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서얼금고법으로 뜻을 펴지 못한 채
이제 영숙은 기린협에서 살겠다고 한다. 송아지를 지고 들어가 키워서 밭을 갈게 하겠다고 한다. 소금도 된장도 없는지라 산아가위와 돌배로 장을 담그리라고 한다. 그 험하고 가로막혀 궁벽한 품이 연암협보다도 훨씬 심하니, 어찌 견주어 같이 볼 수 있겠는가? 今永叔將居麒麟也, 負犢而入, 長而耕之. 食無鹽豉, 沈樝梨而爲醬, 其險阻僻, 遠於燕巖, 豈可比而同之哉. |
한때 그에게도 젊음의 야망에 불타던 시절이 있었다. 나라를 위해 죽으려는 장한 기개를 품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야망, 그 기개를 다 접어두고 세상을 등져 자취를 감추겠다고 한다. 날더러 이런 궁벽한 곳에서 어찌 살려 하느냐고, 답답하지도 않느냐고 안타까워하던 그가, 나 살던 연암협보다 더 궁벽한 두메 산골로 들어가겠다 한다. 누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누가 그에게 이런 결심을 강요했는가?
그러나 나는 갈림길 사이를 서성이면서 여태도 거취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하물며 감히 영숙이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나는 그 뜻을 장히 여길지언정 그 궁함을 슬퍼하지 않으련다. 顧余徊徨岐路間, 未能決去就, 況敢止永叔之去乎? 吾壯其志, 而不悲其窮. |
그러나 나는 그의 뜻을 장하게 여길지언정, 그의 궁함을 슬퍼하지 않겠다. 티끌세상의 그물에 얽혀 현실에 발을 들여놓지도, 그렇다고 현실을 등져 숨지도 못한 채, 갈림길에서 이리저리 서성이는 나의 망설임에 비긴다면, 그의 이번 결행은 오히려 장하지 아니한가?
백영숙의 증조부는 백시구白時耈(1649-1722)로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던 인물이다. 경종景宗 때 왕세제王世弟 책봉을 둘러싸고 노론과 소론간에 벌어진 신임사화辛壬士禍에서 영의정 김창집의 편에 섰다가 모함에 걸려 옥사하였고, 뒤에 영조 즉위 후에 호조판서로 추증된 일이 있다. 그런데 백영숙의 조부 상화尙華는 바로 백시구의 서자였다. 위에서 시명에 얽매인바 되었다 함은 곧 그가 서얼의 신분임을 두고 한 말이다. 할아버지가 서출이니 그 손자도 서얼이 된다. 서얼은 능력이 제 아무리 뛰어나도 문과文科는 꿈조차 꾸지 못하고 무과武科에만 겨우 응시할 수 있으며, 벼슬을 주더라도 한직閑職만 제수한다는 것이 조선시대 서얼들을 옭죄이고 있던 이른바 서얼금고법庶孼禁錮法이다. 무슨 이런 끔찍한 법이 있는가? 선대先代가 서출이면 그 후손은 천형天刑처럼 서얼의 낙인을 찍고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백영숙이 견디다 못해 식솔들을 이끌고 강원도 두메 산골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이다. 요컨대 그는 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28세 때 무과에 당당히 급제하였다. 그도 청운의 꿈을 품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뜻을 굽히는 비굴한 굴종이 아니고서는 입에 풀칠하기조차 힘겨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생각해 보면 백영숙과 같은 사람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세상을 위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유위有爲한 인재들이 제 스스로 세상을 버리게끔 만드는 현실, 이러한 현실을 향한 울분을 연암은 이 글을 통해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글 전체를 통해 볼 때 극적인 반전을 통한 비장미가 잘 구현되어 있는 작품이다.
▲ 전문
인용
2-1.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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