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도시와는 다른 흥미로운 시골문화
작년에 고추를 심을 땐 오전엔 이장님네 밭에서, 오후엔 이장님 친구네 밭에서 심었다. 이장님네 밭은 넓지 않아 오전에 금방 끝날 수 있었던데 반해, 친구네 밭은 밭의 규모 자체가 남달라 힘들게 해야만 했었다. 어찌 보면 오전엔 고추 심기의 맛보기 정도의 작업량을 맡았던 것이고, 오후에 실질적으로 노동을 했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과연 올핸 어떨까?
▲ 작년에 심었던 이장님네 밭. 이번엔 여기부터 하지 않고 친구네 밭부터 한다.
고급문화와 저급문화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잔뜩 맘을 먹고 친구분네 밭에 투입됐는데, 이미 내가 도착하기 전부터 작업을 시작하기도 했고, 작년에 비해 적게 심으시기도 하다 보니, 12시가 약간 넘어서 끝이 났다. 걱정한 것에 비하면 아주 수월하게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점심으론 짬뽕을 시켜서 먹었는데 그때 재밌는 장면이 연출됐다. 그게 뭔고 하면, 밭으로 배달을 시켜도 배달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다. 도시처럼 주소가 분명히 정해져 있는 경우엔 주소만 알려주면 쉽게 배달할 수 있지만, 밭은 어떤 식으로 주문해야 하는 걸까? “초평초등학교 근처에 오면 밭에 사람들이 서서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인디, 그리로 갖다 주소”라는 식으로 주문해야 하지 않을까. 아마 여긴 그런 식으로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주문을 받는 사람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도시에서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주문을 했다가는 십중팔구 투덜거리는 소릴 듣기 십상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역시나 환경에 따라 여기선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이, 다른 곳에선 어마어마한 일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신기한 장면은 오토바이로 배달을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ton 트럭 보조석에 배달가방을 싣고 왔다는 점이다. 갓길을 따라 트럭 한 대가 올 때만 해도 일하러 오신 분이려니 했다. 그런데 트럭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배달 가방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니 어찌나 황당하고 웃음이 나던지. 이게 바로 문화충격이지 않을까.
아~ 세상엔 참으로 재밌는 일들이 많다. 도시와는 너무도 다른 풍경, 그리고 그런 풍경들이 자아내는 광경에 빠져들다 보면 힘듦도 사라지니 말이다. 지금껏 도시문화에만 심취하여 그걸 고급한 문화인양 생각하며 다른 것엔 관심조차 주지 않으며 살아왔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짬뽕도 배고플 때 먹으니 정말 맛있더라. 오죽했으면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먹었을까. 배도 부르고 볕도 따뜻하니 더 이상 남부러울 게 없었다. 이곳에 돗자리를 펴고 한숨 푹 잘 수 있다면 여기야말로 무릉도원이지 않을까.
▲ 최근에 먹어본 짬뽕 중엔 '용문객잔'의 짬뽕이 최고였다. 그렇지만 일하고 밭에서 먹는 짬뽕의 맛을 당해낼 순 없다.
노동 후엔 모든 음식이 천상의 음식이 된다
한 끼 배불리 먹었으니 이제 이장님네 밭에 고추를 심을 차례다. 작년엔 비교대상이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고추를 심어서 작게만 느껴졌는데, 오늘 다시 보니 꽤 크더라. 오후의 뜨거운 햇볕을 온 몸으로 받으며 일을 해야 했다. 작년에 심을 땐 오후에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여서 오히려 노동을 하기 편했던 것을 생각하면, 올핸 너무 날씨가 좋아 버거울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면 날씨가 좋으면 좋다고, 안 좋으면 안 좋다고 문제라고 여기는 마음이 읽힌다. 그건 일하고 싶어서 왔으면서도 깊은 마음엔 하기 싫은 마음이 있다는 거겠지. 그러니 날씨를 핑계 삼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볕을 그대로 온몸으로 받으니 살짝 현기증이 느껴졌다. 이러다 쓰러지는 거 아냐~ ㅋ
역시 잘 안 쓰던 몸을 이렇게 부산히 움직이고 있으니 벌써부터 반응이 온다. 이땐 삽으로 흙을 떠서 고추모 곁에 흩뿌리는 일을 했다. 모두 다함께 애를 쓰고 있으니 힘들다고 농땡이를 펴선 안 된다. 하기로 한 이상, 끝이 있는 일을 하는 이상 최선을 다해서 할 뿐이다. 으라차차~ 힘을 내자 힘!
일은 1시간 30분 만에 끝났다. 작년엔 오후 4~5시에 끝났었는데, 올핸 오후 2시가 약간 넘어 끝났으니, 아주 수월하게 노동한 셈이다.
역시나 작년과 마찬가지로 이장님 댁 앞마당에선 고기파티가 열렸다. 어른들이 앉는 자리와 아이들이 앉는 자리가 나누어져 왁자지껄 고기도 굽고 맛있게 먹는다. 난 아이들이 앉는 자리에 앉아 순오와 민철이가 구워주는 고기를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조금 전에 짬뽕을 먹은 터라 그다지 배가 고프진 않았는데, 숯불에 구운 고기는 절로 입맛을 돌게 하더라. 두릅과 상추, 그리고 쫑마늘과 함께 먹는 삼겹살 맛은 최고였다. 그래서 밥 한 공기까지 뚝딱 먹어치웠다. 최근에 이렇게 푸짐하게 먹은 적이 없던 탓에, 나에게도 엄청난 식성이 있음을 알고 놀라기까지 했다. 역시나 밥은 함께 먹어야 맛이 있다.
▲ 그래도 한 번 해본 풍이 있으니, 이번엔 그렇게까지 머리 아플 필요는 없다. 단순 반복되는 노동을 그저 하면 되니 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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