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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우치다 타츠루의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 - 1. 아빠가 사라진 시대의 속내 본문

연재/배움과 삶

우치다 타츠루의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 - 1. 아빠가 사라진 시대의 속내

건방진방랑자 2019. 10. 22.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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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빠가 사라진 시대의 속내

 

 

한국과 일본에서 아이들 성숙의 문제가 대두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지금 사회는 아버지가 어떤 성숙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망각해버린 사회가 되고야 말았다. 각 가정에서 아버지들은 지위를 잃어버림과 동시에 발언권도 잃게 되었다. 이와 같이 아버지가 가정 내에서 지위를 어떻게 상실하게 되었는지 다룬 영화들이 헐리우드에서 나오고 있다.

 

 

그의 마지막 주연작. 이 영화에서 나타난 아버지의 모습이야말로 현대 아버지의 모습의 압축판이라 할 수 있다.

 

 

 

친족관계는 사회구조적으로 만들어진다

 

클린트 이스티 우드Clint Eastwood(1930~)의 작품을 보면 이와 같은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다. 20년간 딸에게 미움을 받는 아버지 역할로 나오기 때문이다. 밖에선 슈퍼히어로지만 가정에선 미움을 받는다. 이것은 곧 가정에서의 아버지 역할이 더 이상 중요한 역할이 아님을 드러낸 것이다. 이 작품에선 아버지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와 같은 상황이기에 이 드라마의 중심 테마는 엄마의 압도적인 권력으로부터 딸이 벗어날 수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문학작품의 경우,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아예 다루지 않는다.

 

 

휴잭맨이 절로 떠오르는 젊은 시절의 클린트.

 

 

하지만 이와 같은 가족관계의 변화를 단순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가족관계 같은 경우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닌, 사회구조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이론은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 Strauss(1908~2009)가 이미 말한 적이 있다. 사회 구조적으로 아들이 아버지를 동경해야만 하는 사회라면, 아들은 당연히 아버지를 동경하게 된다. 또한 어떤 사회는 남편과 아내가 친한 척을 해야 하는 사회라면 그곳에선 부부의 애정표현이 자연스러울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회라면 남편과 아내가 멀찍이 떨어져 걸어가는 모습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 사회마다 고유한 친족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원시사회의 친족관계를 연구하여, 논문을 발표한다. 그 논문은 서구우월주의를 보란 듯이 깨버린다.

 

 

 

반부권제 사회는 시대적 흐름과 인권 향상으로 도래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친족관계의 모습일까? 지금 사회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아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 사회다. 딸과 어머니의 관계에서 본다면, 아버지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사회라 할 수 있다. 아버지가 외부적으로 능력이 있고 존경을 받는다 해도, 가정에서는 설 자리가 없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런 변화는 1960년부터 시작되었다. 1960년대는 혁명의 시대로 중국에선 문화혁명이 있었으며 베트남에선 전쟁이 있었다. 1960년대 자체가 반권력 투쟁이 절정을 향해 치닫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에 나는 10대였는데, “권력을 타도하자!”, “나이가 30대 이상인 사람들을 믿지 말자!”는 주장을 아무렇지 않게 외치고 다녔었다.

 

 

2014년 6월 25일에 있었던 강연회의 모습이다. 벌써 2년이나 흘렀지만, 아직도 그 쟁쟁한 음성이 떠오른다.

 

 

이와 같이 아버지의 권력에 맞서는 반부권제反父權制가 서서히 진행되었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완벽한 반부권제 시대가 되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성숙의 모델이었던 시대는 지나가고 더 이상 어떤 의미도 없는, 한 마디로 어른이 없는 사회가 반세기동안 힘쓴 결과로 만들어졌다.

이런 사회가 빨리 정착할 수 있었던 데엔 남녀차별의 해소가 영향을 줬다. 1985년에 남녀고용균등기회법이 제정되면서 남녀의 성적 차별은 법적으로 사라졌다(한국에선 1999년에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 남녀차별금지법이 시행되었고, 2005년에 폐지되었음).

여권 신장은 근대 사회가 이룩한 쾌거다. 참정권 및 선거권도 없이, 남자의 종속물로만 취급받던 여성들의 권위가 신장되었다. 이런 성과는 인권에 대한 생각이 정립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2014년 6월 25일에 있었던 강연회의 모습이다. 벌써 2년이나 흘렀지만, 아직도 그 쟁쟁한 음성이 떠오른다. 

 

 

 

반부권제 사회에 숨어 있는 기업의 전략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여기엔 기업의 교묘한 전략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생산주체와 소비주체를 균일화시켰으며 남녀의 욕망을 같게 만들었다. 남녀 모두 누구 할 것 없이 가장 현실적인 지위와 돈을 좋아하며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되었다. 더 이상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할 수 없게 되었는데, 이것이야말로 경제계가 만들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왜 경제계는 획일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사회를 원한 것일까? 일할 사람이 많아 인건비가 떨어지면 당연히 제조단가가 떨어지고, 그에 따라 기업의 이윤은 증가한다. 더욱이 이때 소비자의 욕망이 똑같으니 같은 상품에 대한 수요까지 높아져 매출증대로까지 이어진다. ‘일할 사람↑ ⇒ 인건비↓ ⇒ 제조단가↓ ⇒ 이윤’, ‘수요↑ ⇒ 공급 그대로 매출이란 공식으로 기업은 어떻게 하더라도 이익을 보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웹툰 [송곳]에 묘사된 노동유연화. 성장기엔 사람들을 공장노동자로 부리면서 인건비를 낮췄고, 지금은 비정기직으로 채용하며 인건비를 낮춘다.

 

 

여기에 덧붙여 예전엔 남자만 가던 곳(노래방, 술집, 스키장)을 자연스레 여자도 가게 되었다. 인구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는데도 여성들의 경제활동 영역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매출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업의 입장에선 단순 노동을 하는 자리에 좀 더 저렴한 비용으로 쓸 수 있는 노동자를 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노동자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그 일자리를 원하는 노동자가 많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사람을 잘랐을 때 대체할 만한 사람이 많아야 최저의 비용으로 고용할 수 있고, 유연하게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기업은 몽니를 부리며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다며 노동자를 기업의 구미에 맞게 부려먹기 좋게 된다.

 

 

지금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도 열정페이 문제다. 취업이 힘든 시대의 살벌한 풍경. 기업은 노예를 양산하며 산업의 규모를 키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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