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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패러다임으로 쉬프트하라 - 7. 신라 패러다임과 국정화 교과서 본문

연재/시네필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쉬프트하라 - 7. 신라 패러다임과 국정화 교과서

건방진방랑자 2019. 4. 2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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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신라 패러다임과 국정화 교과서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던 삼국에 대한 상식은 김부식金富軾(1075~1151)이 쓴 삼국사기의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된 내용이다. 김부식은 그 당시 내려오던 구삼국사를 저본으로 삼아 새로운 삼국의 역사서를 편찬했다. 하지만 구삼국사라는 책이 현재는 전해지지 않기에 어떤 내용을 첨가했으며, 어떤 내용을 뺐는지는 알 수가 없다.

 

 

지금 남아 있는 삼국에 대한 가장 오랜 된 기록물이 [삼국사기]다. 그러다 보니 우린 이 기록에 갇힐 수밖에 없다.   

 

 

 

역사서에 기록되기 이전에도 나라는 있었다

 

그런데 삼국사기엔 삼국 이전의 역사는 누락되어 있고, 삼국의 시조를 모두 난생卵生으로 처리했다. 난생이란 알에서 태어났다는 뜻으로 부계혈통 및 과거를 지워내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어느 전설적인 인물이 천부적인 능력으로 한 나라를 건국하고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렇게 되면 삼국 이전의 나라들은 신화에나 존재하는 나라들로 격하되고, 심지어 삼국도 신화 같이 허황된 나라로 여겨질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아무리 주몽의 얘기를 들어도, 박혁거세의 얘기를 들어도 제대로 된 역사가 아닌 오버워치의 캐릭터를 대하는 것 같이 가상의 인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우린 주몽의 이야기를 알고 있지만, 사실이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기술이 오히려 현대인들에게 그릇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우리의 역사인식을 협소하게 만든다. 그래서 도올 선생은 고구려는 갑자기 생길 수가 없죠. 그 전에 북부여가 되었든, 말갈이 되었든, 예맥이 되었든, 모든 것들이 고구려라는 하나의 통합적인 이름으로 형성될 수 있는 역사가 있었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고구려의 건국은 틀림없이 BC 3~4세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은 동북지역이라 하면 굉장히 춥고 후미진 곳으로 알아요. 근데 저 중원지역보다 훨씬 더 광대하고, 풍요로운 지역이죠. 그러니까 맑스 얘기로 말하면, ‘가장 인구가 많고 하부구조가 더 단단하다고 할 수 있죠. 그렇게 높은 곳에 돌을 날라 성을 쌓았을 생각을 하면, 짚신 신고 그 성을 다 구축했을 것을 생각하면, 하부구조가 탄탄하다는 전제가 없이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겠습니까?”라고 소리를 높인 것이다.

 

 

환도산성의 무덤군은 고구려의 하부구조가 얼마나 탄탄한지를 알게 한다. 

 

 

 

신라 패러다임에 의한 삼국의 역사는 잊어라

 

그 말은 곧 삼국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했고,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성립된 나라가 아니라 장구한 역사적인 흐름 속에 기존에 살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 기반을 토대로 성립되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곧 우리의 역사는 긴 세월 동안 한반도에만 국한되어 성립된 것이 아니라, 동북지역까지 아우르며 형성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김부식의 역사인식에 관한 것이다. 김부식은 경주김씨의 후손이며 신라 패러다임에 푹 빠져 있던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신라의 역사를 고구려나 백제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의도적으로 띄우기에 바빴다. 삼국사기는 사마천이 쓴 사기와 마찬가지로 춘추필법春秋筆法에 따라 서술되어 있고, 삼국의 역사는 본기本紀에 수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김부식 입장에서 어느 나라의 역사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했을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신라 7, 통일신라 5, 고구려 10, 백제 6). 이런 식의 편협한 시각으로 서술됐으니, 삼국의 역사를 어떻게 다뤘을지도 짐작이 간다. 심지어 그는 고구려의 건국이 신라보다도 늦다고 서술했으며, 고구려의 역사를 서술할 때에도 신라의 연호로 서술하고 있다. 이를 테면 박혁거세 몇 년에 졸본성이 만들어졌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건 누가 뭐라 해도 완벽한 왜곡이며, 역사에 큰 죄를 짓는 서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계림에서 시작하여 한양으로 수렴되는 신라 패러다임은 많은 것들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김부식의 왜곡된 시선으로 삼국의 역사를 바라보다 보니, 우리도 어느 순간에 고구려의 진취적인 기상이나 광대한 역사인식은 잃어버렸고, 신라의 협소한 인식만이 자리하게 됐다. ‘고구려 패러다임이란 바로 이처럼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 역사적 상식을 철저히 지우고, 있는 사실 그대로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며 나아가자는 외침이라 할 수 있다.

 

 

지도를 뒤집어 동북지역부터 한양으로 수렴되는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역사를 볼 수 있다면, 인식도 바뀐다. 

 

 

 

국정교과서는 현대판 신라 패러다임이다

 

그런데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신라 패러다임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한 번씩 역사 논쟁이 불거질 때마다 우리의 역사를 깎아내리려 하고, 협소한 지역 중심으로 보려 하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라고 할 수 있다.

 

 

일년 전에 검정 교과서였던 역사 교과서를 국정 교과서로 만들겠다고 교육부가 발표했다. 

 

 

20161128일에 그간 꽁꽁 감싸져 있던 국정교과서의 집필진과 집필 방향이 공개되었다. 최소한의 집필기준만 맞추면 다양한 역사인식으로 교과서를 펴낼 수 있던 검정체제에서 나라가 정한 하나의 집필기준만을 충족해야 하는 국정체제로 바뀐 것이다. 세계적으로 역사 교과서의 집필방향은 국정체제에서 검정체제로, 검정체제에서 출판사의 권한을 더욱 존중하는 인정체제로 바뀌어가고 있는데, 한국은 완전히 정반대의 길을 택한 것이다. 이것도 매우 황당한 것이지만, 이것보다 더욱 황당한 일은 비판 여론이 일어날까 전전긍긍하며 집필진이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은 채, 밀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집필됐다는 점이다. 꼭 악당 모의하는 것 같은 불온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만큼 방귀 뀐 놈이 성을 낸다고 자신들이 하는 행위가 그만큼 떳떳하지 못하다는 뜻일 게다.

 

 

꼭 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라고 숨어 있던 집필진도 이때 밝혀졌다. 

 

 

이런 상황에서 교과서를 만들다 보니, 이렇게 만들어진 교과서는 후소샤 교과서만큼이나 왜곡과 거짓으로 점철되어 우리의 역사인식을 더욱 협소하게 만드는 교과서가 되고 말았다. 이 교과서엔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임시정부를 폄하하고 친일 독재 세력을 옹호하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이같이 우리 역사의 긍정적인 부분은 모두 제거하고 일부 세력만을 띄우는 내용만 있으니, 이건 어디까지나 신라 패러다임의 현대 버전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자는 말은 단순한 레토릭이나 선동 구호가 결코 아니다. 여전히 신라 패러다임이 위세 등등하게 우리를 위축되게 만들고, 여러 방향으로 우리를 압박하고 우리의 의식을 장악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의 살던 고향은을 보며 고구려 패러다임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씹어볼 필요가 있다.

 

 

'신라 패러다임'은 2016년의 한국을 그대로 강타했다.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가야 하는 건 우리 뿐만 아니라 후손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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