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댭경지지이 (5)
건빵이랑 놀자
5. 총평 1 이 글은 표면적으로는 글읽기에 대해 말하고 있으나 기실 글쓰기의 문제를 밑바닥에 깔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 이 글은 문자와 사물의 관계에 대해 연암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문자를 그냥 문자로만 알아서는 안 되고, 문자에 생기와 온기 및 사물의 다채로운 뉘앙스를 채워 넣을 수 있어야 비로소 문자를 제대로 아는 것이라는 관점은 『과정록』에 나오는 다음의 일화에서도 확인된다. 아버지는 이공(이광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평생 독서했는데 아는 글자가 몇 자나 되지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며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비웃었다. ‘이공이 글을 잘하고 박식한 선비라는 걸 누가 모른단 말야!’ 이공은 한참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겨우 서른 자 남짓 아는..
4. 사물을 잘 관찰하는 것이 훌륭한 독서 아침에 일어나니 푸른 나무 그늘이 드리운 뜨락에 여름새들이 찍찍 짹짹 울고 있더이다. 나는 부채를 들어 책상을 치며 이렇게 외쳤소이다. “저것이야말로 ‘날아가고 날아온다’라는 문자이고, ‘서로 울며 화답한다’라는 문장이다! 갖가지 아름다운 문채를 문장이라고 한다면 저보다 더 나은 문장은 없으리라. 오늘 나는 진정한 글 읽기를 했노라!” 朝起, 綠樹蔭庭, 時鳥鳴嚶. 擧扇拍案胡叫曰 : “是吾飛去飛來之字, 相鳴相和之書.” 五釆之謂文章, 則文章莫過於此. 今日僕讀書矣. 다시 문세를 전환해 연암 스스로의 경험을 말하고 있다. 어떻게 글을 읽어야 하는가? 어떤 독서가 참된 독서인가? 이 단락은 이 물음에 대해 답하고 있다. 연암의 답인즉슨, ‘사물’을 읽으라는 것이다. 사물..
3. 새를 글자 속에 가두다 저 하늘을 날아가며 우는 새는 얼마나 생기가 있습니까? 그렇건만 적막하게도 새 ‘조鳥’자 한 글자로 그것을 말살하여 새의 고운 빛깔을 없애버리고 그 울음소리마저 지워 버리지요. 이는 마을 모임에 가는 촌 늙은이의 지팡이 머리에 새겨진 새 모양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새 ‘조鳥’자의 진부함이 싫어 산뜻한 느낌을 내고자 새 ‘조鳥’자 대신에 새 ‘금禽’자를 쓰기도 하지만, 이는 책만 읽고서 문장을 짓는 자들의 잘못이라 할 거외다. 彼空裡飛鳴, 何等生意? 而寂寞以一‘鳥’字, 抹摋沒郤彩色, 遺落容聲. 奚异乎赴社邨翁杖頭之物耶? 或復嫌其道常, 思變輕淸, 換箇禽字, 此讀書作文者之過也. 연암은 시선을 갑자기 하늘로 돌리고 있다. 그리하여 앞 단락에서 언급한 천지 사방 혹은 만물의 한 예로서..
2. 맹목적인 독서로 헛 똑똑이가 되다 이 편지글은 그 서두가 퍽 도발적이다. 다짜고짜 “정밀하고 부지런히 글을 읽은 이로 포희씨包犧氏만 한 사람이 있겠습니까?(讀書精勤, 孰與庖犧?)”라고 묻는 말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인즉슨 포희씨만큼 글을 잘 읽은 사람은 없다는 건데,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연암의 생각을 따라가면 이렇다. 포희씨는 우주의 삼라만상을 세밀히 관찰하여 그 근본 원리를 8괘라는 기호에 집약해냈다. 포희씨가 삼라만상을 관찰한 행위는 바로 글(혹은 책)을 읽은 것에 다름 아니다. 왜냐면 글의 에센스, 즉 글의 정수精髓(이 단락에서 말하고 있는 글의 ‘정신’이란 바로 이런 뜻이다)는 바로 사물과 세상 속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삼라만상을 잘 관찰하여 그 정수를 포착해 8괘..
1. 천지 사이에 있는 게 책의 고갱이 정밀하고 부지런히 글을 읽은 이로 포희씨包犧氏만 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글의 정신과 뜻이 천지사방에 펼쳐 있고 만물에 두루 있으니, 천지사방과 만물은 글자로 쓰지 않은 글자이며, 문장으로 적지 않은 문장일 거외다. 후세에 글을 부지런히 읽기로 호가 난 사람들은 기껏 거친 마음과 얕은 식견으로 말라붙은 먹과 문드러진 종이 사이를 흐리멍덩한 눈으로 보면서 하찮은 글귀나 주워 모은 데 불과하외다. 이는 이른바 술지게미를 먹고서 취해 죽겠다고 하는 격이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讀書精勤, 孰與庖犧? 其神精意態, 佈羅六合, 散在萬物, 是特不字不書之文耳. 後世號勤讀書者, 以麁心淺識. 蒿目於枯墨爛楮之間, 討掇其蟫溺鼠渤. 是所謂哺糟醨而醉欲死. 豈不哀哉! 이 단락의 취지는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