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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어린이대공원 트래킹 - 6. 어린이대공원엔 이야기가 있다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어린이대공원 트래킹 - 6. 어린이대공원엔 이야기가 있다

건방진방랑자 2019. 12. 1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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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어린이대공원엔 이야기가 있다

 

조류까지 모두 보고 잠시 쉴 겸 자리에 앉았다. 거기서 아이들은 준영이 핸드폰에 설치된 앱을 통해 간단한 아이큐 테스트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침팬지와 아이큐 대결을 하며 한껏 즐거워하고 있다. 무에 그리 신날꼬~

 

 

 

여럿이 모이면 평범한 순간도 특별한 순간이 된다

 

우리가 앉은 의자 앞엔 침팬지가 있었는데, 아이큐가 무려 70이나 된다고 해서 아이들은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럴 리는 없지만, 침팬지보다 아이큐가 낮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우리를 감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앱은 정식으로 문제를 풀며 아이큐 테스트를 하는 게 아니라, 그저 계산기앱으로 머리에 두 번 대었다 떼었을 때 표시된 숫자를 아이큐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그 숫자를 아이큐로 받아들이며 낮은 숫자가 나오면 옆에서 일제히 넌 어떻게 침팬지보다도 무식하냐고 놀려대고, 높은 숫자가 나오면 혼자 뻐기며 이런 무식한 것들~”이라고 거만을 떨었다. 역시 사람이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단조로운 일상도 놀이가 되고, 아무 것도 아닌 것도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연신 웃고 떠들며 황당하면서도 어이없는 그 순간을 맘껏 즐겼다.

 

 

알고 보니, 그건 단순히 계산기였다고 한다. 이마를 댈 때마다 숫자가 표시되니 그걸 아이큐라며 이야기했다 카더라.^^;; 

 

 

 

구름과자 찾아 삼만 리

 

우린 3시에 어린이대공원을 나왔다. 오늘의 트래킹은 시작부터 늦는 아이들 때문에 삐걱대긴 했다. 아무래도 모이기로 한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제 시간에 맞춰 온 사람만 바보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다보니 언제 그렇게 마음의 앙금이 있냐 싶게 기분이 풀어져, 화사한 봄이 전해주는 싱그러운 기운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마무리 되는 게 아쉬운지, 최고의 이야기는 트래킹이 거의 끝나가는 그 시점에 만들어졌다. 그 이야기는 이름하야 황당하고도 유쾌한 구름과자 찾아 삼만 리이다.

 

 

이대로 끝내긴 아쉽다. 그래서 한 학생은 아주 솔깃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해줬다.

 

 

때는 바야흐로 봄의 시작을 경쾌하게 알리던 4월의 첫 날에 단재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 날은 학부모 회의가 있었기에 늦게까지 남아 여러 밀린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승태쌤도 학부모회의 때 나눌 의제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떤 일에든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면 당이 부족해지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구름과자가 땡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승태쌤은 늘 과자를 넣어두던 곳을 샅샅이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 과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쯤 되면 원래 구름과자는 상상 속의 물건이었나?’, ‘내가 과자인가, 과자가 나인가?’라는 온갖 잡념이 몰려들게 된다. 그렇게 망상이 딸려 올 땐 몸소 일어나 하나하나 기억을 더듬으며 찾는 게 제일이다. 노력은 과자를 배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과자는 없었다. 이쯤 되면 과자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라는 오기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오기만 부린다고 없어진 과자가 불쑥 나타나는 것도 아니기에, 상황을 처음부터 유추하기 시작했다.

 

 

학부모와의 대화가 있던 날. 구름과자는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그 당시 학교엔 승태쌤, 초이쌤, , ‘앞뒤가 똑같은이니셜을 지닌 학생(이하 학생) 이렇게 4명만이 남아 있었다. 교사 3명은 각자 할 일로 정신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기에 용의 선상에 오를 수 없었고 학생 한 명만이 진한 의심을 받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승태쌤은 학생에게 전화하여 전후사정을 밝힌 후 혹시 네가 숨긴 거니?”라고 약간 코난의 범인은 이 안에 있어라는 톤으로 비장하게 물었는데, 학생은 전혀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아니요. 제가 뭐 하러 그런 짓을 해요라고 맞섰다. 코난의 날카로운 촉과 피의자의 당당한 대답이 맞부딪히며 사건은 그렇게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솔직히 목격자도, 사건을 밝힐 만한 단서도 없다 보니 심증만 가지고는 어찌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 땐 당연히 승태쌤이 알겠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구름과자 사건은 완전범죄로 완전히 묻히는 듯 보였다. 이미 일주일이 지났기 때문에, 더 이상 그걸 아는 사람도 없었으며, 선명했던 기억도 흐릿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구름과자가 발견되는 결정적인 단서만 나오지 않으면 당연히 이 사건은 승태쌤의 착각 정도로 묻힐 것이다.

그런데 대공원에서 나와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오니, 태기 얼굴엔 화색이 감돌았다. 태기 얼굴엔 나는 네가 지난주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달뜬 표정이었고, 학생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때 하필 지훈이는 그 학생에게 보조배터리를 빌려달라고 얘길 했고, 학생은 보무당당하게 가방의 앞 지퍼를 아이들이 보는 그곳에서 열어젖혔다. 가방의 속살이 여지없이 공개되던 순간이었는데, 당연히 나와야할 보조배터리 외에 구름과자까지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구름과자는 일주일동안 그곳에 갇혀 빛도 없이 꿈도 없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 것이다. 구름과자 찾아 삼만 리를 했는데, 구름과자는 파랑새는 집에 있다던 얘기처럼 아주 가깝고도 지근거리에 있었다.

 

 

단재학교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여기에 반짝 반짝 눈이 부시게 과자가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야기인 즉은 이랬다. 그 학생은 저번 금요일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따라 내려가던 도중, 반짝반짝 빛나는 물건을 보게 된 것이다. 그게 바로 구름과자였고, 그걸 집어 드는 순간엔 월요일에 오면 드려야 겠다고 생각하며 가방 앞주머니에 넣었단다. 하지만 그때 승태쌤에게 전화가 와서 물증도 없는 상태에서 몰아붙이니 장난기가 발동하여, 아니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주말이 지나며 이 학생도 구름과자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어버렸다는 것이고, 승태쌤도 사라진 것들에 미련을 갖지 말자라는 태도로 기억에서 지워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구름과자 사건은 표면에 드러날 일이 없었던 것인데, 오늘 이처럼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상황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 상황이 드러난 것이니, 모두 다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 순간 승태쌤이나 그 학생이나, 우리들이나 누구 할 것 없이 맘껏 웃어재끼며 그 상황을 즐겼다.

역시 사람이 모이면 이야기가 샘솟게 마련이다. 그게 나와 관련 있는 엉뚱한 얘기일 수도 있고, 나와 마주쳐 공명하듯 만들어진 얘기일 수도 있다. 만났기 때문에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 이야기 때문에 관계는 더욱 풍족해진다. 그 풍족했던 이야기를 이 트래킹 후기에 담아냈고 이제 마무리 지으며 기억을 추억으로 남기려 한다.

 

 

그렇게 봄날은 기억 속에 자리 잡아 간다.

 

 

인용

목차

사진

1. 좌절한 청춘들이 어린이대공원으로 트래킹을 가다

2. 지각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하다

3. 지각이 트래킹 기분을 망치다

4. 어린이대공원과 역사적인 아이

5. 어린이대공원엔 놀잇감이 있다

6. 어린이대공원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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