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져버린 맞장
얼굴에 상처가 나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나 어제 팔십 대 일로 싸웠잖아.” 뭐 이 말에 XX:1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 말이 사실이 아님은 모두 다 아니까. 그냥 우스갯소리로 흘려듣는다.
맞장 뜨는 만용? 용기?
그런데 만약 이 말이 정말이라면 우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우린 그런 사람을 용감무쌍하다고 해야 하나, 멍청하다고 해야 하나? 예전의 나였으면 그런 사람을 ‘의협심 강한 바보’라고 불렀다. 그런데 지금은 함부로 그렇게 단언하진 못할 거 같다. 이 책을 보고서 어찌 그렇게 함부로 깎아내릴 수 있겠는가. 이 책은 서울시 교육청이 공인한 보수우파 학자들의 무분별한 역사 강의를 듣고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박차고 나와 그들에게 맞장을 신청한 책이다. 이건 만용이 아닌 진정한 용기라고 볼 수밖에. 이로서 한홍구 교수에 대한 나의 존경하는 마음은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 '새로운 오른쪽'의 전혀 새롭지 않은 이념 설파 현장. 고통의 자리에 있느라 다들 수고 많았다.
사실에 대한 다층적 접근법
이미 ‘대한민국사’를 읽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의 글들은 하나의 역사 사실에 단순히 접근하는 법이 없다. 대원군의 쇄국정책 때문에 무기력하게 한일합방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사태를 단순히 보면 하나의 사안에 모든 죄를 덧씌울 순 있다. 하지만 그렇게 짐 지운다 해도 그 사태는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 제대로 사태를 파헤쳐 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저자는 바로 그렇게 단선적으로 역사를 보는 관점을 비판한다. 그 당시에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들을 일일이 들여다보며 객관적으로 사태에 접근하는 거다. 그래야만 쇄국정책의 함의도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으니까. 그가 쇄국정책을 긍정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런 객관적인 시각에서 나왔다. 그건 반대로 한미FTA를 부정하는 논리이기도 했고. 그래서 대한민국사는 여러 사실들을 통해 하나의 사건을 파헤친 문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전혀 따분하진 않다. 우리의 현대사임에도 누구도 쉬쉬하며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이 그의 책엔 하나 가득 펼쳐진다. 한홍구 교수님 책의 미덕은 바로 그거다. 때론 진실을 말하는 게 엄청난 용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역사 전쟁이 벌여지다
바로 그런 미덕은 이 책에서 유감없이 드러난다. 우선 따분하지 않게 역사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고 하나의 사안을 꿰뚫는 여러 사실들을 볼 수 있어서 더욱 좋다. 21세기에 들어선 지도 벌써 10년이 흘러가고 있고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한 지도 20년이 되었지만 우리에겐 그 모든 게 아직 익숙하지 않았나 보다. 정권이 바뀐 10년 만에 다시 보수정권이 들어섰고 거기에 맞장구를 치듯 사회의 구석구석이 보수화되어 갔다. 검찰이나 경찰의 보수화는 말할 것도 없고 교육계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발을 맞췄다.
더욱이 서울시 교육청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전교조 심판’이란 타이틀로 당선된 교육감은 강남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정권의 입맛에 맞게 교육을 이끌었으니까. 그래서 등장한 것이 현대사 특강이다. 그전에 금성교과서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좌파 역사관’의 극치라며 정부의 전방위적 압박이 시작되었다. 결국 금성교과서는 저자들의 동의 없이 내용을 대폭 수정하였다. 거기에 덧붙여 이젠 학생들을 상대로 좌로 치우친 현대사를 바로 잡아 강의하기로 한 거다.
▲ 전교조에 대한 극도의 혐오가 엿보이는데 그건 '전교조=종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대사를 뜯어고치고 싶은 사람들
왜 현대사에 집착 하냐고? 물을 필요도 없다. 자신들의 영욕(과연 ‘榮’이 더 많을까? ‘辱’이 더 많을까?)이 스며 있는 만큼 자신에게 유리한 역사로 바꾸어야 한다. ‘욕’은 지우고 ‘영’을 드높여라. 강사진이 ‘극우드림팀!’으로 구성된 건 당연하다. 이들이 설파한 것은 ‘신자유주의란 진리’와 ‘이승만ㆍ박정희 미화’이였다. 20세기엔 ‘반공교육’이 있었다면 21세기엔 한물 간 ‘이념교육’이 횡횡하고 있었다. 바로 이 책에선 그렇게 설파된 내용들을 하나하나 묻고 따지고 있다. 그것도 아무 조건 없이! 그래서 가슴 후련하게 읽을 수 있다. 그것도 왜 잘못된 것인지 하나하나 깨달으면서 말이다. 이렇게 책을 읽으며 통쾌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가볍지만 절대 가볍지 않고 심각한 듯하지만 전혀 심각하지 않다. 그저 물 흐르듯 맘껏 읽고 무엇이 옳은가 판단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난 개인적으로 이 책이 반가웠다. 그리고 단숨에 읽었다. 솔직히 나만 읽긴 아깝다. 그래서 바라는 점이 있다. 이 책을 우리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08년 촛불 시위는 그들이 먼저 시작했다. 그들은 어쩌면 무기력에 절어 있는 자신의 목소리조차 내본 적이 없는 우리 20대보다도 더 낫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10%의 기득권층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국가의 의식화 교육을 받으며 의식화되어선 안 된다. 자신의 의식을 자신이 만들어 가야 한다. 아무 말 필요 없다. 그냥 속는 셈치고 한번 읽어보자.
여담으로 진중권 교수는 위의 강의 장면을 ‘아동학대’라 규정했다. 왜 그렇게 말했는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제 말이 이해가 안 되면, 뉴라이트 강사 여러분은 직접 밤에 잘 때 의자에서 주무셔 보세요. 그리고 가족한테 시켜서 잠들만 하면, 깨우도록 부탁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한 일주일 동안만 주무셔 보시면, 왜 제가 이런 제안을 하는지 몸으로 이해하실 수 있게 될 겁니다. 잠 안 재우기 고문당하는 학생들, 부모님이 투표 잘못한 죄를 뒤집어 쓴 희생양들이에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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