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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18.05.18(금) - 스터디와 생맥파티 본문

건빵/일상의 삶

18.05.18(금) - 스터디와 생맥파티

건방진방랑자 2019. 12. 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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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문공부의 길로 초대되다

 

 

411일에, 52일에, 그리고 516일 어제 교수님들이 진행하는 스터디가 있었다. 김하라 교수가 진행하는 산문 스터디는 2번에 걸쳐 진행됐고(52일에 빠짐), 김형술 교수가 진행하는 스터디는 그 기간 동안에 모두 하여 3번을 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 솔직히 중간고사 기간이라 2주가 빠진 것(418, 25)은 이해가 되지만, 저번 주인 59일에 빠진 건 이해할 수가 없다. 그건 어쨌든 이 스터디 자체가 교수들에겐 버겁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4월 11일의 첫 스터디. 가슴 뭉클한 사진이다.  

 

 

 

한 달을 보내며 방향을 잡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첫 스터디 참여 후에 공부 방법에 대해 고민했고 블로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됐던 게 공부에 대한 생각의 획기적인 계기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건 첫 스터디에 참석할 당시와 어제 참석할 때와는 질적인 변화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411일엔 一念이 있었다. ‘완전 쌩초보가 된 기분으로 참여하자. 절대로 다짐만 그랬던 게 결코 아니다. 그땐 모든 게 리셋된 후였고 거의 한 달 정도 공부했음에도 오랜만에 하는 공부다 보니, 집중력은 현저히 낮아져 있었고, 지식은 깡그리 사라져 있었으며, 공부 방법은 완전히 뭉개져 글도 보고 책도 보지만 그건 시간 때우기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런 상태에서 스터디에 참석하니, 모든 게 신비롭고 즐거웠지만 그만큼 내 현실에 대해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그 당시엔 정말 오랜만에 겸손해야 하고 아니 겸손할 수밖에 없는 내 상황을 인지했고 가장 겸손한 순간에 머물렀던 거 같다.

그에 반해 한 달여가 흐른 지금은 한문공부에 대한 사무치는 애틋함을 회복했고, 그 당시에 비하면 그래도 좀 더 잘 보이게 되었으며 말할 때에도 자신감이 붙게 되었다. 모두 블로그에서 작업하며 하나하나 나의 생각 속에서 재조합한 노력의 결과다. 이것을 통해 실력이 늘었다고는 호언할 수 없지만, 한문공부의 재미를 찾게 된 것만은 확실하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김하라 교수의 수업, 한문의 매력과 친근감을 알려주다

 

소화시평의 세 번째 스터디 날이자, 산문 두 번째 스터디 날이 밝았다. 그래도 이젠 어느 정도 이 자리에서 만나는 후배들도, 교수들도 구면이 되다 보니 편하게 느껴진다. 단지 630분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너무 힘드니 그게 난점이라면 난점이다. 그래도 기다리기만 하면 한문 전문가들이 알려주는 한문의 매력과 그 깊이에 푹 빠질 수 있으니, 충분히 기다려볼 가치는 있다.

두 번째 보는 김하라 교수님은 더욱 강단 있게 자신의 가치를 펼쳐갔다. 저번엔 파일로 된 문서를 줬지만, 이젠 드디어 인쇄물이 나와 그걸 주었다. 수줍게 이 인쇄물은 저의 모든 게 들어간 역작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도 그럴 듯이 그저 원문만 나열된 책이 아닌, 자신의 생각대로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그에 따라 장을 나누어 배치한 게 눈에 띈다. 그리고 이 교재로 배울 대상을 특정할 수 없기에 낱자 설명이나 사진의 배열 등도 신경 쓴 티가 난다. 물론 편집 전문가가 아니니, 그저 한글이란 프로그램으로 붙여 넣은 것에 불과했지만, 교수님이 생각하는 한문이란 무엇이고 산문이란 무엇인지 이 교재를 통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처음에 얘기를 들었을 땐 임용고사 시험에 나온 산문 위주로 학습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막상 교재는 그것과는 다른 방향에서 편집되어 있었다. 아니, 좀 더 사실적으로 말해 임용과는 전혀 무관하게 이 책은 만들어졌다. 그게 누군가에게 아쉬움일지 모르나, 나처럼 좀 방외적인, 그래서 한문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겐 오히려 이런 책자가 더 맘에 들긴 하더라. 더욱이 첫 수업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주제를 건드렸다. 그건 예전에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과연 어떤 언어생활을 했으며, 어떻게 한문문장을 썼을까?’라는 것이다. 중국 본토였으면 언문일치의 생활이었겠지만, 한반도 내의 상황은 다르다. 그러니 쉽게는 신라시대의 향찰이나, 고려시대의 가요나, 조선시대의 향가 같은 것들이 나올 수 있던 배경이 있었던 것이고 그만큼 언문일치는 요원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 단면을 18세기에 써진 글들로 보여줬다. 추사송강이 아내에게 적은 언문 편지라던가, 더 심하게는 문체반정까지 일으키며 문자의 정확한 사용을 강조했던 정조가 그의 정적인 노론 시파의 영수인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에 보란 듯이 들어 있는 뒤쥭뒤쥭이란 표현 등이 그렇다. 교수님은 이걸 보며 한문은 그 당시라 해도 우리 언어를 번역기를 돌려써야만 하는 언어였던 거죠. 그런데 급한 상황일 땐 번역기를 돌리다가 잠깐 멈추곤 했습니다. 여기 쓰여 있는 한글들을 바로 그런 상황에서 대뜸 튀어나온 것이죠.”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늘 막고 품듯 알아야만 한다고 버거워하던 한문이 좀 더 가깝게 느껴졌고, 그들 또한 그런 언문불일치의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한 거라면 나도 그런 인간을 이해하는 심정으로 하나하나 익혀가면 되겠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한문, 이거 정말 매력 있는 것이로구나.

 

 

이날 지진 대피 훈련이 있었다. 이런 광경은 아주 재미진 광경이다.  

 

 

 

욕심내지 말고 그렇게 한시를 맛들이듯

 

김형술 교수의 시간엔 역시 사람을 바짝 긴장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솔직히 잘하고 교수님이 원하는 대답을 바로 바로 하고 싶은데, 막상 현실은 그러질 못하니 말이다. 실력이 아무래도 떨어지다 보니, 그리고 아직 문장을 본 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축자식의 해석도 여전히 힘들고, 교수님이 원하는 내용들에 가닿기는 요원하기만 하다. 하긴 이제 시작한 마당에 벌써부터 실력이 있길 바란다면, 그것이야말로 도둑놈 심보일 테니 말이다. 41에서 둔세의 뜻을 물었는데 3, 4구를 잘못 해석하는 바람에 전혀 엉뚱한 대답을 했던 것이나, 42에서 중국학자가 이색을 폄하하며 맹자의 구절로 놀려줬던 걸, 이색도 같은 책의 구절로 멋지게 방어하고 한 방 먹인 얘기에서 인용구에 대한 이면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나 아직 많은 부분이 부족함을 실감해야 했다.

어차피 이 수업은 우리들이 직접 준비하고 발표하는 걸 기본으로 하기에 잘 준비해 와서 교수님이 여태껏 쌓아왔던 실력을 잘 흡입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려면 분명히 이것을 끌어안고 생각하고 고민해보는 무수한 시간들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잘하려 하지 말고, 그저 지금의 상황에 따라 천천히 이 상황 속으로 퐁당 빠져가며 그렇게 하면 된다.

 

 

김하라 교수님 수업 시간 전에 찍은 사진. 이 인원들은 김형술 교수 시간엔 대부분 나갔다. 다음엔 그 변화 양상을 한 번 담아야지.

 

 

 

2. 생각지 못한 생맥파티로의 초대, 그리고 어우러진 사람들

 

 

스터디는 950분쯤 끝이 났다. 짐을 챙기려 부스럭거리던 그때 교수님이 오시더니 어디서 공부하세요?”라고 물으신다. 그래서 임고반에서 하고 있다고 했더니, 지금 시간 되냐고 다시 물으신다.

 

 

 형태형이 줬다고 한다. 소현성 교수의 추천으로 둘이 만났고 형태형은 대학원에 올 생각이 있다고 한다.

 

 

 

생각지도 못한 생맥 파티로의 초대

 

순간 무슨 이유 때문에 그러시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혼불의 메아리 심사 위원이셨던데 거기서 나를 봤다는 걸 인지하신 건가? 그게 아니면 무언가 부탁이 있으신 건가?’하는 오만잡생각이 들었지만, 교수님에게 어렵게 대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 교수방에서 차 한 잔 하자는 정도의 얘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생맥주 한 잔 하자는 얘기더라.

완전히 쾌재를 불렀다. 재학생 시절에도 교수님과 함께 술을 마신 경우는 많지 않았다. 고작 생각나는 거라곤 축제 때나 서당에 들어갔을 때가 전부였고, 이렇게 만나서 마셔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더욱이 마지막으로 마셨던 시기는 아무리 시간을 늦춘다 해도 08년도가 마지막인 듯하다. 그렇다면 정말 10년 만에 스터디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교수님과 술을 한 잔 하는 셈이니, 완전히 기대가 될 수밖에는 없었다. 역시 임용공부를 생각하며 전주로 내려와야겠다고 맘을 먹었고 결국 이렇게 내려와 자리를 서서히 잡게 된 건 여러모로 옳은 선택이었다. 서울에서 전주에게 내려오기 전에 선배에게 간다고 들뜬 마음에 말을 했을 때 선배는 잘 됐다고 하기보다 싫은 티를 팍팍 냈었다. 그게 몹시 서운했고 맘의 갈피도 쉽사리 잡지 못했는데,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나에게 옳은 방향이었고 한문 공부라는 걸 생각할 때도 매우 정확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교수님과 단 둘이 마시나 했는데, 점차 판이 키워지더니 올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오라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급 전개 되었다. 그건 곧 나에게만 특별히 할 얘기가 있어서 이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고 아직 교수님은 나에 대해 여러 가질 알고 있지 못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연락을 쫙 돌려봤지만 대부분은 빠졌고 2학년 남학생 세 명과, 그리고 40대를 목전에 둔 아저씨인 나와 교수님 이렇게 5명이서 하게 되었다. 산뜻한 조합이다. 재학생 중에 가장 파워풀하고 의욕에 가득 찬 녀석들과 무르익은 듯하지만 실력은 개뿔 없는 나와, 한 길만을 파오며 이제 막 교수가 되어 정열을 불사르고 있는 교수의 조합이었으니 말이다.

처음에 들어가려 했던 중국집은 가격이 싸다는 게 장점이긴 했는데 문을 닫을 시간이었기에 나와야 했다. 그래서 간 곳이 구정문 출입구 쪽의 사진관 옆에 있는 서부상회라는 간판이 달린 술집이었다. 들어가니 야시장 같은 분위기로 세팅된 것이 눈에 띄더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직은 모두가 낯설고 나도 이 자리에 있다는 게 꿈 같기도, 그리고 내가 왜 있어야 하는지 어리둥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색하다고 뺄 필요는 없었다. 지금은 어떻게든 새롭게 시작하는 만큼 나의 자리를 만들어가야 하니 말이다.

 

 

 와웅 굿. 이건 모임이 다 끝나고 새벽 3시에 찍은 사진이다.  

 

 

 

한문만이 있는 게 아니라 삶 속에 한문이 있다

 

교수님은 첫 이야기의 포문을 총장 직선제로 여셨고 교수와 직원들은 찬성했지만 학생들은 반대했다는 사실에 분개하셨다. 가장 진취적이어야 할 시기에, 그리고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 할 시기에 그러지 못하다는 질책이 숨어 있었다.

그러면서 되게 의외적인 부분들이 많이 눈에 보였다.

한문공부를 한다고 너무 한문 문장의 강독에만 매달리지 말고 미술관, 콘서트에도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껏 한문교육과에 있었고 교수님들을 만나봤지만 이런 식의 얘기를 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 나야 대안교육판에 있었기에 이런 것들을 강조하는 게 어색하지 않지만, 한문은 다양한 것들의 만남이라기보다 외골수적인 기질이 분명히 작용하기에 완전히 어색한 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한문은 하나의 문자이자 그 당시 사람들의 삶으로, 지금의 우리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수 같은 게 담겨져 있기에 그 말은 충분히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만큼 하고 강제하진 말라

 

강제적으로 하려 해선 안 되고 할 만큼 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고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1학년 신입생들이 잘 적응하지 못해 붕 뜬 상황이기에 2학년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챙겨주려 해야 한다는 말에서 나왔다. 문제의식은 여학생들이 서당 들어가는 것을 꺼린다는 거였다. 이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찔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지만, 이들은 나를 모르니 학과 생활을 잘 했던 사람인 양 분개했고 아이들이 우리 때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열변을 토해냈다. 근데 솔직히 달라지긴 뭐가 달라졌는가. 나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방외인이었고 학과 활동엔 거의 무관심하다시피 했으니 이들이 오늘 걱정하는 대상엔 나도 들어갔던 것인데 말이다.

근데 교수님의 말이 괜찮았다고 느낀 지점이 바로 거기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란 게 정해져 있고 우린 거기까지만 하면 된다는 뉘앙스였다. 책임의식에 쪄들 필요도 내가 개변해야겠다는 목적의식도 너무 심하게 가질 필욘 없다. 어차피 사람은 각자가 각자의 구세주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식은 하나밖에 없는 자식 문제에서도 그대로 표출되었다. 지금 아이는 양평에 있는 발도르프 학교에 다니고 있고 아내도 그곳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주말에만 올라가서 보고 내려오는 생활을 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전주에서 함께 살 예정이란다. 지금이라도 당장 전주에 오라고 해서 함께 살고 싶지만, 아들이 학교를 재밌게 다니고 있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노라고 했다. 아들도 그곳에서 자신만의 생활과 인간관계를 구축했으니 지역을 바꿔가며 이사하는 건 쉽지 않으니 말이다.

 

 

 이녀석들이 2학년 3인방이다.

 

 

 

3. 한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뜨거운 밤

 

 

한문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을 많은 부분에서 참고할 수 있었다. 첫째 한문은 진입장벽이 무척이나 높다는 얘기다. 이 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문자는 모두 암기해야 할 것 투성이고 그것을 다 외운다고 문장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경서를 봤다고 모든 문장이 술술 해석되는 것도 아니다. 각 문장마다 다시 새로운 해석 방법이 필요하고 여러 문체까지 겹치고 나면 난공불락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늘의 안주 술맛이 더욱 조옷타 

 

 

 

한문의 현재, 그리고 미래

 

하지만 그럼에도 교수님은 한문을 공부하면 분명히 어딘 가엔 쓸 수 있다는 확신이 느껴졌다. 자신이 요즘 꽂혀 있는 건 인성학당이라는 것도 표명했다. 세월호 여파이든 교과교육의 폐단 때문이든 언제나 만능키처럼 인성교육이란 말이 튀어나오곤 했다. 그건 치열한 경쟁 사회에 인간성까지 부여하는 움직내지, 교육 만능주의에 다름 아니지만, 한문은 더욱 더 그걸 자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학교 어딘가에 좌식으로 앉아 예절수업이든, 인성에 대한 여러 텍스트든 만들어서 교육할 수 있는 학당을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리고 한문의 미래는 아마도 그런 식의 단순히 학문 연구가 아닌 사람들에게 더 와 닿는 인성교육이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게 저변에 깔려 있었다.

그리고 왜 한시를 전공으로 했는지 묻자, 그 당시엔 한문하면 한시라는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문화의 정수는 시에 있긴 하다. 그러니 한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한시를 짓는 것으로 그 실력을 평가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 덕에 한시 전문 교수가 됐지만, 시대를 반영하듯 한시란 카테고리로 교수를 뽑은 것은 10년 만에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은 박완식 교수님 후임으로 들어온 것이며, 김하라 교수님은 8월에 은퇴하는 류재윤 교수님의 후임이라는 걸 얘기해줬다. 그리고 우리 학교 분위기엔 전주대 출신만 밀어주지 않고 교수진을 점차 넓혀서 받으려는 풍조가 있다는 걸 알려준다. 아무래도 지방대고 사립대학이다 보니 조선대처럼 널리 이름난 대학이 아니면 인재풀을 대폭 넓히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특히 서울대란 배경은 어쨌든 든든한 동아줄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2학년임에도 한문의 열기에 불타는 아이들

 

같이 참여한 2학년 아이들도 각자의 색깔이 뚜렷했다. 그 중 재밌었던 사실은 2명은 대학원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고, 한 명만 임용을 보려 한다는 사실이다.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게 느껴진다. 그땐 으레 임용은 한 번은 꼭 봐야 하는 것이란 인식이 있었다면, 이젠 그러지 않으니 말이다.

07년도에 광주에서 봤을 때 옛 여자친군와 같은 반에서 시험을 봤던 게 떠오른다. 그 아인 영어로 복수전공도 했지만, 한문으로 임용까지 준비했었나 보다. 그러니 그때 같은 반에서 시험을 봤고 교육학 문제를 잘못 풀었는지 시간에 거의 쫓기며 풀다가 마지막에서야 답안지를 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중 임용을 보겠다고 하는 성재(키도 크고 아주 잘 생긴 친구)MT 때 술기운이든 뭐든 교수님에게 바짝 와서 무릎을 꿇더니(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장면이지 않은가^^), “교수님 한시를 더 공부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고, 그 말을 계기로 이번엔 사제동행 프로그램이 아닌 순수한 스터디 형식의 한시 스터디가 구성되었다고 말해줬다. 어찌 되었든 당돌한 성재가 돌멩이를 던져줬기 때문에 이런 자리가 만들어졌고 나도 알음알음 어울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스터디의 미래가 궁금하기도 했는데, 지금 당장의 교수님의 계획을 들어볼 수 있었다. 그건 소화시평이 끝나도 이 스터디는 계속 진행하고 싶다는 소회다. 자신이 첫 부임하여 만든 스터디이니 거기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 보였고, 그건 나에겐 분명히 좋은 기회이긴 했다.

 

 

 이런 자리의 안주는 부실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좋은 자리다.  

 

 

 

한문은 폐쇄가 아닌 개방, 그렇게 연계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긴 하지만, 자신이 가르쳐본 서울대생이나 전주대생이나 그다지 차이가 없다고 얘기해줬다. 물론 이건 지금 전주대에 있기에 다분히 전주대생의 측면에서 배려로 말해준 거란 걸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실력 차이가 나는 부분은 문장에 접근하고 배워나가는 방식에 있다고 말해줬다. 우린 하나의 문장을 볼 때 그냥 해석되느냐 정도로만 끝내버리지만, 그 친구들은 부분을 인용한 경우 전문을 찾아 공부하고 거기서 또 모르는 게 나오면 관련된 걸 찾아들어가는 등 과제집착력, 몰입도가 상당히 좋다는 것이다.

거기다 하나 더 더하자면, 공부의 방식에 대한 것이다. 한시를 배우고 나서 자신만의 이해방식에 따라 글을 써보는 게 좋다는 말이 확 들어왔다. 직접 써봐야만 자신이 어느 부분을 이해했고 하지 못했는지 분명해지며, 그럴 때 문장을 보는 실력도 갖춰지니 말이다.

이런 말을 들으니 더욱 지금 블로그에 공부하는 것도 올리고, 한시에 대한 감상평을 적는 이 방식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공부하다보니 당연히 자꾸 관련 있는 것들을 찾아 함께 공부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종적으로 체계를 갖춰야 하는 공부만이 아닌, 횡적으로 가지를 쳐가며 이어지고 묶어지며 공부를 해나가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컴퓨터를 적극 활용하고 블로그를 적극 활용하여 알게 된 내용들을 묶어내고 그걸 의미 있게 재구성하고 다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하고 있다.

 

 

 

한문이 좋았어라

 

마지막으로 주자에 대한 의식을 읽을 수 있었다. 실학에 의해 매도당하며 주자는 만고의 죄인이 되었지만, 교수님이 생각할 때 실학자들은 주자를 비판했을지라도 주자라는 大洋에 몸을 담그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즉 한문을 하면서 주자는 당연히 배워야만 하고 알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실학의 논조도 근대화론으로 인해 급조되어 만들어진 것일 뿐이라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실학의 왜곡, 즉 근대화의 논리로 묶여 실학 이전의 학문이 매도당하고 그 당시의 글들은 고리타분하다고 보는 인상을 갖게 된 것에 대한 분개함이 느껴졌다. 이런 이야기는 도올 선생님에게도 이미 들었던 적이 있기에 충분히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학문의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고 그런 고민들이 잘 버무려져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모처럼 참여한 교수님과의 술자리는 나에게도 한문이란 것에 대해 불을 지폈다. 한문은 지금 생각해봐도 충분히 공부할 만한 가치가 있고, 앞으로도 꾸준히 해나가며 갈고 닦아야 할 거라 생각한다. 여기에 나의 미래도 달려 있지만, 굳이 그런 걸 빼더라도 알고 싶고 하고 싶은 학문 중 하나이니 말이다. 더욱이 그 자리처럼 한문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보니 나의 한문에 대한 애정도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문 미치도록 하고 싶고 재미있다.

 

 

 우리들의 흔적.

 

 

 

 

인용

지도 / 임용 공고문 / 18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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