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 스님은 무엇을 깨달았는가?
만약 우리가 약속한 친구가 오지 않는 것에 대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낸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건 우리의 마음이 오지 않은 친구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에 와 있어야만 하는 친구가 지금 내 생각 바깥에서는 없다는 것이죠. 결국 마음의 고통은 내 마음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 내 마음 바깥에 없을 때, 전자에 집요하게 집착하는 경우 발생하는 것입니다. 친구가 오지 않는다고 여러분은 카페에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냅니까? 차라리 그 친구를 만나러 왔다는 생각을 지우는 것이 어떻습니까? 물론 친구를 만나러 왔다는 생각 자체를 완전히 없애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런 생각 자체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죠. 만약 마음으로부터 그런 생각을 지울 수만 있다면, 여러분에게는 아주 자그마한 평화와 행복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깊은 커피의 향기에 빠져볼 수도, 혹은 은은한 재즈 음률에 몸을 맡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친구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렬해진다면, 이런 작은 행복은 여러분의 인생에서 영영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불교는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항상 불교는 마음이 왜 고통에 사로잡히는지 진지하게 숙고합니다. 싯다르타는 바로 집착이 마음을 고통에 빠뜨리는 원인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집착만 제거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고통을 없앨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쉽게 생각하지는 말기 바랍니다. 베르그손의 이야기처럼 집착은 우리 인간에게는 불가피한 메커니즘으로 출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착을 제거하려면 우리는 초인적인 의지를 가져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아이의 해맑은 얼굴이 마음속에 가득한데, 그 아이는 이미 죽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코 마음에서 그 아이를 지워버릴 수 없을 때, 아이의 엄마는 고통으로 흐느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 마음속에서 그 아이를 정말 떠나보낸다면, 그녀는 어떻게 될까요? 아마 그녀의 고통은 조금씩이나마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전체 인생에 있어 단지 아이의 죽음만이 그녀에게 고통을 주는 것일까요?
그녀는 살아가는 동안 너무나 많은 사건과 마주칠 것입니다. 사건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집착하다보면, 그녀의 인생은 아마 견디기 어려운 온갖 고통으로 점철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고해(苦海)와도 같다고 하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 즉 우리는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불교는 단순히 특정한 집착만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집착 자체를 없애서 고통의 바다 자체로부터 완전히 빠져나오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구도자들, 바로 스님들은 그런 분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원효(元曉, 617~686)【원효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불교계에도 큰 영향을 끼친 불교 이론가이다. ‘논쟁을 조화시키려는’ 사유 경향 때문에 그의 사상은 ‘화쟁’사상이라고 이야기된다. 그것은 그가 이론적으로는 ‘모든 것이 실체가 없다’는 중관불교와 ‘마음만은 존재한다’는 유식불교를, 정치적으로는 평등을 강조하는 종교 논리와 차별을 긍정하는 국가 논리를 종합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주요 저서로 『십문화쟁론』, 『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론』 등이 있다】 스님을 알 겁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진실로 깨달았다고 칭송되는 분이죠. 그래서 원효 스님을 통해 우리는 완전한 깨달음, 즉 집착을 뿌리째 뽑아버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잠시 엿볼 생각입니다.
옛날 동국의 원효 법사와 의상 법사 두 분이 함께 스승을 찾아 당나라로 왔다가 밤이 되어 황폐한 무덤 속에서 잤다. 원효 법사가 갈증으로 물 생각이 나던 참에 마침 그의 곁에 물이 고여 있어 손으로 움켜 마셨는데, 맛이 좋았다. 다음날 보니, 그것은 시체가 썩은 물이었다. 그때 마음이 불편하고 토할 것 같았는데, 그 순간 원효 법사는 활연히 크게 깨달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나는 부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단지 나의 마음이고[三界唯心]’ ‘모든 대상이 단지 나의 의식이다[萬法唯識]’라고 하셨던 것을 들었다. 그러기에 아름다움과 추함은 나에게 있지, 실제로 물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겠구나.” 마침내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지극한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였다. 『종경록(宗鏡錄)』
이 이야기는 연수(延壽, 904~975)라는 중국 스님이 지은 『종경록」이란 책에 실려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원효 스님과 관련된 많은 에피소드 중 가장 유명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지요. 원효 스님은 의상(義湘, 625~702) 스님과 함께 불교를 더 깊게 배우기 위해 중국 당나라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밤이 늦어 잘 곳을 찾지 못하여 황폐한 무덤 속에서 자게 되었습니다. 물론 어둑한 밤이었으니 두 스님은 그곳이 무덤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겁니다. 어쨌든 그곳에서 원효 스님은 오랜 여정에 지친 몸을 눕히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런데 한밤중에 스님은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마침 옆에 고여 있던 물을 발견한 스님은 그 물을 달게 마시고 갈증을 해소합니다.
그런데 날이 밝자 갑자기 모든 상황이 달라집니다. 어제 몸을 눕혔던 곳은 무덤이었으며, 자신이 달게 마신 물은 시체가 썩어 고여 있던 물이었기 때문입니다. 토악질을 참을 수 없던 그때, 원효 스님은 불교의 진수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스님은 당나라를 떠나 다시 신라로 돌아옵니다. 더 이상 당나라에 머물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원효 스님이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단지 나의 마음이고, 모든 대상이 단지 나의 의식이다.” 원효 스님의 이 말은 아주 조심스럽게 이해되어야만 합니다. 원효 스님이 ‘나의 마음’이나 ‘나의 의식’만이 존재하고 그 외의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서양철학사에서는 이런 입장을 ‘절대적 관념론(aubsolute idealism)’【절대적 관념론은 헤겔의 사변철학으로부터 유래하는 개념이다. 그는 자신의 변증법적 철학을 절대적 관념론이라고 불렀다. 세계와 역사가 절대정신의 변증법적인 자기 전개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헤겔에게 있어 세계나 역사 속에서 확인될 수 있는 것은 모두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은 단지 절대정신일 뿐이기 때문이다】이라고 말하고, 그 대표자로 헤겔을 지목합니다. 원효 스님은 과연 헤겔과 같은 관념론을 표방했던 것일까요?
이런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스님의 다음 이야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름다움과 추함은 나에게 있지, 실제로 물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겠구나.” 물이 시원하게 갈증을 해소해주었다는 생각, 그리고 시체가 썩은 물이라서 역겹다는 생각은 오직 스님의 마음속에만 존재했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물 자체는 전혀 변하지 않았죠.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스님의 마음뿐이었습니다. 원효 스님의 깨달음은 오히려 마음 바깥의 사물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나와 무관하게 그대로 존재한다는 통찰과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절대적 관념론’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근본적 경험론(radical empiricism)’【근본적 경험론은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책, 『근본적 경험론에 입각한 논고들』로부터 유래한 개념이다. 이 책에서 제임스는 모든 철학적인 논의는 인간의 경험이란 지평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나아가 사물과 사물 사이의 관계도 인간의 경험이란 지평을 매개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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