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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도협총설 - 67. 예스런 문장은 시대에 달려 있지 않고 작가의 의지에 달려 있다 본문

문집/도곡집

도협총설 - 67. 예스런 문장은 시대에 달려 있지 않고 작가의 의지에 달려 있다

건방진방랑자 2019. 11. 7.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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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예스런 문장은 시대에 달려 있지 않고 작가의 의지에 달려 있다

 

 

시대가 뒤처지면 예스런 문장을 짓지 못한다

我東人生長偏方, 其受氣固局隘, 而日用所見, 皆俗下文字, 雖有高才絶藝, 出語自不能古, 其勢然也. 比之於古, 文之極高莫尙先秦, 西京不及先秦, 東京又不及西京, 昌黎文起八代之衰, 而比之兩漢, 猶不及. 以此而言, 又不及, 亦其勢然爾, 况偏邦之於中國乎?

 

그렇기에 예스런 문장을 쓰려하지 말고 자신의 생각으로 글을 써라

然古人識高, 故漢人未嘗摹擬六經之文, 昌黎亦未嘗摹擬之文, 未嘗摹擬昌黎之文. 但用其意格而已, 其爲漢爲韓爲歐爲曾, 本色自在矣. 若只就古文字句, 切切摹擬, 而不敢自吐出胸中一語, 則反成局澁單薄, 有似着優人假面, 眞形不存, 何足尙哉? 作文者當以古人之體裁, 作吾之文字, 使人之觀者知其爲作文人之文, 而俗下庸鄙之習則痛去之足矣, 何必一一摹擬哉?

 

일상의 말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近來公家文字, 亦不必避而不用也. 上自秦, 下至韓, 時俗例用之文字, 皆不避焉, 俱可檢看也.

余曾作人墓文, 用一等語, 盖一等者, 我國科塲等第之稱也, 近來尙古者見之, 大驚以爲疵. 余披昌黎鄭羣誌上等二字以示之, 其人曰: “上等旣有昌黎文字, 可用, 此則不可用.” 其膠固可笑如此.

 

문자의 우아함과 속됨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文字雅俗, 初不在古今. 雖六經文字, 亦有用之而俗者; 時俗文字, 亦有用之而雅者, 其雅其俗, 都在用之之如何, 豈局於古今之別乎?

 

 

 

 

해석

 

시대가 뒤처지면 예스런 문장을 짓지 못한다

 

我東人生長偏方, 其受氣固局隘, 而日用所見, 皆俗下文字, 雖有高才絶藝, 出語自不能古, 其勢然也.

우리나라 사람은 구석진 곳에서 성장해 기를 받은 게 본디 국한되고 쪼잔해 날마다 본 것이 모두가 속되고 수준 낮은 문자로, 비록 뛰어난 재주와 절묘한 재주가 있더라도 말을 냄이 스스로 예스러울 수 없으니, 그 기세가 그러해서다.

 

比之於古, 文之極高莫尙先秦, 西京不及先秦, 東京又不及西京, 昌黎文起八代之衰, 而比之兩漢, 猶不及.

옛날에 비교해보면 문장의 지극히 좋은 것이 선진(先秦)보다 좋은 게 없고 전한[西京]의 문장은 선진에 미치지 못하며, 후한[東京]의 문장은 또한 전한의 문장에 미치지 못하고 한유의 문장은 팔대의 쇠함에서 일어났지만 양한과 비교하면 오히려 미치지 못한다.

 

以此而言, 又不及, 亦其勢然爾, 况偏邦之於中國乎?

이것으로 말하면 구양수와 증공은 한유에 미치지 못하니 또한 기세한 그러한 것이니 하물며 구석진 나라를 중국에 비교함에 있어서랴.

 

 

 

그렇기에 예스런 문장을 쓰려하지 말고 자신의 생각으로 글을 써라

 

然古人識高, 故漢人未嘗摹擬六經之文, 昌黎亦未嘗摹擬之文, 未嘗摹擬昌黎之文.

그러나 고인의 식견이 높았기 때문에 한나라 사람이 일찍이 육경의 문장을 본뜨지 않았고 창려 또한 일찍이 사마천과 반고의 문장을 본뜨지 않았으며 구양수와 증공도 일찍이 창려의 문장을 본뜨지 않았다.

 

但用其意格而已, 其爲漢爲韓爲歐爲曾, 本色自在矣.

다만 자신의 생각과 격조를 쓸 뿐이니, 한나라가 되고 한유가 되고 구양수가 되고 증공이 되어서 본색이 절로 그대의 것이었다.

 

若只就古文字句, 切切摹擬, 而不敢自吐出胸中一語, 則反成局澁單薄, 有似着優人假面, 眞形不存, 何足尙哉?

만약 다만 가령 고문의 자구로 절실히 모의하지만 감히 스스로 흉중의 한 말을 뱉어낸 것이 아니라면 도리어 국한되고 떫고 단조롭고 천박하게 되어 배우가 가면을 쓴 것과 같아 진짜 모습이 보존되질 않으니 어찌 숭상하겠는가.

 

作文者當以古人之體裁, 作吾之文字, 使人之觀者知其爲作文人之文, 而俗下庸鄙之習則痛去之足矣, 何必一一摹擬哉?

작문하는 사람은 마땅히 고인의 체제로 자신의 문자를 지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문장을 지은 사람의 문장임을 알게 하고 속되고 등급이 낮고 용렬하고 비루한 습속을 통렬히 제거해야 옳지 하필 일일이 모의하겠는가.

 

 

 

일상의 말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近來公家文字, 亦不必避而不用也.

근래 관청에서 쓰는 문자는 또한 반드시 피해 사용하지 않을 건 아니다.

 

上自秦, 下至韓, 時俗例用之文字, 皆不避焉, 俱可檢看也.

위로 진나라와 한나라로부터 아래로 한유와 구양수에 이르기까지 당시 시속에서 쓰던 문자를 모두 피하지 않았으니 모두 점검하여 볼 만하다.

 

余曾作人墓文, 用一等語, 盖一等者, 我國科塲等第之稱也, 近來尙古者見之, 大驚以爲疵.

내가 일찍이 묘지문을 지을 적에 일등(一等)’이란 말을 썼었는데 대체로 일등이라는 것은 우리나라 과거시험의 순위를 일컫는 것으로 근래에 고문을 숭상하는 사람이 그것을 보고 크게 놀라며 흠이라 여겼다.

 

余披昌黎鄭羣誌上等二字以示之, 其人曰: “上等旣有昌黎文字, 可用, 此則不可用.”

내가 창려 정군지(鄭羣誌)를 펴서 ()ㆍ등()’ 두 글자를 보여주자 그 사람이 상등(上等)은 이미 창려의 문자로 있으니 쓸 만하지만 일등(一等)이란 말을 써선 안 되네.”라고 말했다.

 

其膠固可笑如此.

융통성이 없어교고(膠固): 변통성 없이 한 곳에 고정된 것 가소로운 게 이와 같다.

 

 

 

문자의 우아함과 속됨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文字雅俗, 初不在古今.

문자의 우아함과 속됨은 애초에 고금에 있지 않았다.

 

雖六經文字, 亦有用之而俗者; 時俗文字, 亦有用之而雅者, 其雅其俗, 都在用之之如何, 豈局於古今之別乎?

비록 육경의 문자라도 또한 그것을 써서 속된 경우도 있고 시속의 문자라도 또한 그것을 써서 우아한 경우도 있으니 우아함과 속됨은 도무지 그것을 씀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지 어찌 고금의 분별에 국한된 것이겠는가.

 

 

인용

저자 /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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