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문 홀릭
2010년까지 임용시험을 준비했다. 그 당시의 공부라는 건 거의 책을 보고 공부하고 잘 모르는 게 나올 땐 도서관에 가서 그와 관련된 자료가 있나 찾아보고, 인터넷으론 ‘고전번역원’에 들어가 보는 정도였다. 각 학교마다 특성이 있겠지만, 더욱이 전주대 한문교육과의 경우는 서당식의 공부법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어 다양한 방법을 고안하여 공부하기보다 경서와 같은 책들을 진득하게 읽으며 문리가 나서 한문이 쉽게 이해되길 바라는 공부를 했다.
▲ 사범대 학생회가 아주 귀여운 게시판을 만들었다. 올라가면서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글쓰기가 한문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물론 여기엔 내 과거의 경험이 기인하는 측면도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집 바로 밑에 있는 서당을 다니며 『사자소학』부터 차근차근 공부해서 『소학』까지 6년 정도를 공부했으니, 나에게 한문이란 ‘뭔지는 모르지만 진득하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알게 되는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공부를 했으니, 한문교육과에 와서도 그 방식 그대로 막고 품는 식으로 공부했고, 임용시험을 준비한다면서도 그런 방식을 고수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임용엔 1차도 합격하지 못한 채 5번의 시험은 모두 끝났다. 5수생의 비운을 끝으로 임용을 접었고 운 좋게도 단재학교에 취직하게 되며 전혀 새로운 삶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런 경우를 일러 ‘인생 참 재밌다’고 하는 것이다. 예측한 대로, 계획한 대로 되진 않았지만, 그런 변화무쌍한 현실 속에 수많은 인연들이 엮이고 수많은 사건들이 닥치며 어제의 나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되니 말이다.
학교에서의 생활은 모든 게 만족스러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것은 그토록 쓰고 싶고 그토록 하고 싶었던 글쓰기를 맘껏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은 일기장에만 간간히 써오던 것이었는데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블로그에 글도 올리고, 여러 사회적인 관심이나 교육에 대한 관심을 한 편 한 편 정리하듯 써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박동섭 교수와의 만남과 배움, 그리고 그걸 풀어냈던 과정들은 공부와 글쓰기를 통한 정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했다. 그래도 그 당시엔 그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그렇게 깊이 깨닫지 못했지만, 다시 임용을 시작하기로 한 지금에 이르러 생각해보면 공개적인 글쓰기는 나에게 자료를 어떻게 정리하여 내 것으로 만들 것인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엮어갈 것인지에 대한 총체적인 감각을 키워준 시기였던 게 확실하다.
▲ 2016년 4월 18일 에듀니티에서 동섭쌤의 특강을 들었다. 이런 공부의 기회와 그걸 정리할 수 있는 기회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공부에도 관성이 작용한다
왜 이렇게 처음부터 너저분하게 과거의 얘기를 하냐면, 이번에 임용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면서 공부 방법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저 막연히 문리가 나길 바라며 무작정 읽어대던 공부 방법에서 탈피해, 하나하나 정리하며 의미를 찾고 무작정 막고 품는 게 아닌 이해되지 않은 것은 다양한 것들을 활용해가며 의미를 이해해가는 공부방법으로 말이다.
물론 이렇게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3월 중순에 임고반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엄청 헤맸다. 그도 그럴 듯이 6년 동안 공부를 놓고 있었으니, 다시 공부한다는 게 뭔지 감도 제대로 오지 않았고 몸도 적응되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무작정 책상에 앉아 있다고 공부가 되는 건 아니었다. 예전부터 공부는 단순히 인내라고만 생각했기에 당연히 책상에서 무얼 하는지도 모른 채 앉아 시간만 보냈다. 그런데 그럴수록 공부라는 게, 한문이라는 게 버겁게만 느껴지더라. 그러니 얼마 책은 보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었다.
▲ 4월 8일에 찍은 내 자리 사진. 이토록 헤맬 줄 몰랐는데 한 달 동안 둥 뜬채 방황을 했다.
좌충우돌이 바꾼 한문공부의 풍경
결정적인 변화의 계기는 ‘그냥 예전처럼 주구장창 읽어댈 게 아니라, 공부한 내용을 블로그에 정리해서 올려보자’라는 생각이 들면서부터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이 미칠 수 있었던 데엔 단재학교에서 다양한 글을 썼던 경험이 한몫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어떤 식으로 자료화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이걸 엮어낼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그런 우여곡절을 통해 지금은 ‘사서’와 ‘중국역사’를 꾸준히 올리고 있고, 그때그때 스터디에서 했던 내용을 갈무리하여 올리고 있다. ‘초반에만 해도 완벽하게 정리해서 올려야 해’라는 부담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아무래도 공개적으로 올리는 것이니, 남의 이목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부담도 버리려고 한다. 그저 ‘지금의 내 실력은 이만큼이니, 오역이 있어도, 뭣 모르고 얼버무린 것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한 것들은 의미가 통하는 것끼리 링크를 걸어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보완하고 있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확실히 무작정 읽어대며 문리 운운하던 때에 비하면 속도야 좀 느리긴 해도 한문 공부하는 재미도 있고, 내 스스로 이것저것 찾아가며 엮어가는 재미도 있다. 이렇게 공부방법을 완전히 바꿀 수 있도록 힘을 준 것은 처음에 밝혔다시피 단재학교에서의 글쓰기 경험이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세상의 모든 공부와 연구는 통한다고 하는 거겠지. 스티브 잡스는 대학교를 중퇴하고 밑도 끝도 없는 서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전공과는 매우 무관하기에, 누군가는 ‘씨잘데기 없이 시간만 축 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씨잘데기 없는 시간을 보낸 덕에 우린 지금 컴퓨터에서 다양한 글자체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한 달의 방황 끝에 그래도 공부의 방향도 잡을 수 있었고, 공부하는 것에 적응할 수도 있었다.
스마트폰을 통해 한문과 더 편하게 데이트할 수 있게 되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지만 2010년에 한문공부를 그만둘 때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도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한문공부를 하는데 엄청난 변화를 주었다.
다시 공부를 하며 놀랐던 점은 정보 수집이 엄청 용이해졌다는 사실이다. 늘 손에 들려 있던 스마트폰이 그런 변화를 주도했다. 언제든 모르는 게 있으면 자료를 금방 금방 찾아볼 수 있다. 열심히 뒤적이던 字典도 이젠 더 이상 뒤적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인터넷 사전의 발전도 눈부셨다. 그러니 맘만 먹으면 한문공부는 기초부터 착실히 닦아가며 이해의 폭을 넓혀가며 할 수 있게 바뀐 것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문장을 볼 때에도 변화가 생겼다. 예전엔 그냥 하나의 글을 보면 무작정 그것만을 파고들었지, 그와 관련된 다른 글을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옆 가지로 뻗어나가는 것은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봐야 하는 글만이라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떤 글이든 갑툭튀한 것은 없다. 어디서든 영향을 받았고, 이미 있던 사실을 근거로 하여 쓰여 진다. 그러니 그 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런 배경지식은 확인하고 가는 게 중요하다.
이와 같이 생각의 변화를 촉발시킨 문장이 바로 『소화시평』의 이제현과 이숭인의 빨래터 아낙의 무덤을 지나며 쓴 시였다다.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신의 이야기를 알아야 하고, 한신을 제대로 알려면 유방과 항우가 치열하게 맞붙었던 초한지의 배경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빨래터 아낙을 느꺼워하며 지은 시 → 『十八史略』을 통해 한신의 이야기 알아보기 → 유방과 한신이 어떻게 맞붙었으며, 그의 책사들은 어떻게 활동했는지 알아보기 → 이 시에 나온 ‘爪牙之臣’을 알기 위해 『范增論』 보기’로 쉼 없이 역사여행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손쉽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손 안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에서 언제든 그런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고, 언제든 취합이 가능해졌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그 당시엔 호기롭게도 아침에 일어나 임고반에 가면서 “오늘은 한유와 유방과 찐하게 데이뚜하러 가야지~”라고 외치기도 했을 정도였다.
▲ 스마트폰은 공부의 방법을 아예 바꿔놨다. 정보도 쉽게 찾을 수 있고, 문서작업까지도 할 수 있으니 신세계가 따로 없다.
2. 사서 공부법과 한어대사전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문 공부법으로 한문공부에 재미를 붙이다 보니 사서를 보는 데도 변화가 따랐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냥 순서대로 쭉 보았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만 생각했고, 그렇게 늘 공부해왔으니 그 방법 밖에 몰랐다.
공부방법이 바뀌니 한문이 겁나 재밌더라
하지만 그렇게 보면 어떤 재미도 없이, 그냥 봐야만 하는 의무만 남는다. 스토리를 가지고 쭉 이어지는 게 아닌, 한 편 한 편이 그냥 독립된 글처럼 인식되니 말이다. 그러니 수많은 글을 읽은 것 같지만, 어떤 것도 기억나지 않는 미묘하고도 오묘한 혼란에 빠져들고,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자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사서의 길이 이토록 멀고도 험하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내 실력이 이따구란 말인가?
하지만 위에서 얘기한 방법을 사서에도 적용해보기로 했다. 어떤 문장을 읽다가 사서를 인용한 구절이 나오면 그때 그 인용구를 찾아서 읽어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유의 「학생들을 나오라고 해서 해명한 글進學解」를 열나게 읽고 있는데, 여기서 보란 듯이 맹자의 ‘변론하길 좋아한다好辯’는 문장이 나온다. 당연히 예전엔 출처만을 확인하고 표시한 후에 넘어갔을 테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이젠 『맹자』를 펼쳐놓고 그 문장을 쭉 따라 읽으니 말이다. 그러니 문장을 읽는 맛도 있고, 「진학해」에서 한유가 맹자를 언급한 이유가 더욱 분명해진다. 맹자의 불우함을 말하면서, 또는 맹자가 왜 그렇게 논변을 펼칠 수밖에 없었는지를 말하면서 은연중에 ‘맹자=한유 자신’임을 드러내면서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맹자』를 보다가도 같은 내용이 나오는 구절이면 그게 여러 군데로 흩어진 내용이라도 함께 찾아서 읽는 것이다. 이를 테면 맹자의 제자인 악정자에 대한 파편들(「양혜왕」하16, 「이루」상24, 「이루」상25, 「고자」하13, 「진심」하 25)과 ‘제나라 사람이 연나라를 공격했다齊人伐燕’는 기사가 그것이다.
악정자에 대한 글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어 때론 그냥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맹자』를 읽다 보면 ‘악정자’란 이름이 익숙하긴 한데, 도대체 무엇을 한 인간인지 그리고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걸 모아서 보면 악정자에 대해 맹자가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가 하는 행동에 대해 얼마나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는지, 그러면서도 그에 대해 얼마나 존중했는지 알게 된다.
인물을 모아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하나의 사건을 얘기하고 있다면 당연히 같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그 사건의 흐름에 따라 어떤 변화들이 생겼고 초반에 신중하게 연나라를 흡수 통합하는 문제를 묻던 제선왕이 마지막엔 맹자를 뵐 면목조차 없다고 말하게 됐는지 이유를 알게 된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맹자』라는 책의 편집자는 「양혜왕」하에 중간과정이야기인 2화와 3화를 넣어놨고, 「공손추」하에 이야기의 시작과 끝인 1화와 4화를 넣어놔서 그냥 예전처럼 공부했던 방식이라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그리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게 편집해놨다는 사실이다. 이건 영화 『전우치』나 『인셉션』 같은 느낌이어서 영화를 보면서 퍼즐을 맞추듯 봐야만 한 편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어찌 보면 좀 더 몰입감을 주려는 방식으로 비선형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도록 만들었다지만, 그게 자칫 잘못하면 ‘이게 뭐야?’라는 몰이해를 낳을 수 있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예전에 수도 없이 맹자를 읽었겠지만, ‘제나라가 연나라를 정벌한 이야기’의 전체내막을 모르고 있었고,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읽어보니 그 흐름이 확실히 보이고 제선왕의 감정 변화도 분명하게 읽혀져 이해가 확 되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경서는 더더욱 순서에 따라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때그때 필요한 부분을 찾아 언제든 건너 뛰어 읽어나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경서 공부는 특별해지고 재밌어진다. 이쯤 되면 한문공부란 선형적인, 일방적인 공부일 순 없다는 생각이 확고해지고, 종횡무진할 수 있느냐, 그리고 얼마나 그 상황들에 몰입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건 ‘악으로 깡으로’가 아니라, ‘무모하게 신나게’인 것이다. 이렇게 공부해보니, 한문공부 ‘몸서리치게 재미지다는 걸 알겠더라. 우왕~ 씐나~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공부법과 블로그 활용으로 한문에 푹 빠졌다.
호시절을 만나 한문공부의 재미에 흠뻑 빠지다
이미 ‘한문의 맛’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있던 그때 또 다른 계기가 나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건 하나님이었다’는 싱거운 얘기 말고 예상치 못한 삶이 선물한 아주 오묘한 계기 말이다. 지금은 수요일마다 교수님들이 진행하는 스터디에 참석하고 있다.
잠시 삼천포로 빠지자면, 전주대엔 새로운 교수님이 두 분이 오셨고 각기 자신들의 전공을 살려서 수업이 아닌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스터디를 열린 강좌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러니 학부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그래서 김하라 교수님은 산문을 편집한 책자를 만들어 산문의 총체적인 이해와 흐름을 알려주는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고, 김형술 교수님은 『소화시평』을 함께 공부하며 한시의 무궁무진한 매력을 알려주고 있다. 솔직히 내 입장에선 이런 스터디에 참석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고, 시기를 잘 만났다고 생각한다. 하필 임용을 다시 준비하려던 시기에 딱 맞춰 호시절을 만났으니 말이다. 교수님들도 의욕적으로 공부하는 분위기를 이끌고 있으며, 나도 자연스레 섞여 들어갈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이쯤 되면 ‘나 왜 이리 재수 좋은 거니~~^^’라고 자연스럽게 외쳐도 될 법하다.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 계속 해보자면, 때는 바야흐로 5월 16일이었고 스터디가 있는 날이었다. 스터디는 9시 50분이 되어서야 끝났고 어찌나 많은 내용을 들었던지 지적 충만함을 온몸 가득 안은 채 함박미소를 짓고 있던 그때, 김형술 교수님이 “생맥주 한 잔 하시죠”라고 제안했다. 그에 따라 갑작스레 생맥주 파티가 열리게 됐고 2학년 학생 3명과 교수님, 그리고 나까지 5명이서 급조된 회동을 하게 된 것이다. 10시에 시작된 모임은 그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진행됐으니 얼마나 치열하면서도 강도 높게 진행됐는지를 알 만하다. 아! 남북정상회담은 우리의 가슴에 통일의 염원을 심어줬다면, 갑작스런 생맥주 회동은 한문공부의 마력을 맘속 깊이 넘실거리게 했다. 미치도록 한문공부가 하고 싶어졌으니 그걸로 됐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날 새벽까지 무리한 탓에 다음 날엔 비몽사몽했다지^^
▲ 흩어진 파편들이지만, 하나의 흐름을 가진 이야기다. 이걸 묶어서 볼 수 있게 된 것도 좋았다.
한문공부의 신세계를 알려주마
근데 바로 이때 지금껏 생각도 못해봤던 사실들을 알게 됐다. 한문공부를 할 때 자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 외에도 더 좋은 것들이 많이 있고, 실제 다른 이들은 이미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건 이름하야 『한어대사전』과 『사고전서』였다.
▲ 사고전서는 역사적인 상식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디지털판이라니. 오메나
그렇지 않아도 10년 넘게 써온 자전의 한계 때문에 좀 더 다양한 내용이 들어 있는 자전을 찾아 헤매기도 했었다. 하지만 사전 어플로 괜찮게 나온 것이 없었기에 필기인식 기능이 있는 무료 어플을 쓰고 있었던 참이다. 이렇게 맘속 깊이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던 그때, 교수님은 그런 ‘신문물’이 있다는 걸 알려준 것이고, 그건 나에게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히 훨씬 편안하면서도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들이 널려 있을 텐데, 예전에 했던 방식대로 그 수준에서 공부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공자의 말마따나 발분하는 이(擧一反三)에게 어떤 기회든 오는 것인가 보다.
『한어대사전』은 중국학자 1000여 명이 모여 18년 동안 만들어낸 역작으로 총 13권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한자나 숙어와 그 숙어들이 나오는 주요 문장들을 함께 수록하고 있어서 한문공부를 제대로 하고자 하는 사람에겐 필수적인 사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지금까진 그저 자전에 의존하며 의미를 유추해야했고 출전을 찾을 때도 아무 것도 없는 밑바닥에서 긁어모아야 했지만, 이 사전을 갖는 순간부터는 마치 신이라도 된 마냥 조망하는 시선으로 단어가 나오는 주요 전적들을 함께 일별할 수 있게 된다. 이걸 이렇게 평이한 문장으로 풀어놔서 그렇지, 이건 어마어마한 지식의 보고를 가지고 있고 언제든 편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뿐인가 『사고전서』에 이르면 할 말을 잃어버릴 정도다. 솔직히 말해 자전이야 그 나라 언어의 보고이니 대단원의 편찬작업을 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고전서』의 그 방대한 양이 디지털화되었다고는 생각도 못해봤다. 이 책은 후금이 청나라로 국호를 바꾸고 중원을 차지한 이후에 중국의 고전들을 총망라하겠다는 야심찬 정복군주의 야망에 의해 만들어진 책이 아니던가. 그 당시 9년에 걸쳐 그때까지 나온 책들을 망라하는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그러니 이건 한마디로 청나라 이전의 중국고전이 망라되어 있다는 얘기다. 물론 우리 같이 전문학자가 아닌 임용을 공부하는 학생에겐 쓸데없는 책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사용법만 잘 익혀두면 분명 언젠가는 유용하게 써 먹을 수 있는 자료임엔 분명하다.
이런 사전들이 디지털화되어 이미 사용하고 있고 널리 퍼졌다고 하니, 몇 날 며칠 출전을 찾아, 비슷한 용례를 찾아 헤매며 끙끙대던 뭇 날들이 떠오르더라. 나를 키운 건 그런 헤맴의 시간들이었지만, 이젠 그와도 작별할 시간이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문공부의 신세계에 입문할 수 있었다. 아, 헤어진 옛 연인이라도 만난 것처럼 설레고 두근거리고 뭘 하지 않아도 배부르고, 가만히만 있어도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 느껴진다. 신세계에 이렇게 들어왔으니 이제부터 찐하게 한문과 데이트해야겠다.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나의 역량일 테니, 신나게 한문의 세계를 유영해볼 테다. 거 한문공부하기 딱 좋은 때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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