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삭낭자 이야기索囊子傳
완산에 살던 거지 송씨의 특이사항
完山乞者. 問其名曰不知, 問其姓曰亦不知, 或以洪號之. 能多食而不飽, 或不食而不飢, 風雪裸體而不寒, 人與之衣則不取. 乞米而食, 有餘則亦與之餓者. 未嘗與人居, 亦未嘗與人言. 宿於館舍下, 府中耆老人, 皆不知乞者始來之年代, 而容貌不改.
삭낭자로 불린 송씨
或號曰‘索囊子’, 蓋結索爲囊, 行則荷之, 無它物, 亦無異事. 往往遊都下, 人莫知去來. 弊衣木履, 行乞於市.
삭낭자의 마지막 모습
今相國元公嘗爲完山尹, 心異之, 招延之甚厚, 亦不辭. 與之食則食之, 與之言則不言, 一朝不知所去.
其後南方大飢, 今不至者幾十年云.
斯人者蓋遊方之外, 而不與事物相攖, 樂忘世而泯其跡, 鶉居而鷇食, 土駘狂接輿之倫耶. 癸卯正月, 眉叟書. -『記言』
해석
완산에 살던 거지 송씨의 특이사항
完山乞者.
완산에 빌어먹던 사람이 있었다.
問其名曰: “不知”, 問其姓曰: “亦不知”,
그 이름을 물으면 “모릅니다.”라고 대답했고, 성을 물으면 “또한 모릅니다.”라고 대답했는데,
或以洪號之.
어떤 이는 홍씨라 불렀다.
能多食而不飽, 或不食而不飢,
그는 많이 먹어도 배불러하지 않았는데 혹은 아예 먹지 않아도 배고파하지도 않았으며,
風雪裸體而不寒.
바람 불고 눈이 내릴 적엔 나체로 있어도 추워하지 않았다.
人與之衣則不取, 乞米而食,
누군가 옷을 주면 받질 않았고, 쌀을 구걸하여 먹지만
有餘則亦與之餓者.
남은 게 있으면 또한 굶주린 이들에게도 주었다.
未嘗與人居, 亦未嘗與人言.
일찍이 남과 살지 않았고, 또한 일찍이 남과 말하지 않았다.
宿於館舍下, 府中耆老人,
관아 아래에서 자는데 고을의 어르신들도
皆不知乞者始來之年代,
모두 빌어먹던 그가 처음 왔던 때를 알지 못하지만
而容貌不改.
그의 용모만은 예전 그대로라고 했다.
삭낭자로 불린 송씨
或號曰‘索囊子’, 蓋結索爲囊,
혹은 ‘삭낭자’라 불리기도 했는데, 대저 노끈을 묶어 주머니를 만들어
行則荷之, 無它物,
다닐 땐 그걸 메고 다니고 그 외에 다른 물건은 없었으며,
亦無異事.
또한 기이한 일도 하질 않았다.
往往遊都下, 人莫知去來.
이따금 한양과 지방을 돌아다니는데 사람들은 그가 오고 가는 곳을 알지 못했다.
弊衣木履, 行乞於市.
해진 옷을 입고 나막신을 신고 시장에 다니며 구걸했다.
삭낭자의 마지막 모습
今相國元公嘗爲完山尹, 心異之,
지금 상국 원두표가 일찍이 완산의 부윤이 되어 내심 삭낭자를 기이하게 여겨
招延之甚厚, 亦不辭.
그를 초대하여 매우 후대했으나 그는 또한 사양하질 않았다.
與之食則食之, 與之言則不言.
먹을 것을 주면 먹었지만, 말을 걸면 말을 하진 않았다.
一朝不知所去.
그러다 하루아침에 떠난 곳을 알지 못했다.
其後南方大飢,
그 훗날 남쪽지방에 큰 기근이 들었는데,
今不至者幾十年云.
지금까지 오지 않은 지 이미 10년이 되었다고 한다.
斯人者蓋遊方之外, 而不與事物相攖,
이 사람은 대개 떠돌이 방외인으로 사물에 얽매이지 않았고
樂忘世而泯其跡, 鶉居而鷇食,
기꺼이 세상을 잊고 자취를 없앴으며, 집 없는 사람처럼 떠돌아다녔고 빌어먹었으니,
土駘狂接輿之倫耶.
토태의 미치광이 접여의 무리인 듯하다.
癸卯正月, 眉叟書. -『記言』
1663년 1월에 미수가 쓰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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