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면하자, 그만 합리화하고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질 싸움인 줄 뻔히 알고서, 자존심 때문에 싸움을 붙었다. 역시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흠씬 두들겨 맞았다. 그런데 그 녀석 막상 일어나고 하는 말이 가관이다. “내가 얼마나 평화주의자인데... 그래서 억지로 맞아준 거야.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데....”라고 옷에 묻은 흙을 털면서 말하는 거다.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평소에 공부를 하지 않았다. 당연히 시험이라고 해서 공부를 할 리 없다. 막상 시험을 본 결과가 나왔는데, 역시나 거의 바닥을 기고 있다. 그런데 그때 “난 학교에서 정답 맞추기 위한 기계가 되기 싫어서 공부 안 하는 거야. 너희들 몰라서 그러는데 내가 공부하기 시작하면 금방 선두권에 들어갈 거라고...”라며 비웃듯 얘기하는 거다.
합리화하는 사람
위에서 이야기 한 사람들을 살면서 한 번 정도는 보았을 것이다. 과연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던가? 그건 말로 정의하기보다 가소로운 비웃음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런 모습이 결코 남의 모습만 아니다. 나의 모습에도 이런 모습이 숨어 있다.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위에서 얘기한 것들은 한마디로 ‘자기합리화’라고 한다. 합리화는 자기가 그 상황을 받아들일 자세가 안 되어 있을 때, 자기 위주로 그 상황을 해석하는 것이다. 즉, 자기 스스로에 대한 거짓말이라는 얘기다. 자기가 질 수밖에 없는 싸움실력을 가졌음을, 자기의 머리가 좋지 않음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그럴듯한 얘기로 넘어간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그와 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똑같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한심하지 않은가? 차라리 직면하여 자기의 나약함이나 무식함을 인정하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나을 것인데 말이다. 그런데 사람이란 게 그렇다. 특히 자기존중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내 스스로의 환경이나, 나 자신을 객관화시켜 직면하려하기 보다 왜곡하여 그게 내 본모습인양 회피하려 한다.
직면할 줄 아는 힘을 지닌 박노자
이젠 그만 합리화하자. 내 자신을 그 모습 그대로 보고 그 모습 그대로 만족하며, 부족한 점들을 하나하나 고쳐가도록 하자. 그럴 때에 진정한 자아 발전이 있다. 그럴 때에 나중에 날 때려줬던 녀석과 싸워 이길 수 있고, 시험을 봐서 상위권에 들 수 있다. 바로 그 정신일 때에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거다.
박노자! 그의 글을 연거푸 읽게 됐다. 읽고 난 소감은 역시 그의 글은 비판의 정신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건 나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내가 지금까지 유아론적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삶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합리화하며 이게 바로 세상이라고 느껴왔던 것을 뒤집어 다시 보게 해준다. 귀화한 한국인, 하지만 그의 사색의 깊이는 한국사람 이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어쩌면 한국이란 테두리에 갇혀 사색을 쏟아내고 있는 지식인보다 여러 나라를 돌아보며 얻은 깨달음들을 풀어내는 그의 문장들이 더 객관적이며 사실적인지도 모르겠다.
만감일기는 우릴 불편하게 한다
그의 『만감일기』를 소개하며 서두를 길게 얘기한 까닭은 바로 이 일기에 지닌 함의를 바로 보기 위해서이다. 솔직히 만감일기를 읽으면서 복잡다단한 현안들에 대한 그의 비판의식들이 아니꼽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비판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너무 비판적인 게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즉, 기쁘게 읽을 사람보다 왠지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읽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혼란스러움을 거부하진 말자. 아니 회피하지 말자. 그런 거북스러운 마음속엔 나 또한 은연중에 느꼈을 사회에 대한 불만들이 녹아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명확한 사실은,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합리화 비슷한 착각에 빠져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현실 왜곡은, 뭐 지시에 따라 살려는 사람에겐 하등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자아를 지니고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극악과도 같은 것이다. 어항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는 ‘그것만이 세상의 전부인지 알고 자기는 자유를 만끽한다’고 착각할 것이다. 그와 같이 현실을 왜곡하며 사는 삶도 갇혀 살면서 자기는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바로 그런 착각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바로 조금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 만감일기를 읽으며 현실에 대한 바른 인식을 지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사실에 직면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타자를 향해 나가려는 사람들
어떠한가 마음의 준비가 되었나? 그렇다면 이제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나 자신을 좀 더 객관화 해보며 사회를 제대로 보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집어 들고 읽어보자. 바로 나를 제대로 아는 것을 시작으로 너와의 연대를 이루고, 그것마저도 초월하여 우리와의 연대, 세상과의 연대를 이루어나가게 된다. 내 스스로의 삶에 발전이 있고자 하는 자, 마음을 활짝 열고서 경계를 허물고 연대와 화합의 장으로 나가보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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