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좌절한 청춘들이 어린이대공원으로 트래킹을 가다
어느덧 4월이 포문을 열었다. 지금은 봄꽃이 화사하게 대지를 덮고 봄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와 마음 한 구석에 꽁꽁 얼려있던 감정이 사방팔방 솟아오르는 때다. 중고등학생 때나 대학생 때엔 봄이 온다고 무언가 심정적인 변화가 온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바빴다.
▲ 벚꽃이 활짝 피었다. 이런 날 봄을 즐기러 나올 수 있다는 건, 정말 축복이다.
청춘은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2006년에 교생실습을 떠나기 전에 따스한 봄바람을 맞으며 캠퍼스를 거닐다 보니, 그제야 비로소 ‘봄 따라 마음도 오고, 봄꽃 따라 감정도 피어오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땐 아마도 여느 때처럼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젊음은 ‘젊어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맘껏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아닌, ‘미래의 불안을 온 몸으로 안고 미래를 위해 투신해야 하는 것’이었을 뿐이다. 지금 얼마나 인고의 세월의 보내느냐에 따라, 밝은 미래가 오느냐, 어두운 미래가 오느냐가 정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현재의 고통을 칭송하며 현재를 늘 희생물로 바쳤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공부로 허비하기에 바빴다. 그런 청춘에게 봄은 떨림이나 설렘, 싱그러움일 수 없었다. 그저 겨울이 지나 봄이 온 것이고, 봄은 어느덧 여름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친 울타리는 세상의 변화에 둔감하게 했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음 정도로 들리게 했다.
누가 청춘을 아름답다 말했던가? 청춘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노인들의 청춘에 대한 회상만이 아름다운 것이다. 청춘에 대한 추억이 아름다운 것이다. 추억은 항상 아름다운 로맨스만을 추상해내는 능력이 있다. 거기에 부수된 불안과 공포와 고통은 떨쳐낸다. 청춘의 압도적인 사실은 좌절이다. 절망에는 내일이 없으며, 남아있는 재난의 기억조차 없다.
-김용옥, 『사랑하지 말자』, 통나무, 2012,
도올쌤은 여태껏 ‘청춘은 아름다워’, ‘청춘은 다시 오지 않아’류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 지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청춘은 아름답고 가장 뜨거우며, 엄청난 활기를 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건 훗날에, 그 시기를 한참이나 지난 후에 느껴지는 감상일 뿐이다. 막상 당시엔 ‘불안과 공포와 고통’을 몸소 느끼며, 수많은 감정들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니 말이다. 그걸 도올쌤은 ‘좌절’이라 표현했는데, 나 또한 그 당시엔 좌절했고, 기쁨보단 슬픔을 온 몸으로 감내하며 살아내고 있었다.
▲ 임고반에서 찍은 사진. 임고반엔 희망과 절망이 함께 했다.
봄이 오면 마음에도 꽃이 핀다
하지만 아무리 낭만이라곤 쥐뿔만큼도 없고, 삶의 여유라곤 손꼽만큼도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건 억누르고 있는 감정일 뿐이지 아예 무색무취한 존재일리는 없다. 좌절 한 가운데서도 기쁨을 느낄 수 있고, 절망 한 가운데서도 뭉클뭉클 피어나는 열망을 느낄 수 있다. 봄바람이 나의 온몸을 타고 들어올 때, 비로소 숨겨왔던 억눌렀던 감정이 피어오르며 나를 알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그 날도 공부라는 틀 속에 갇혀 있던 내가 무척이나 따분하고 지겹다고 느껴지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 때 무심코 바람이나 쐴 겸 산책을 하러 나갔는데, 어느새 봄은 캠퍼스 곳곳에 소리 없이 찾아와 새싹을 가득 피워냈으며 깊은 곳에 묘한 울림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쯤 되니 ‘봄이 되면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봄엔 좀 더 쉽게 연인이 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알겠더라. 그건 ‘햇볕이 나그네의 옷을 벗긴다’는 얘기처럼 스스로 덧씌운 허영들과 불안의 더께들로 한없이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나 자신을 돌아보고, 봄바람 따라 허영은 내려놓고 더께는 벗겨두고 나 자신을 편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때 누군가 맘을 보여주고 감정을 전해주면 가벼워진 내 마음은 산들산들 흔들리게 마련인 것이다. 아마도 그때 이후로 좀 더 봄이 온다는 사실에 감격할 수 있었으며, 그 변화를 즐길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 좀 더 삶을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처음으로 떠난 도보여행. 봄의 한 가운데를 맘껏 거닐었고, 그 순간을 느꼈다.
이번 트래킹은 그렇게 맘껏 봄을 즐기게 된 후에 떠나는 트래킹이니 나 자신에겐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번 주는 꽃이 절정이라고 하니 더욱 그랬다. 단재학교는 체육시간에 석촌호수를 돌곤 하는데, 4월 5일에 돈 석촌호수는 그간 보아온 곳과는 너무도 다른 곳이었다. 바뀐 것이라곤 벚꽃이 만개했다는 것밖에 없지만, 사람들은 그걸 보기 위해 엄청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평소엔 30분 정도면 한 바퀴 돌 수 있는데, 이때는 사람들을 피해서 다녀야 했고, 빈틈없이 사람들이 있어서 속도도 제대로 낼 수가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봄꽃의 의미는 단순히 꽃이 피었다는 의미 외에도 아름다운 생명체가 동토를 뚫고 나왔다는 경이로움과 함께, 영원하지 않은 아름다움의 순간을 누리고 싶은 애처로움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린 봄의 절정 그 가운데로 비집고 들어가 봄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언지, 그리고 그 속에서 무엇을 건져낼 수 있는지 맘껏 경험해 보러 떠나게 된 것이다.
▲ 늘 오던 석촌호수가 이 땐 완전히 다른 곳이 되어 있었다. 사람에 치이느라 걸을 수 없을 정도였다.
봄을 누리러, 어린이대공원으로 떠나다
3월에 트래킹에 대해 첫 회의를 하면서 6개의 장소가 이미 결정되었다. 그래서 그 결정에 맞게 통인시장과 롯데월드를 갔던 것이고, 이번에는 ‘하늘공원’에 가야 할 차례였다. 하지만 봄꽃이 절정에 이르러 이 시기 아니면 보기 힘든 만큼, 이번만큼은 좀 더 봄꽃을 맘껏 볼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곳으로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원래의 계획과는 달리 이번에는 다시 장소를 정하기로 했다.
‘계획을 정한다는 것은 당연히 계획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계획을 정할 때 장난하듯, 귀찮은 듯 회의를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획이 정해지면 꼭 그대로만 해야 하나?’라고 한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계획이 수시로 틀어지거나 바뀌어선 안 되지만, 한 번 정해졌다고 해서 바뀔 수 없다는 것도 곤란하니 말이다. 모두 계획이 바뀌는 것에 동의할 순 없겠지만 크게 불만스러워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의견을 수렴하여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같은 경우, 트래킹 코스를 다시 정하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 그걸 못마땅하게 생각하거나 불만을 표시하거나 하는 아이들은 없었기에 다시 회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이런 과정을 통해 다시 장소가 결정되었다.
그래서 봄꽃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로는 ‘여의도공원’, ‘율동공원’, ‘하늘공원’, ‘어린이대공원’ 등의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다른 곳들은 이미 트래킹을 하며 가본 적이 있기에, 오로지 하늘공원과 어린이대공원만은 가보지 못했다(이 두 곳도 2012년 카자흐스탄 프로젝트 때 가봤긴 하지만, 트래킹으론 가보지 못했다). 아이들은 이 두 곳을 놓고 한참이나 갈등했다. 모두 다 꽃구경을 하기엔 최적의 장소였으니 말이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학교와 가깝다는 생각 때문에 ‘어린이대공원’이 최종적으로 선택되었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선택할 땐 그 곳에 대한 이미지나 할 수 있는 것보다 집에서 얼마나 가까운 곳이냐 하는 게 중요 요소로 작용하곤 하는데, 이때가 정말 그랬다.
이로써 우린 4월 첫째 주 트래킹 코스로 어린이대공원을 가게 됐다. 그곳에서 경험했던 이야기는 다음 후기에서 본격적으로 하기로 하자.
▲ 어린이대공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다음 후기에서 자세히 보도록 하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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