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드래그 레이싱과 열정
큰 아들의 자동차는 남달랐다. 터미널에서 출입문으로 나오니 큰 아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자동차 소리가 너무 커서 멀찍이 세워두고 왔거든요. 그러니 좀 걸어가셔야 되요.”라고 말하더라. 그때 뭔가 일반적인 자동차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됐고 은근히 기대가 됐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세계가 있다
그런데 막상 눈에 보이는 자동차는 매우 평범했다. 그냥 거리에서 굴러다니고 있는 자동차와 크게 다르지 않는 외관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막상 차에 타고 시동을 켰는데, 순간적으로 자동차가 폭발하는 줄만 알았다. 엔진의 굉음이 터짐과 동시에 자동차가 앞을 향해 전속력으로 튀어나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 차를 타려는 사람들은 마음을 단디 먹고 타야만 하겠구나.
그렇다, 큰 아들은 자동차 전문가답게 엔진을 바꾸고 배기량을 키웠던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출퇴근하는 용도를 넘어서, 아예 자동차 경주까지 나가기도 한단다. 이것이야말로 여태껏 나의 세상에선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세상의 이야기다. 그러니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레이싱’을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란다. 400M의 직선코스를 자동차로 주파하는 경주를 한다는 거다. 그걸 주파하는데 십 몇 초밖에 안 걸린다고 했을 때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이 경주엔 자동차를 어떻게 컨트롤하느냐 하는 코너링에 대한 기술보다는 엔진을 어떻게 최적화시켜 최대의 효율을 뽑아내느냐 하는 엔진 컨트롤에 대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최고의 기록을 내기 위해서는 엔진을 직접 다룰 수 있어야 하고, 변속기를 제때 바꿀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경기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가장 빨리 400m를 주파하는 방법과 들어오는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에 가장 근접하게 들어오는 방법이다. 과연 그렇게 빨리 달릴 땐 어떤 기분이 드는 걸까?
그래서 “왜 하필 어중간하게 400m를 달리는 거야?”라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잘 모르겠다고 말하더라. 아무래도 엔진에 가장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최고의 기량을 뽑아낼 수 있는 거리가 현재의 엔진기술로는 400m 정도쯤 되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역시나 사람은 각자가 처한 환경이 다르고, 추구하는 바도 다르다 보니 전혀 다른 세상에 살아가고 그런 세상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다. 나의 세계에선 절대로 마주칠 수 없을 것만 같던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들으며 흠뻑 빠져 들었다. 그건 나름대로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는 열정이기 때문이고 여태껏 내가 가장 못해봤던 몰입이란 경지에 대한 얘기이기 때문이다.
▲ 400미터를 경주하는 걸, '드래그 레이싱'이라고 한단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얘기다.
불광불급의 삶의 자세
예전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미쳤다’고 짧게 한마디를 내뱉었었다. 더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게 없이 말이다. 나와는 다르다는 생각 정도가 아니라,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고 못을 박은 것이고 그래서 무작정 비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가치로 남을 제단하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내 생각만으로 이야기할 경우 대화 자체가 불가능해지며 그저 내 생각만을 강요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만을 강요할 거라면 차라리 남과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러지 않으려면 최대한 나의 생각은 배제하고 판단하지 않으며 그 이야기에 심취해야만 한다.
거기에 덧붙여 무언가에 푹 빠져들 수 있는 열정, 그 자체는 매우 멋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건 펄펄 뛰는 뜨거운 가슴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에 푹 빠져들지 못하면, 그 일의 최고 경지에 미치질 못한다(不狂不及)’라는 말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그 일 자체에 미쳐야 한다는 뜻이다. 그럴 때에야 자연스럽게 최고의 경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런 일이 자신의 전공과 연관이 있는 일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러니 자동차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땐 내 마음에도 미동이 일었던 거다.
▲ '미친 놈'이라 욕할지라도 미쳐본 사람만이 그 다음에도 나아갈 수 있는 법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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