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현대사, 그리고 ‘위안부’ 문제
1.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학생에게 질문을 던짐, 2~3명 정도의 답변을 들음)
각 학생의 다양한 의견 잘 들었습니다. 이렇듯 역사에 관해서 사람의 수만큼 많은 수의 대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으로서 내가 생각하는 역사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바로 그 대답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대답은 ‘물음표’입니다. 왜냐 하면, 오늘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여러분과 얘기를 나누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대답은 강의 마지막에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2. 한국의 국제정
다음의 지도를 보실까요. 한국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 사이에 껴 있습니다. 한국을 제외한 이 나라들은 모두 강한 나라입니다. 강한 놈 곁에 약한 놈이 있으면 당하게 됩니다. 바로 이와 같은 지정학적인 위치가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결정짓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① 그래서 조선시대까지는 중국의 문명권에 속해 있었습니다. 황제국인 중국을 섬기는 제후국의 입장으로 역사와 문화를 이어왔습니다.
② 그렇던 조선이 자주국으로 독립한 후엔 어떻게 되었을까요? 주권국가로서 독립국으로 설 수 없었습니다. 중국이란 큰 빽이 빠져나간 자리를 소련과 일본이 차지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빈틈을 일본이 차지하게 되었고 그 후 일본과 미국의 입김을 현재까지 가장 많이 받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3. 한일합방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두 나라가 한 나라가 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루는 것도 힘든 일인데, 두 나라가 한 나라가 되는 일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런데도 일본은 한국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일방적으로 하나가 되게 했습니다. 그 과정을 보시죠.
① 1876년 일본이 군함을 이끌고 강화도에 찾아와서 맺은 조약이 ‘강화도조약’입니다. 이 조약의 1조는 ‘조선은 자주국으로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라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아주 좋은 내용 같습니다. 조선은 한 번도 자주국이었던 적이 없었는데, 일본은 그걸 인정해주겠다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건 결코 조선을 위한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와 합병하는데 있어 최고의 걸림돌은 중국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중국의 제후국이었기에 함부로 합병했다가는 중국이 가만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중국과 조선의 끈을 끊어놓아야만 했습니다. 그게 바로 강화도 조약이었던 것이고, 이를 계기로 조선은 ‘대한제국’이란 거창한 이름을 지닌 독립국이 됩니다.
② 중국과 조선의 끈이 끊어졌으니, 이제 일본은 조선에 군대를 투입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합니다. 이때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함락하자 명성황후는 청나라에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자 일본군도 같이 한국에 상주하게 됩니다(텐진조약).
③ 일본군이 주둔하게 됨으로 일본의 영향력이 커졌다면, 이제 대외적으로 합병을 승인 받기만 하면 됩니다. 1905년 7월에 일본의 수상 가쓰라 다로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특사인 윌리엄 태프트와 밀약을 맺어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승인해줬습니다. 이제 일본은 대외적으로 조선의 합병을 승인 받은 것입니다.
④ 이제 일본이 조선과 합병하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은 ‘자주국’에서 ‘보호국’으로 격하시키는 일입니다. 강화도 조약에서 인정했듯이 자주국이라 인정하면 자신들과 동등한 자격을 가진 국가이기에 어떻게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05년 11월에 마지막으로 맺어진 조약이 ‘을사보호조약’이라는 가장 치욕적인 조약입니다. 보호를 받아야할 나라이기에 일본이 보호해주겠다는 황당한 명분을 담은 조약이었고 이 이후로 조선은 일본의 속국이 됩니다. 그렇기에 한국 사람이라면 ‘을사보호조약’이 아닌 ‘을사늑약乙巳勒約’이라 불러야 합니다.
4. 을사늑약 체결 기념 사진
사진을 보시죠. 이 사진은 한국의 치욕을 담은 사진입니다. 그리고 두 나라 사이에 맺어진 조약이 평화로운 분위기가 아닌, 얼마나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것인지를 이 사진을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맨 밑의 줄 가운데에 앉은 사람이 안중근 의사에 의해 저격 받은 이토 히로부미입니다. 이 늑약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5. 일본군 ‘위안부’란?
이렇게 조선은 일본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위해 필요한 군자금을 조선에서 마련했습니다. 심지어는 군인들을 위한 성노예를 식민지와 점령지 여성들로 채웠습니다.
시기적으로는 1930년부터 45년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식민지 여성들이 투입되어 군인들의 성욕 해소를 위해 무자비한 성학대를 당해야 했습니다.
① 첫 사진은 조선의 ‘위안부’들이 끌려가는 장면입니다. 이들은 강압에 의해 ‘위안부’가 되었으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끌려갔습니다.
② 일본군이 위안소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진입니다.
③ 이 그림은 위안소 밖에 군인들이 줄서 있고 안에선 여성들이 군인들을 받아들이는 장면입니다. 우측 위에 요금표를 볼 수 있습니다. 군인들이 무료로 위안소를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돈을 내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일본은 이런 근거를 들어 위안부들은 돈을 벌기 위해 온 사람들이지 피해자는 아니라고 망언을 하고 있습니다.
6. 만약 우리 가족이 안 좋은 일을 겪었다면?
만약 우리 가족이 안 좋은 일을 겪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무런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맞고 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의 딸들이 누군가에게 성적인 학대를 당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장담컨대, 누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직접 때리든, 어떻게든 죄를 물을 것입니다.
7. 해결되지 않은 ‘위안부’ 문제
우리의 가족이 그런 일을 당해도 그렇게 따지고 해결하려 할 것인데, 수많은 여성이 이와 같은 일을 당했는데도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엔 일본이 이와 같은 범죄를 인정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① 그들은 ‘위안부’가 피해자가 아닌 돈을 벌기 위해 온 매춘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② 또한 65년 박정희 대통령 때 일본과 화해를 하며 협정을 맺었는데, 이때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의미로 배상을 하였기에 ‘위안부’ 문제도 다시 꺼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협정을 맺던 당시에는 전혀 ‘위안부’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8. 자발적 성노동자들이 아니다(요시미 문건)
고노담화에 이어 요시미 문건을 보면 일본군이 ‘위안소’를 어떠한 의미로 설치하였는지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일본군이 중국지역까지 진출하게 되자, 일본군인들이 민간인을 겁탈, 강간하는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주둔지 지역의 일본군에 대한 민심이 나빠졌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할 경우, 일본군은 전쟁 자원을 잃게 되고 내부 분열로 전쟁을 지속할 수 없게 됩니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 ‘위안소’를 설치하였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일본군이 ‘위안소’를 왜 설치했으며 어떤 목적이 있었는지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9. 자발적 성노동자들이 아니다(고노담화)
하지만 ‘위안부’는 성을 파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위안부’는 강압과 협박에 의해 끌려온 피해자들이며, 위안소는 군 당국이 주도하여 설치 운영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를 통해 ‘위안부’가 결코 자발적인 성노동자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10ㆍ11. ‘위안부’ 망언 사례
이렇게 명백한 전쟁범죄이며 약한 사람의 인권을 짓밟았다는 것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그렇기에 일본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그에 맞은 배상을 하며 지위를 찾아주려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할머니들이 1000회가 넘는 수요집회를 열어 이와 같은 상황을 알렸음에도 여전히 일본의 권력자들은 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자발적인 성노동자가 아니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매춘부라고 몰아붙이고 있으며, 심지어 최근에는 한국 총리로 지명되었던 분은 한국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를 사과 받을 필요가 없다고까지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쯤 되면 다시 ‘역사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명백한 사실임에도 그들은 왜 과거를 감추려 하며,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요? 과거를 인정하는 것이 그토록 힘든 일인가요?
12. 역사란 무엇인가?
함석헌 선생님이 역사를 정의한 말씀을 마지막으로 이야기하며 오늘의 강의를 마치려 합니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를 알고자 하는 노력이 아닙니다. 과거를 알아 명백히 잘못을 밝히는 것이며, 한 시대의 실패를 미래에 되풀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를 사는 우리들은 역사를 제대로 알려 노력해야 하며, 과거의 잘못된 것들을 다시 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노력을 하기 위해 우리들은 오늘 1133차(7월 2일) 수요집회에 갈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살아있는 역사를 보며 그 역사에 같이 동참할 것입니다.
▲ 그런 노력을 하기 위해 우리들은 오늘 1133차(7월 2일) 수요집회에 갈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살아있는 역사를 보며 그 역사에 같이 동참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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