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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이익 - 향악(鄕樂) 본문

산문놀이터/조선

이익 - 향악(鄕樂)

건방진방랑자 2019. 10. 8.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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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악(鄕樂)

 

이익(李瀷)

 

 

樂學軌範載俗樂無㝵之名. 高麗史無㝵之戲, 出自西域, 其辭多用佛語, 姑存節奏, 字書㝵與礙同, 無㝵謂無所礙障也.

羅僧元曉瑤石宮失火之後, 易俗服自號, 小性居士. 偶得優人舞弄大瓠, 其狀瑰奇, 因其形製爲道具以華嚴經, ‘一切無㝵人, 一道出死生.’之語, 名曰無㝵, 仍作歌流于世.

曾住芬皇寺, 三昧經, 置筆硯於牛之兩角上, 謂之角乘贊曰: ‘角乘初開三昧軸, 舞壺終掛萬街風. 月明瑤石春眠去, 門掩芬皇顧影空.’

又按東京雜記, 元曉嘗撫玩曲項葫蘆, 歌舞於市, 後好事者綴金鈴於上, 垂綵帛於下, 所謂腹若秋蟬項如夏鼈是也. 星湖先生僿說卷之十五

 

 

 

 

해석

樂學軌範載俗樂無㝵之名.

악학궤범(樂學軌範)에는 속악(俗樂) 중 무애(無㝵)라는 악곡명이 기재되어 있다.

 

高麗史無㝵之戲, 出自西域, 其辭多用佛語, 姑存節奏, 字書㝵與礙同, 無㝵謂無所礙障也.

고려사(高麗史)를 살펴보면 무애(無㝵)라는 유희는 서역으로부터 나와 말이 대개 불교용어에 사용되어 우선 음절과 연주만 보존되었다라고 했고 자서(字書)()는 애()와 같으니 무애(無㝵)는 막힌 게 없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羅僧元曉瑤石宮失火之後, 易俗服自號, 小性居士.

신라의 스님 원효(元曉)는 요석궁(瑤石宮)이 불타 소실된 후에 일상옷으로 바꾸고서 소성거사(小性居士)’라 스스로 이름지었다.

 

偶得優人舞弄大瓠, 其狀瑰奇, 因其形製爲道具以華嚴經, ‘一切無㝵人, 一道出死生.’之語, 名曰無㝵, 仍作歌流于世.

우연히 광대[優人]가 가지고 놀던 큰 박을 얻었는데 그 모양이 크고도 기괴하여 그 모양에 따라 도구를 만들어 화엄경(華嚴經)일체 막힘이 없는 사람은 하나의 길이 죽고 사는 것에서 탈출한다.’라는 말로 무애(無㝵)라 이름짓고서 노래를 지어 세상에 유행시켰다.

 

曾住芬皇寺, 三昧經, 置筆硯於牛之兩角上, 謂之角乘贊曰: ‘角乘初開三昧軸, 舞壺終掛萬街風. 月明瑤石春眠去, 門掩芬皇顧影空.’

일찍이 분황사(芬皇寺)에 살 적에 삼매경(三昧經)을 찬술했는데 붓과 벼루를 소의 양 뿔 위에 두고 각승(角乘)이라 말하며 기렸으니 다음과 같다.

 

角乘初開三昧軸 각승(角乘)은 막 삼매의 축에서 열렸고
舞壺終掛萬街風 무호(舞壺)는 끝내 일만 거리의 바람에 걸렸네.
月明瑤石春眠去 달 밝은 요석궁에선 봄 잠이 떠났고
門掩芬皇顧影空 문 닫은 분황사에선 그림자 돌아보니 비었어라.

 

又按東京雜記, 元曉嘗撫玩曲項葫蘆, 歌舞於市, 後好事者綴金鈴於上, 垂綵帛於下, 所謂腹若秋蟬項如夏鼈是也. 星湖先生僿說卷之十五

또한 동경잡기(東京雜記)를 살펴보면 원효(元曉)가 일찍이 목 굽은 호로병을 만지며 저잣거리에서 노래하며 춤추니 후대의 호사가들이 위에는 금방울을 꿰맸고 아래는 채색비단 드리웠다고 했으니 소위 배는 가을 매미 같고 목은 여름 자라 같다는 것이 이것이다.

 

 

인용

저자 / 지도

앞 글(此居記) / 뒷 글(松石園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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