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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타츠루의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 - 2. 성숙을 방해하는 구조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본문

연재/배움과 삶

우치다 타츠루의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 - 2. 성숙을 방해하는 구조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건방진방랑자 2019. 10. 22.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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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숙을 방해하는 구조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처럼 욕망의 균일화는 매우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이런 욕망의 균일화와 함께 동시에 일어난 것이 가족의 해체라 할 수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봤을 때, 가족이란 구성단위는 눈엣가시였다. 왜냐 하면 가족이란 단위는 소비활동이 가장 소극적으로 일어나는 단위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돈을 혼자 벌어오지만, 그것을 쓰는 데는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한 시기였다. 그러니 가족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소비활동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과거엔 지금처럼 핵가족도 아닌 대가족이었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형태였으니, 기업의 입장에선 한숨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도 1인가구 시대에 접어 들며, 혼밥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이 밑바닥엔 기업과 미디어의 전략이 있다.

 

 

가족 해체를 부추긴 미디어와 기업의 전략

 

그러니 기업의 입장에선 사회구조를 변화시켜, 가족형태를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회와 기업이 하나가 되어 열심히 가족을 쪼개기 시작했다. 그게 어느새 핵가족 시대로 접어들게 했으며, 지금은 당연한 듯 일인 가족 시대가 되어 버렸다. 하나를 사서 가족들이 돌려가며 쓰던 것이, 이젠 각 가족 구성원들이 하나씩 소유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전화기는 가정에 한 대씩만 있으면 됐지만, 이젠 한 사람 당 하나씩 소유하도록 바뀌었다. 대가족이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소비 활동이 가족이 붕괴되면서 활발하게 일어났다.

 

 

한국도 지금은 일인 일 핸드폰 시대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사람에 따라서는 자기 수입의 몇 십 배 되는 소비활동을 이때부터 하게 되었다. 1980년대 일본은 거품경제 시대였는데, 이때 역사상 가장 활발한 소비활동이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흐름을 미디어가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미디어는 가족이란 나의 욕망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억누르는 사람들로 느끼도록 부추겼고, 자기다움을 맘껏 발산하며 살기 위해서는 그곳을 떠나야 한다고 꼬드겼다. 그에 따라 가족에서 독립하여 나온 자식들은 각자의 공간에 텔레비전과 전화기를 갖추고, 자기가 갖고 싶었던 물건을 개인의 선택에 따라 소유하기 시작했다. 가족이 해체되면 해체될수록 내수시장의 확대로 이어졌고, 그건 다시 부메랑이 되어 가족 내의 개인주의를 촉진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나답게 산다'는 말은 분명 좋은 말이지만, 가족에서 흩어져 나온 개인은 모르는 새에 기업의 욕망에 포섭되었다.

 

 

 

오해하고 잘 모를수록 잘 성숙해질 수 있던, 부권제 사회의 구조

 

가족이 서로 친밀할 땐 아이에게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자연스레 마련해 주게 된다.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각자의 입장에서 전해주는 삶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라라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사회가 원하는 대로 살라고 말하는 상황이 일상처럼 펼쳐진다. 아이는 그런 상반된 이야기를 들으며 도대체 이 어른들은 나에게 어떻게 살라고 말하는 건가?’라는 갈등을 겪으며 성숙해진다.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충분히 되새겨 들을 정도의 말이다.

 

 

2차 세계대전 전엔 모든 권한을 아버지가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점은, 아이의 생사여탈의 모든 권한을 아버지가 지고 있었지만 이때 아버지의 판단은 모두 잘못 되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아이는 예술가가 되길 원하는데 아버지는 법률가가 되길 원하는 상황을 들 수 있다. 그럴 때 아이의 욕망을 제대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아이의 욕망을 아이에게 간접적으로 들어서 남편에게 전달해주던 시대였지만, 그렇다고 아들의 미래를 결정지을 만한 권한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아이들은 아버지는 나를 잘 모른다는 공통적인 생각을 지니던 시기였다. , 사회적으로 아버지는 아이의 욕망을 잘 모른다는 정서가 밑바탕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겐 어떻게 하면 날 잘못 보고 있는데 그런 아버지의 판단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하는 것이 과제였고, 이런 과제는 누구나 납득이 되는 과제여서 아이들의 입장에선 오히려 싸우기 쉬운 시대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권제 사회의 성숙드라마다. 아버지가 아이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그런 식의 판단 미스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아이들은 더욱 잘 성숙할 수 있는 시대였던 것이다. 부모가 유치하면 유치할수록, 상상력이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아이들은 역설적이게도 더욱 잘 성숙해질 수 있는 시대였다. 이 미묘한 밸런스 속에서 아이들의 성숙은 자연히 이루어졌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 닐은 하고 싶은 게 있기에 아버지와 부딪힌다. 우치다쌤이 말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너무 잘 알기에 성숙할 수 없는, 반부권제 사회의 구조

 

하지만 반부권제 시대엔 완전히 다르다. 아버지는 자식에 대한 미래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권력을 잃게 되었고, 그 대신 아이의 미래는 어머니가 담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는 아이의 욕망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이의 상태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자식을 잘 알기 때문에 아이의 입장에선 좋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은 엄마가 아이의 양육과 교육을 모두 맡게 된 시대다. 초등학교 등교시간 어색하지 않게 볼 수 있는 광경.

 

 

아이를 잘 아는 어머니가 취하는 기본적인 육아 전략은 우리 아이는 약하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가 살아남을까?’, ‘모난 돌이 정 맞으니, 다수가 원하는 것을 추구해라는 전략이다. 어머니는 늘 위기 상황을 염두에 두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라는 식으로 가르친다.

이와 반대로 아버지는 우리 아이는 우수하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깔고, ‘그 사회에서 두드러져라’, ‘눈에 띄는 사람이 되어라는 식으로 가르친다. 이처럼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엔 전혀 상반된 육아전략이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육아를 전담하게 되면서 아이 스스로 망설이고 갈등하는 시간은 사라졌다. 옛날 같으면 아이가 뮤지션이 된다고 할 때 아버지는 말리지만 어머니는 응원해줬으나, 지금은 말리는 사람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어머니는 아이를 잘 알다 보니, 그 욕망이 스스로 고민하여 갖게 된 생각인지 아닌지를 쉽게 안다. 그러니 어머니는 아이에게 욕망의 기원을 추궁하게 되고, 그런 상황을 여러 번 겪다 보면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게 도니다. 어머니와 자식 사이에 ‘‘부모님의 생각과는 다른 꿈이 있음을 말함()안정적이며 큰 집단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함()자신의 의지대로 다른 꿈을 좇아 행동함()누구를 흉내 내는 건 아닌지 따짐()아이는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고 어머니의 욕망에 자신을 맞춤()’이라는 패턴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자기를 잘 아는 사람과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가 아는 것 이상을 어머니는 알고 있기에 말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아이를 잘 아는 사람이 권한을 쥐고 있다 보니, 무언가를 갈등할 수 있는 빈틈이 사라져 버렸고 그에 따라 성숙할 수 없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살인적인 스케쥴도 어머니의 노파심에서 생겨났다. 이 노파심을 막을 다른 생각을 껴들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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