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풍아(靑丘風雅)』와 거의 같은 시기에 『동문선(東文選)』이 간행되었으며, 유몽와(柳夢窩)의 『대동시림(大東詩林)』이 이보다 뒤에 나온 듯하나 이것은 함께 논할 수준의 것이 되지 못한다. 『동문선(東文選)』은 방대한 관찬서(官撰書)로서, 또 시문(詩文)의 총집(總集)으로서 이것이 갖는 자료집(資料集)으로서의 의미는 막중하지만, 그러나 『청구풍아(靑丘風雅)』는 『동문수(東文粹)』(文選集)와 더불어 편자(編者)의 취향과 조감(藻鑑)에 따라 정선(精選)한 사찬서(私撰書)이고 또 이것은 시선집(詩選集)이라는 점에서 양자(兩者)는 좋은 대조를 보인다. 이와 같은 양서(兩書)의 성격은 다음과 같은 제가(諸家)의 기록에서도 사실로 확인된다. 성현(成俔)은 그의 『용재총화(慵齋叢話)』(권 10)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삼문(成三問)이 살았을 때 우리 나라의 문(文)을 편집하여 『동인문보(東人文寶)』라 하였으나 다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김종직(金宗直)이 뒤따라 이를 편성하여 『동문수(東文粹)』라 했다. 그러나 김종직(金宗直)은 문(文)의 번화한 것을 미워하여 다만 온자(醞藉)한 문(文)만 취했다. 비록 규범에 마음을 썼으나 나른하고 힘이 없어 볼 만한 것이 못 된다. 그가 편찬한 『청구풍아(靑丘風雅)』는 비록 시가 문(文)과 같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호방(豪放)한 듯한 것은 버리고 수록하지 않았으니 이 얼마나 고집불통의 편견이냐? 서거정(徐居正)이 편찬한 『동문선(東文選)』과 같은 것은 유취(類聚)요, 선(選)한 것이 아니다.
成謹甫在時 編東人之文名曰東人文寶 未成而死 金季醞踵而成之 名曰東文粹 然季醞專惡文之繁華 只取醞藉之文 雖致意於規範 而萎薾無氣 不足觀也 其所撰靑丘風雅 雖詩不如文然 詩之稍涉豪放者 棄而不錄 是何膠柱之偏 至如達城所撰東文選 是乃類聚 非選也.
두 책의 성격과 김종직(金宗直)의 문학 세계까지도 함께 논하고 있다.
책명 | 동문선(東文選) | 청구풍아(靑丘風雅) |
편찬자 | 서거정 | 김종직 |
편찬 주체 | 관찬(官撰) | 사찬(私撰) |
특징 | 과거 시들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함 | 호방한 것들은 수록하지 않아 모인 시들이 힘이 없음. |
그리고 남용익(南龍翼)과 홍만종(洪萬宗)은 그 속편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차례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남용익(南龍翼)은 『기아서(箕雅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문선(東文選)』은 널리 취하였지만 정선(精選)하지 아니하였으며 『속동문선(續東文選)』은 수재(收載)한 것이 많지 않다. 『청구풍아(靑丘風雅)』는 정선(精選)하였지만 널리 취하지 않았으며 『속청구풍아(續靑丘風雅)』는 어디서 취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東文選博而不精, 續則所載無多. 靑丘風雅精而不博, 續則所取不明.
홍만종(洪萬宗)은 「시화총림증정(詩話叢林證正)」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서거정(徐居正)의 『동문선(東文選)』은 한 유취(類聚)이니 또한 선법(選法)을 따른 것이 아니다. 소세양(蘇世讓)의 『동문선(東文選)』은 취사(取舍)가 불공평한 것으로 보아 자못 애증(愛憎)에 기인한 것 같다. 김종직(金宗直)의 『청구풍아(靑丘風雅)」는 다만 한 것만 취하여 기상이 뛰어난 것은 빠뜨렸다. 유근(柳根)의 『속청구풍아(續靑丘風雅)』는 버리고 취(取)한 것이 분명치 않아 그 요령을 얻지 못했다.
徐四佳東文選, 卽一類聚, 亦非選法. 蘇暘谷續東文選, 取舍不公, 頗因愛憎. 金佔畢靑邱風雅, 只取精簡, 遺其發越. 柳西坰續靑邱風雅, 與奪不明, 不得其要領.
두 속집(續集)의 성격을 명료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로 보면 『속동문선(續東文選)』과 『속청구풍아(續靑丘風雅)』는 각각 정편(正篇)에 이어 그 이후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는 점에서 속편(續篇)의 의미가 있을 뿐 정편(正篇)의 성격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속동문선(續東文選)』에는 정편(正篇)에서 볼 수 있는 전집적(全集的)인 성격은 이미 상실되고 있으며, 특히 『청구풍아(靑丘風雅)』와 같은 사찬(私撰) 선집(選集)의 경우, 다른 편자에 의하여 그것을 속보(續補)한다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 그리고 유근(柳根)의 『청구풍아(靑丘風雅)』는 남용익(南龍翼)과 홍만종(洪萬宗)이 각각 지적한 바와 같이 “어디서 취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所取不明]”, “그 요령을 얻지 못했다[未得要領]”한 것으로 사실상 『청구풍아(靑丘風雅)』를 속보(續補)할 만한 수준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청구풍아(靑丘風雅)』는 편자 미상인 여러 종의 필사본【3卷 3冊, 7卷 1冊本 등】이 유전(流傳)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유근(柳根)의 속편(續篇) 외에도 또 다른 이종(異種)이 있는 듯하다. 이 경우에 있어서는 『청구풍아(靑丘風雅)』도 조선후기에 나온 것으로 보이는 이종(異種)의 인본(印本)이 있는 바, 『청구풍아(靑丘風雅)』라는 이름이 이미 보통명사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