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초평저수지에 담긴 우리네 이야기
이장님네엔 4명의 자녀들이 있다. 첫째부터 셋째까진 20대의 나이대로 고만고만하지만, 막둥이인 민지는 10살 정도의 터울이 있다. 늦둥이이자, 이 집안의 보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작년에 국토종단 중에 이곳에서 2박 3일을 머물며 민지와 나름 꽤나 친해졌었다.
막내가 마을 구경을 시켜주다
그래서 일 년 만에 다시 보지만 이때도 반갑게 인사를 건넸는데, 되려 “누구세요?”라고 말하더라. 그 반응이 무안하고도 당황스러웠다. 어찌 보면 작년에 한 번만 봤던 사람이니 당연한 반응이라고나 해야 하려나. 그런 어색함을 조금이라도 덜려고 고기를 구워 먹을 때, 장난을 걸었다. 과자를 먹고 있었기에 과자를 달라고 하기도 하고, 다른 과자가 먹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그랬더니 또 금세 친해지더라. 민지도 그런 장난에 맞춰 장난을 걸어왔고, 그 덕에 난 후렌치파이 3개와 과자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장난으로 준 것이니 민지는 줬다가 바로 뺐긴 했지만 말이다.
고기를 다 먹고 나니 민지가 림보게임을 하자고 하더라. 줄을 잡아줄 사람이 없었기에 막상 림보게임은 할 수가 없었고, 그냥 밖으로 나와 함께 걸었다. 막둥이는 마을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소들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소를 눈앞에서 바로 보긴 처음이다. 송아지 한 마리는 연신 젓을 빨고 있었고 다른 소는 새끼를 낳느라 끙끙대고 있었다. 그 중에 한 소에게 다가가니 크고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라. 왠지 모를 서글픔이 잔뜩 묻어 있어 보였고,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곳을 둘러보고 막둥이는 “나의 놀이터가 있는데 그리로 가봐요”라며 데려다 준다. 뭐 특별한 게 있을까 했는데, 그냥 도로 공사현장이었다. 34번 국도를 4차선으로 확장공사를 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그 도로 바로 옆엔 작은 텃밭이 있었는데, 그것도 자기네 거라고 말하더라. 거기서 조금 더 들어가니 돌탑이 있었다. 산속도 아닌데 웬 돌탑일까? 아마도 막둥이와 함께 걸었던 길 이름이 ‘서낭골길’이니 만치, 서낭당과 연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올핸 작년과는 달리 민지가 마을의 길라잡이가 되어준 덕에 마을을 여기저기 둘러볼 수 있었다. 나에겐 그저 작은 마을로 느껴졌지만, 민지에겐 환상이 가득한 동심의 낭만이 짙게 배어있는 나라일 것이다.
▲ 그땐 공사 중이었지만, 지금은 국도가 완성되어 이장님네 마을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됐다.
초평저수지, 그곳에도 삶과 애환이 있다
집으로 돌아와서 민지는 ‘투투’라는 큰 오빠 친구와 놀고 난 저수지로 내려왔다. 작년엔 밤에 봐서인지 선착장이 크고 넓어 보였으며 사람도 많아 불야성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한낮에 보니 그런 느낌은 전혀 없더라. 여기저기 낚시하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돌아다니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님이 오시더라. 좌대를 청소하러 가니깐 같이 가서 그곳에서 한숨 자라고 하신다. 쪽배를 타고 출발하려는데 민지도 오겠다고 연락해오더라. 그래서 어머니와 민지, 그리고 나까지 셋이서 배를 타고 저수지 안으로 들어갔다.
저수지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가려진 부분을 넘어서까지 물이 가득 고여 있었으니 말이다. ‘빙산의 일각’이란 말이 있듯이 초평저수지도 ‘니가 작년에 얼핏 본 모습만으로 나를 다 봤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착각일 뿐이야’라고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쪽배도 처음 타봤다. 살랑살랑치는 물결을 따라 나아가고 그에 따라 시원한 바람이 내 품 안으로 들어온다. 지금은 모터를 사용하기에 편하게 갈 수 있지만, 예전엔 손수 노를 저어 다니셨다고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 작은 배에 몸을 의지한 채 좌대와 좌대 사이를 이동하셨을 어머니의 젊은 날의 모습이 보이는 듯도 했다.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22살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시집을 온 이야기, 신혼여행을 마치고 오자마자 산처럼 쌓여 있는 일을 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는 이야기,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새 이렇게 나이가 훌쩍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내 마음 한 구석이 먹먹해지더라.
나에게 있어 농촌은 한 번씩 찾아가는 곳이기에 한껏 이상화되어 있다. 그러니 자꾸 자연경관 어쩌고저쩌고, 유유자적 어쩌고저쩌고, 낭만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리를 할 수 있었던 거다. 돈 꽤나 가진 도시양반들이 농촌을 휴양지로 소비하듯이, 나 또한 그런 모습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어머니 이야기를 통해서나, 국토종단 당시에 경천리에서 만났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서나 재구성해보면, 이곳은 생활의 터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보니, 부조리한 상황들이 있고,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 버거운 나날들이 있는 것이다. 그저 삶의 희노애락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볼 수 있으면 된다.
▲ 초평저수지는 굽이굽이에 있어 제대로 보기 위해선 하늘에서 봐야 하고, 둘러보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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