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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만 달콤한 한문공부 - 2. 한문공부가 꿀처럼 달콤해진 이유 본문

건빵/일상의 삶

힘들지만 달콤한 한문공부 - 2. 한문공부가 꿀처럼 달콤해진 이유

건방진방랑자 2019. 12. 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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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공부가 꿀처럼 달콤해지다

 

그 계기는 새롭게 부임한 두 분의 교수들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과 스터디를 진행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다. 매주 수요일 저녁에 열리는 스터디는, 일반 강의와는 다른 매우 알싸한 충격을 안겨줬다. 하긴 뭐 나처럼 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훌쩍 지난 이에겐 이런 식의 수업 자체가 재밌는 경험이며 신나는 시간이긴 하니 말이다.

 

 

 

한문이 꿀처럼 달콤한 순간

 

김하라 교수에겐 한문산문이 지닌 내용의 함축성과 전개방식의 탁월함을, 김형술 교수에겐 그토록 어렵고 난삽하게만 보이던 한시의 핍진逼眞하면서도 생각의 정수를 담는 치밀함을 맛볼 수 있었다. 그건 마치 죽은 시인의 사회란 영화에 나오는 시가 꿀처럼 흘러나왔던 거였어. 영혼이 흘러나왔고 여자들은 황홀했고 신들이 창조되었지.’라는 대사처럼 한시 또한 그럴 수 있다는 걸 알게 했고 꽉 차 오르는 환상세계에 대한 이미지가 넘실거린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실상 내가 서 있는 이곳이 꿈속인지, 현실인지, 과거의 망령인지, 오래된 미래인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꿈일지라도 춤출 수 있으면 그만이고 지극한 현실일지라도 한 번 울어재끼면 그만이니 말이다. 그 스터디에서 처음으로 눈치도 보지 않고 맘껏 울어재꼈고, 스텝이 꼬일지라도 몸치란 자의식이 짓누를지라도 맘껏 흔들어재꼈다. 그렇게 환희에 찬 그 순간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공부하는 재미, 한문을 알아가는 기쁨은 실로 오랜만에 느껴본다.

 

 

스터디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게 좋다. 새로운 교수님 두 분 덕에 생기를 찾을 수 있었다.    

 

 

 

예전에 한문 공부했던 것들은 꿈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퇴색될지라도, 나중에 보면 헛웃음만 나올지라도 그 순간의 감흥을 남겨두고 싶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나 한글파일로 만들어 놓는 일이다. 지금까지 임용공부를 하면서는 책 볼 시간도 부족한데 문서작업까지 하면 배보다 배꼽인 거겠지란 생각 때문에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땐 문서작업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어쨌든 계속 원문을 보며 공부한 것이니 내 머리 속 어딘가에 고이 모셔져 있어, 필요할 때면 짠하고 나타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머지않아 그게 근자감이며 대충 공부해온 나 자신에 대한 비겁한 변명일 뿐이란 걸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임용공부를 그만두고 단재학교에 근무하게 되면서 정말 많은 글을 쓰게 됐는데, 글을 쓰다보면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와 딱 맞는 한문문장이 얼핏 생각나 인용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막상 그 이미지를 그리며 인용하려 했던 문장을 찾아보면 이미지만 흐릿하게 떠오를 뿐, 제대로 된 내용이나 제목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건 곧 문장을 보고 해석하고 이해하며 공부했다고 자신했는데, 그저 한자만을 따라가며 해석하기에 급급했을 뿐,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반증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니, 한문을 공부했던 뭇 순간들이 헛헛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런 아쉬움이 늘 있었기에 이번에 다시 공부하게 됐을 땐, 그런 부분들에 유의하며 공부해보잔 생각을 했었고, 이 스터디가 부싯돌이 되어 그런 생각들에 시작의 불꽃을 환하게 피워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만들어진 문서다. 여기서부터 나의 한문 공부도 새롭게 시작됐다.   

 

 

 

공부한 내용을 문서로 정리해두기로 하다

 

여기까지 생각은 확장됐는데 디테일한 부분에 들어와선 망설여지는 게 있었다. 역시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나 보다. 악마는 여러 속삭임으로 나를 계속 흔들어댔다. ‘어떤 식으로 문서화할 거냐?’, ‘어떤 레이아웃으로 만들 거냐?’라는 형식적인 부분에서부터 이걸 나만의 자료집으로 갖고 있을 것인가? 그게 아니면 블로그에 공개할 것인가?’하는 실제적인 부분까지 말이다. 솔직히 내실을 기한다면 이런 것들은 어떻게 해도 그만이다. 그게 어떻게 편집되든, 공개여부가 어떠하든 뭔 상관이란 말인가? 더욱이 한문 실력이 개뿔도 없는 상황에서 그런 것만 신경 쓰면 자칫 외화내빈外華內貧이 될 가능성도 있으니,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만 한다.

하지만 며칠 간 고민하다가 결국 레이아웃이나 편집에 대한 방향은 어느 정도 대략적인 게 잡혔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학교에 취직해서 여러 편의 글을 써오다 보니 편집에 대한 방향들은 끊임없이 고민해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서작업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그 다음으로 공개 여부에 대해선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외화내빈이 될까봐, 쓸데없는 곳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길까봐 걱정이 된 탓이다.

 

 

4월 23일 사진, 이제 임고반이 매우 익숙하고 친숙해졌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 아주 조으다.   

 

 

 

함께 보며 함께 다듬어가는 것

 

하지만 그 또한 하나의 계기로 맘이 정해졌다. 그건 뭐니 뭐니 해도 맹자였다. 사서四書 중 가장 넘기 힘든 험준한 산맥 같은 책이다. 논어야 짧은 대화집이거나 명언집 정도로 해석본을 봐가며 해석이 되는 정도로 만족하며 넘기면 그뿐이지만, 맹자는 현장성이 담긴 치열한 논리가 일품인 대화집으로 대화의 흐름, 논리의 전개, 각자 생각의 차이를 명확히 알아야만 이해가 되니 말이다. 더욱이 어려운 글자도 어찌나 많고, 시경詩經이나 서경書經과 같은 인용문도 어찌나 많은지 읽어나가기가 버겁기만 했다. 그러니 도무지 손이 잘 가지 않고 눈으로 볼 땐 어느 정도 해석이 되는 것 같은데, 다시 축자식으로 해석해보면 막히기 일쑤더라. 어찌 보면 지금까지 나의 해석들이 죄다 이 모양이었을 테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대충 해석하며 알고 있다고 자만하는 패턴 말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점검도 받고 내 밑바닥을 드러내고자 맹자의 해석은 공개하기로 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부끄러움이나 이럴까 저럴까 쟤는 마음이 아닌,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이 트이고 나니, 다른 문장들도 공개해야겠단 생각이 뒤따랐다. 지금은 이 정도임을 공표하고 여기서부터 차근차근 쌓아가도 괜찮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생각들을 거치며 [맹자]를 비롯한 다른 원문들도 공개하여 같이 보기로 했다.    

 

 

 

움직여봐 그것만으로도 된 거야

 

이런 이유 때문에 4월은 무지 뜨거웠다. 예전엔 봐야 하니까 봐야만 했던 책들이 이젠 즐거운 만남이 장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때론 지금 한유 형님 만나러 가야 해서 얼른 가봐야겠어.”라거나 아까 맹자와 얘기하다가 중간에 끊어서 빨리 다시 얘기해야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할 정도다. 그래서 5월엔 이 기류를 이어받아 하나하나 만들어갈 것이다.

그 첫 번째 도전과제는 지금부터 보는 문장들에 감상이란 항목을 덧붙여 나의 소감을 담아보려 한다. 학술적인 부분에서의 작품의 의미, 주장의 합리성 따위를 따지는 평가가 아닌, 그저 그 글이 나에게 들어와 어떤 이야기로 읽혔는지, 그리고 어떤 흔들림을 안겨줬는지 그 느낌을 담아볼 생각이다. 그건 곧 그 글들을 학문적인 입장에서가 아닌, 그저 책을 보듯 편안하게 읽겠다는 각오이기도 하다. 5월엔 또 어떠한 계기들이 나를 뒤흔들어 놓을지 사뭇 기대된다. 움직여야만 한다. 그래야 나가든 우회하든 변화가 따른다. 그게 바로 공부하는 맛이다.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전주대학교에 핀 철쭉. 아리땁다.    

 

 

 

인용

지도

18년 글

19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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