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야뇌당기 (5)
건빵이랑 놀자
5. 친구의 궁핍함을 알면서도 마음엔 갈등이 생기네 청나라 김성탄金聖嘆(1608-1661)의 「쾌설快說」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가난한 선비가 돈을 꾸러 와서는 좀체 입을 열지 못하고서 묻는 말에 예예 대꾸하며 딴 소리만 한다. 내가 가만히 그 난처한 뜻을 헤아리고는 사람 없는 곳으로 데려가 얼마나 필요한지 묻고 급히 내실로 들어가 필요하다는대로 주었다. 그런 뒤에 그 일이 반드시 지금 당장 속히 돌아가서 처리해야 할 일인가? 혹 조금 더 머물면서 함께 술이나 마실 수는 없는가? 하고 물었다.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寒士來借銀, 謂不可啓齒, 于是唯唯, 亦說他事. 我窺見其苦意, 拉向無人處, 問所需多少; 急趨入內, 如數給與. 然後問其必當速歸料理是事耶? 爲尙得少留共飮酒耶? 不亦快哉! 그러자 황균재黃鈞宰..
4. 나의 모든 걸 다 털어놓게 만드는 친구 그런데 기린협으로 떠나가는 백영숙을 글로써 전송한 사람은 연암만이 아니었다. 박제가朴齊家의 문집에서도 「송백영숙기린협서送白永叔基麟峽序」란 같은 제목의 글과 만날 수 있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우리네 삶에서 우정의 참 의미를 되새기자는데 이 글의 주된 뜻을 두었으므로 좀 길지만 함께 읽어보기로 한다. 천하에서 가장 지극한 우정은 궁할 때의 사귐이라 하고, 벗의 도리에 대한 지극한 말로는 가난을 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아! 청운靑雲의 선비가 혹 굽히어 초가집에 수레타고 찾아오기도 하고, 포의布衣의 선비가 혹 권세가의 붉은 대문에 소매자락을 끌기도 하니, 어이하여 서로 간절히 구하는데도 서로 마음맞기가 이다지 어렵단 말인가? 天下之至友曰窮交, 友道之至言曰論貧. 嗚..
3. 백동수는 참된 야뇌인이구나 한때 그는 버려진 야인野人의 삶과 굶주리는 가난을 자조하며 자신의 당호堂號를 아예 ‘야뇌당野餒堂’이라 짓기도 하였다. 이덕무는 그를 위해 「야뇌당기野餒堂記」를 지어주었는데, 이제 그 일부를 읽어보기로 하자. 야뇌野餒는 누구의 호인가? 내 친구 백영숙의 자호自號이다. 내가 영숙을 보건데는 기위奇偉한 선비인데, 무슨 까닭으로 스스로 그 낮고 더러운 곳에 처한단 말인가? 나는 이를 알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세속을 벗어나 무리와 어울리지 않는 선비를 보면 반드시 이를 조소하고 비웃어 말하기를, “저 사람은 생김새가 고박古樸하고 의복이 세속을 따르지 않으니 야인野人이로구나. 말이 실질이 있고 행동거지가 시속時俗을 좇지 않으니 뇌인餒人이로다.” 라고 하며 마침내 더불어 어울리지 않..
2. 서얼금고법으로 뜻을 펴지 못한 채 이제 영숙은 기린협에서 살겠다고 한다. 송아지를 지고 들어가 키워서 밭을 갈게 하겠다고 한다. 소금도 된장도 없는지라 산아가위와 돌배로 장을 담그리라고 한다. 그 험하고 가로막혀 궁벽한 품이 연암협보다도 훨씬 심하니, 어찌 견주어 같이 볼 수 있겠는가? 今永叔將居麒麟也, 負犢而入, 長而耕之. 食無鹽豉, 沈樝梨而爲醬, 其險阻僻, 遠於燕巖, 豈可比而同之哉. 한때 그에게도 젊음의 야망에 불타던 시절이 있었다. 나라를 위해 죽으려는 장한 기개를 품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야망, 그 기개를 다 접어두고 세상을 등져 자취를 감추겠다고 한다. 날더러 이런 궁벽한 곳에서 어찌 살려 하느냐고, 답답하지도 않느냐고 안타까워하던 그가, 나 살던 연암협보다 더 궁벽한 두메 ..
1. 기린협으로 들어가는 그대를 장하게 여기리 현실에 좌절하고 가난을 못이겨 식솔들을 이끌고 강원도 두메 산골로 들어가는 벗 백영숙白永叔을 전송하며 써준 글이다. 친구를 전송하면서도 글을 써주느냐고 물을 수 있겠는데, 예전에는 그랬다. 그의 이름은 백동수白東修(1743-1816)이니 영숙永叔은 그의 자이다. 호는 인재靭齋 또는 야뇌당野餒堂이라 하였고 점재漸齋라고도 했다. 영숙永叔은 장수 집안의 자손이다. 그 선대에 충성으로 나라를 위해 죽은 이가 있으니, 지금까지 사대부들이 이를 슬퍼한다. 영숙은 전서와 예서에 능하고 장고掌故에 밝다. 젊어서 말 타기와 활 쏘기에 뛰어나 무과에 뽑히었다. 비록 벼슬은 시명時命에 매인 바 되었으나,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위해 죽으려는 뜻만은 선조의 공덕을 잇기에 족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