則雅麗如此, 所謂冠冕國朝者, 豈虛言哉! 해석 佔畢齋金宗直, 善山人也. 점필재 김종직은 선산 사람이다. 嘗出宰善山, 有詩曰: ‘津吏非瀧吏, 官人卽邑人. 三章辭聖主, 五馬慰慈親. 白鳥如迎棹, 靑山慣送賓. 澄江無點綴, 持以律吾身.’ 일찍이 선산에 수령이 되어 가다가 「관수루에 제목을 붙여 지은 시[觀水樓 題詠詩] / 낙동역에서[洛..
16. 돌연히 우뚝 선 최치원 我東之通中國, 遠自檀ㆍ箕, 而文獻蓋蔑蔑. 隋ㆍ唐以來, 始有作者, 如乙支文德之獻規仲文, 新羅女王之織錦頌, 功雖在簡冊, 率皆寂寞, 不足下乘. 而至于唐侍御史崔致遠, 文體大備, 遂爲東方文學之祖. 其「江南女」詩曰: ‘江南蕩風俗 養女嬌且憐 性冶恥針線 粧成調急絃 所學非雅音 多被春心牽 自謂芳華色 長占艶陽天 却笑隣舍女 終朝弄機杼 機杼終老身 羅衣不到汝’ 佔畢齋云: “公仕于唐, 此詩疑見三吳女兒作.” 余觀此詩, 蓋有所感諷而作, 非但詠三吳女兒也. 辭極古雅, 非後世人可及. 所著詩文甚富, 而屢經兵燹, 傳者絶少, 良可惜也. 해석 我東之通中國, 遠自檀ㆍ箕, 우리나라가 중국과 교류한 것은 멀리 단군과 기자 때부터지만 而文獻蓋蔑蔑. 문헌이 거의 없다. 隋ㆍ唐以來, 始有作者, 수당 이래로 비로소 작자가 나왔으..
6부 궁녀들의 길쌈 내기회소곡(會蘓曲) 김종직(金宗直) 儒理王九年, 定六部號, 中分爲二, 使王女二人, 各率部內女子分朋. 自七月望, 每日, 早集大部之庭績麻, 乙夜而罷. 至八月望, 考其功之多少, 負者置酒食, 以謝勝者. 於是, 歌舞百戲皆作, 謂之嘉徘. 是時, 負家一女子起舞, 嘆曰: “會蘓會蘓” 其音哀雅, 後人因其聲作歌, 名會蘓曲. 會蘓曲 會蘓曲 西風吹廣庭 明月滿華屋 王姬壓坐理繅車 六部女兒多如簇 爾筥旣盈我筐空 釃酒揶揄笑相謔 一婦嘆千室勸 嘉徘縱失閨中儀 猶勝跋河爭嗃嗃 해석 儒理王九年, 定六部號, 中分爲二, 유리왕 9년에 육부의 이름을 정하고 가운데를 둘로 나누고 使王女二人, 各率部內女子分朋. 왕녀 두 사람에게 각각 육부 안의 여자를 거느리고 무리를 나누었다. 自七月望, 每日, 早集大部之庭績麻, 乙夜而罷. 7월 보름..
김종직金宗直: 1431(세종 13)~1492(성종 23) 자는 계온(季昷)ㆍ효관(孝盥), 호는 점필재(佔畢齋)【점필(佔畢): ‘책의 글자만 읽을 뿐 그 깊은 뜻은 알지 못함을 이르는 말’로 쓰이지만 원랜 책을 의미한다. ‘점(佔)’을 ‘보다[視]’로 훈하기도 하나, ‘대쪽[笘]’으로 훈하는 것이 맞다. 다 죽간의 책들이다. ‘필(畢)’도 ‘죽간[簡]’을 의미한다. 이 ‘점필’이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에서 조선 사람의 종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밀양사람 김종직의 호로서 유명하다. 김종직 문하에서 김굉필이 나왔고, 김굉필 문하에서 조광조가 나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김종직이 ‘점필’이라는 단어가 매우 부정적으로 쓰인 사례라는 것을 몰랐을 리 없는데 왜 하필 호를 ‘점필재’라고 했는지 알 수가 없다. 김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