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단재학교에서 1년을 보내며 이상을 벼리다
교사가 되려 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왜 교육을 하려 하는가?’에 대한 고민쯤은 해야만 한다. 그게 성장해가는 학생들을 위한 길이며, 사회적으로 규정지어 놓은 교육이란 틀에서 한갓 기계로 전락하는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길이니 말이다.
▲ 첫 임용시험 보던 날 정문의 풍경. 첫 임용시험의 결과가 나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후 생각해보면 불행이 행운인 경우다.
교육은 끊임없이 지적 허영, 거짓 자신을 벗어내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교육에 대한 고민에 도움을 준 사람들은 고미숙씨와 고병권씨, 그리고 김용옥씨였다.
이 척박한 현실에서 희망을 일구는 길은 단 하나, 교사가 먼저 공부에 미치는 것뿐이다. 설령 입시를 위한 것일지라도 선생님이 공부에 미치면 자연스럽게 그 배움의 열정이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따지고 보면 본래 교사란 그런 직업이다. 자신이 평생 뭔가를 가르치고자 한다면 자신이 평생 공부의 즐거움을 누려야 마땅하다. 자신은 공부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한다면, 그것 자체가 억압이고 명령에 불과하다.
-『호모쿵푸스』, 고미숙, 그린비출판사, pp 177
위의 글은 나에게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나에게 던져진 ‘시시포스의 바위’라 생각한 것이다. 그건 교사가 되려 하는 순간, 배움에 대한 열정을 평생토록 지녀야 하며, 고정된 틀을 매순간 깨야 한다는 의무감이었기에 신나면서도 무거웠다. 그러려면 고정된 인식을 지니기보다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만 하니 말이다.
예전엔 나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 남에게 뻐길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면(그게 임용합격이라 생각했음), 이젠 그렇게 쌓았던 허영들을 무너뜨리기에 분주해져야 했다. 그게 단번에 이루어질 수 없기에 나날이 애쓰는 수밖에 없다.
▲ 삶이 내 맘대로 되지 않던 순간엔 여러 인연과 여러 책들이 찾아왔다.
단재학교의 장점: 이상을 멈추지 말고 더욱 단단히 벼리라
이런 고민의 순간들을 보냈다고 해서 단재학교에서의 일 년이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에서의 ‘Oh! Captain! My Captain!’하는 식으로 감동이 넘실대는 배움의 장이 되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고민을 통해 만들어진 이상과 냉혹한 현실이 첨예하게 부딪쳤고 그 속에서 수없이 좌절했다. 열정적으로 한 일인데 그게 학생들에겐 거북스럽게 느껴지기도 했고, 무언가 요구하게 되면 자신들을 믿지 못한다고 비난받기도 했다. 그런 상황이니 어느 순간엔 ‘내가 과연 교사로서 자질이 있나?’하는 비관적인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그런 식의 어려운 순간들, 힘든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게 어찌 보면 인생의 한 단면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이 처음 만났는데 갈등 없이 어우러진다는 것도, 나의 의도가 왜곡 없이 전달된다는 것도 꿈에서나 가능한 얘기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좌충우돌하는 순간들이 있었고, 작은 몸짓에 크게 반응하던 때도 있었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능성마저 닫아버린 때도 있었다.
그 순간들을 지나고 보니, 예전엔 이상 속에서 고민하던 생각들을 어느 정도 현실에서 가다듬을 수 있었고, ‘잘 해야 한다’는 강박에 갇혀 한없이 무거웠던 내 자신이 좀 더 가벼워졌다.
바로 이와 같은 좌충우돌이 있고 그 안에 생각을 가다듬고 그걸 통해 깨닫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단재학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이다. 이상을 더욱 단단히, 그러면서도 뾰족하게 벼릴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아낌없이 줬다. 아이들과 좌충우돌하더라도 그걸 꾸짖고 어설프다고 나무라기보다 잘하고 있다고 힘을 북돋워줬고 오히려 ‘더 많이 실패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것은 맘껏 해보세요’라며 이상을 키워주었다. 만약 내가 일반학교에서 근무했다면 집단의 톱니바퀴가 되기 위해 나의 이상은 철저히 내려놓고 ‘조직이란 그런 거야’라며 맞춰가기 위해 애쓰는 1년을 보냈을 거다.
1년이란 시간은 그래서 뜻깊었다. 그렇게 단재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아가며 2013년을 맞이했고 학부모회 주최로 교사와 학부모간의 진솔한 대화의 장에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들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여 이곳에 풀어놓고자 한다. 햇병아리의 치기도 보일 것이고, 어설프고 거친 느낌의 소감도 보일 것이지만 지금 이 순간 나의 생각이기에 여기에 남겨둔다.
▲ 1년동안 좌충우돌하며 다양한 활동들을 했다. 풋교사의 치기를 잘 받아주고 함께 해준 단재친구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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