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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이 영화를 보라] 밀양 - 3. ‘고향’: 욕망의 일차적 귀환처 본문

연재/시네필

[이 영화를 보라] 밀양 - 3. ‘고향’: 욕망의 일차적 귀환처

건방진방랑자 2020. 2. 27.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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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향’: 욕망의 일차적 귀환처

 

그저 일상의 공간인 밀양

 

여기서 다시 시작할 거야

 

밀양에 자리를 잡고 난 뒤, 신애는 피아노학원을 차리고 아들 준을 웅변학원에 보낸다. 그리고 이웃들과 교류를 시작한다. 옷가게와 약국, 웅변학원 원장과 학부모들 등. 그렇게 해서 차츰 밀양이라는 낯선 지역에 진입하게 된다.

물론 이 진입의 통로는 카센터 사장 종찬이다. 그는 그녀가 밀양으로 들어오는 입구에서 만난 첫 번째 인물이다. 이때 이후 종찬은 신애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그녀를 돕는다. 하지만 신애는 그의 존재감을 거의 느끼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 남동생의 말을 빌리면, 그는 신애의 취향이 절대 아니기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신애가 꿈꾸는 삶의 기준에서 보자면, 종찬은 그저 한심한 속물에 불과하다. 낭만이라든가 교양 따위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노총각, 종찬. 처음 신애가 종찬에게 밀양이 어떤 곳이냐고 묻자 종찬은 이렇게 답한다.

 

경기가 엉망이고, 여는 한나라당 도시고, 부산 가깝고예, 말씨도 부산말씨고, 급하고 말씨가, 인구는 뭐, 마이 줄었고.”

 

, 썰렁한 답변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떤 환상도, 허위의식도 담겨 있지 않다. 종찬에게 밀양은 그저 밀양일 뿐이다.

 

 

 

 

 

망상을 실현하기 위한 밀양

 

하지만, 신애에겐 그렇지 않다. 처음 인용했던 그 대사를 다시 상기해 보자.

그 순간, 바람이 불어오고 종찬은 신애를 마음에 품게 된다. 그가 신애한테 끌린 건 신애한테서 풍기는 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사실은 허영기) 때문이지만, 그의 사랑법에는 어떤 가식적 로망도, 오버액션도 없다. 늘 그녀가 필요로 하는 그만큼의 거리에 있을 뿐이다. 그에 비하면 신애의 취향은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 차 있다.

사실 밀양을 저 엄청난의미로 풀이하는 건 전적으로 신애의 망상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밀양은 신애의 망상이 일차적으로 귀환하는 곳이다. 고향은 고향인데, 아주 낯선 고향(형용모순!). 다소 역설적이지만, 바로 그래서 더 고향이라는 표상에 딱 들어맞는다. ? 구질구질한 과거의 흔적이나 번잡한 친인척관계가 없다 보니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망상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망상 위에서 새로운 정착을 시도한다.

 

좋은 땅 있으면 집 짓고 살 거예요. 원장님, 좋은 땅 혹시 아시면 소개 좀 해주세요.”

 

좋은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산다? , 여기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녀의 망상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걸음 더 미끄러진다. 졸지에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땅을 알아보러 다니는 을 하는 것이다. 서울서 내려온 남동생한테 투자 좀 해라그러자, 동생이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뭐 하는 거야? 지금.”

동생은 누나가 하는 짓이 황당하기 짝이 없다. 왜냐면, 그녀한테는 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왜 저러는 거지? 돈이 있는 하기 위해서다. 남들한테 좀 있어보이려고, 그렇게 해서 밀양이라는 고향에 터를 내리려고. 맙소사! 이런 점에서 신애가 종찬보다 훨씬 속물이다. 다만 그것이 착하고 세련된 이미지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그 이미지 때문에 자신도 속고, 타인도 속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녀 주변에 일종의 망상의 그물망이 둘러 쳐지게 된다. 망상은 망상을 부른다. 파국이 올 때까지 멈추지 않는 것. 망상이 치명적인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웅변학원 학부모들이 회식하는 장면, 신애가 땅 주인한테서 전화를 받는다. 사람들이 부동산 투기하는 거냐며 놀려댄다. 그러자 신애가 말한다.

 

있는 돈 은행에 넣어봤자 요즘 이자가 너무 싸잖아요. , 먼저 일어나 볼게요. 땅 주인 맘 바뀌기 전에.”

 

아뿔사! ‘너무 많이가 버렸다. 그때 웅변학원 원장이 신애를 따라나선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표정으로. 아마 돈을 빌리고 싶었으리라. 이미 이때부터 신애는 돈과 땅이 만들어 내는 중력장 속으로 들어간 셈이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가상의 신기루에 스스로 갇혀 버린 형국이라고나 할까. 결국 그 돈을 노리고 웅변학원 원장이 그녀의 아들 준을 유괴한다. 하지만 그녀가 지닌 현금은 꼴랑 870만원! 그럼 땅 계약은?

 

그거 다 거짓말이에요. 저 땅 살 돈 없어요. 다 거짓말이에요. 그냥 돈 있는 척하려고 그냥 거짓말한 거에요. 그 돈이 제 전재산이에요.”

 

전화기 저편에서 유괴범은 다시 채근한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으니 보험금을 탔을 거 아닌가?

 

, 보험금요? 그거 남편 사업하다 빚진 거 갚구요, 그리고 여기 내려와서 가게 얻고 인테리어하고.”

 

결국 아이는 참혹한 시체로 발견된다. 이로써 밀양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그녀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 버린다. 밀양은 비밀의 태양이 아니라, ‘지옥의 화염이었던 것.

 

 

 

 

 

스위트홈이란 과대망상

 

하지만, 한번 따져 보자. 과연 그녀는 다시 시작한 것일까? 밀양, 아니 비밀의 태양에 대한 과대망상, 좋은 땅을 사서 집을 짓겠다는 꿈, 부동산 투기에 대한 허황된 욕심. 이것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새롭기는커녕 진부하고 또 진부한, 우리 시대 모든 중산층의 욕망에 다름 아니다. 말하자면, 그녀는 서울에서 남편과 살았을 때와 동일한 욕망을 반복한 셈이다. , 그녀는 단 한가지의 기억도 지우지 못했다. 진정한 망각이란 단순히 과거의 사실들을 지우는데 있지 않다. 그 사실들이 일으키는 정서적 배치를 바꾸는 데 있다. 전혀 다른 정서와 욕망의 배치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비로소 기억의 포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신애는 그 반대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실(남편의 배신)을 지워 버림으로써 스위트 홈에 대한 기억과 집착을 더욱 증식ㆍ확장시켜 버렸다. 그 결과, 남편이 살아 있을 때보다 삶과 욕망 사이의 간극이 더욱 벌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더더욱 오버액션을 하게 되었고, 물론 그녀는 자신의 욕망이 지닌 이 간극과 허위를 알아채지 못한다. 아니, 무의식적으로 언뜻 감지하긴 한다. 준의 장례식장에서 그녀는 땅에 주저앉아 울먹인다.

 

내가 왜 그랬을까요? 내 손으로 죽여도 시원찮은데, 경찰서에서 그 인간 만났을 때 왜 내가 눈을 피했을까요? 갈기갈기 찢어죽이고 싶었는데.”

 

아마도 유괴범의 눈에서 자신이 둘러친 허위의 그물망을 보게 될까 두려웠던 것이리라. 아무튼 아들 준은 죽었고, 그와 동시에 그녀가 고향이라는 대지 위에 구축했던 판타지는 완벽하게 붕괴되었다. 요컨대, 욕망의 배치를 바꾸지 않는 한 새로운 시작은 불가능하다는 것. 그것이 밀양이건 아니면 더 멀고 낯선 곳이건 간에.

 

 

 

사실 유괴라는 잔혹한 사건이 개입하기는 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예컨대 <초록물고기>의 하이라이트 가족들의 소풍장면을 한번 떠올려 보라. 막동이네 가족은 서로의 우애를 확인하기 위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지만, 결과는 실로 참담하다. 둘째 형네는 부부싸움을 하고, 뇌성마비 형은 사지를 비틀며 울부짖고, 다른 형제들은 난투극을 벌이고, 막동이는 차를 몰아 그 아수라장 주변을 맴돈다. 막동이의 꿈은 산산이 부서진다.

물론 막동이네는 대가족인데 반해, 신애네는 달랑 아들 하나가 전부다. <초록물고기>1990년대적 풍경이라면, <밀양>2007년의 풍경이다. 그 사이에 더더욱 단자화된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래서 더더욱 사람들은 스위트 홈의 행복이라는 망상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참으로 희한한 노릇이다. 가족의 범위가 이토록 축소되어 가는데도 행복은 오직 가족이라는 배치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믿고 있으니 말이다. ‘가족에 대한 계보학적 탐색이 필요한 건 바로 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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