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기이한 인물 삭낭자
삭낭자전(索囊子傳)
김려(金鑢)
색낭자로 불리게 된 이유
索囊子姓洪, 甄城之丐者也. 結索爲囊, 行則荷之, 夜必寢其中, 自名曰: ‘索囊子’, 人亦呼之以索囊子也.
색낭자의 색다른 외모와 행동거지
索囊子身長七尺, 美鬚髯, 貌如氷玉. 問其年, 曰: ‘二十’ 翌年問之, 亦如是. 後十年問之, 無不如是, 然索囊子容彩不衰也. 常衣弊布單, 曳一大木屐, 往來都下乞米, 多得則分諸丐者. 平生不喜與人言, 未嘗宿人舘舍. 索囊子甚大食量, 炊八斗米喫不飽, 飮酒數甕亦不亂, 然常不食月餘矣, 亦未嘗飢也.
색낭자의 걸출한 바둑실력
索囊子碁品甚妙當世, 然不肯與人賭勝. 京中士大夫召之使圍, 與第一手對着, 只嬴一子; 與最下者對着, 亦只嬴一子. 故當是時, 棊局嬴一子者, 名爲‘索囊子碁法.’
삭낭자의 마지막 행적
索囊子性最能寒. 大冬風雪凝沍, 鳥雀皆凍死, 索囊子輒躶體立, 或僵卧溪石間, 睡三五日. 起則汗流盈踵. 人與之衣不受, 強之則衣而如市, 與他乞子.
元忠翼斗杓爲甄城尹, 招延之, 禮甚厚. 與之食則食, 與之言則辭不言. 已而失其所之. 有人數十年後遇之關西途中, 如故云.
여러 야사에 등장하는 삭낭자
余見野史, 至索囊子事, 未嘗不洒然駭也. 彼固有其中者耳, 顧人未之知也. 然人之有道也 何必如是而已也
或言索囊子名家子, 善文章, 遭家禍避世云, 其言近之. 『藫庭遺藁』 卷之九
▲ 견훤이 전주에 도읍지를 정했다. 그래서 훗날엔 전주를 견성이라 부르기도 했다. (사진출처-동아일보)
해석
색낭자로 불리게 된 이유
索囊子姓洪, 甄城之丐者也.
삭낭자의 성은 홍씨이고, 견성(甄城)【견훤이 도읍지를 삼았던 곳으로 이렇게 불리며, 지금의 전주를 말함】에서 빌어먹던 사람이다.
結索爲囊, 行則荷之,
노끈을 묶어 주머니를 만들어 다닐 때면 멨으며
夜必寢其中,
밤엔 반드시 그 속으로 들어가 잤는데,
自名曰: ‘索囊子’, 人亦呼之以索囊子也.
스스로 ‘삭낭자’라 불렀기에 사람들도 또한 삭낭자라 불렀다.
색낭자의 색다른 외모와 행동거지
索囊子身長七尺,
삭낭자의 신체의 길이는 7척이었고
美鬚髯, 貌如氷玉.
아름다운 수염에 얼굴에선 얼음과 옥처럼 티가 없었다.
問其年, 曰: ‘二十’ 翌年問之, 亦如是.
나이를 물으면 ‘20살입니다’라고 했는데, 그 다음해도 물어보면 또한 그렇게 말했다.
後十年問之, 無不如是,
후에 10년이 지나 물었을 때에도 예전의 대답과 같지 않음이 없었는데,
然索囊子容彩不衰也.
삭낭자의 용모와 풍채는 쇠하질 않았다.
常衣弊布單, 曳一大木屐,
항상 해진 옷을 입고 홑옷을 걸치고선 큰 나막신을 끌고
往來都下乞米, 多得則分諸丐者.
도성을 왕래하며 쌀을 구걸했고, 많이 얻게 되면 거지들에게 나눠주었다.
平生不喜與人言, 未嘗宿人舘舍.
평생토록 사람과 말을 하는 걸 기뻐하지 않았고 일찍이 남의 집에서 잠을 자지도 않았다.
索囊子甚大食量, 炊八斗米喫不飽,
삭낭자는 매우 많은 양을 먹기에 8두의 쌀을 지어 먹더라도 배부르지 않았고
飮酒數甕亦不亂,
술 몇 동이를 마시더라도 또한 취하질 않았다.
然常不食月餘矣,
그러나 항상 한 달여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더라도
亦未嘗飢也.
또한 일찍이 허기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색낭자의 걸출한 바둑실력
索囊子碁品甚妙當世, 然不肯與人賭勝.
삭낭자의 바둑 실력은 매우 당시에 뛰어났지만 기꺼이 남과 내기하여 이기려 하질 않았다.
京中士大夫召之使圍,
한양의 사대부가 그를 불러 바둑을 두게 하면
與第一手對着, 只嬴一子;
제일 잘 두는 사람과 한 수 두더라도 다만 한 집 차이로 이겼으며,
與最下者對着, 亦只嬴一子.
제일 하수와 한 수 두더라도 또한 한 집 차이로 이겼다.
故當是時, 棊局嬴一子者,
그렇기 때문에 이 당시엔 바둑에서 한 집 차이로 이기는 경우를
名爲‘索囊子碁法.’
‘삭낭자의 바둑법’이라 이름 지을 정도였다.
삭낭자의 마지막 행적
索囊子性最能寒.
삭낭자는 체질은 추위를 잘 견뎠다.
大冬風雪凝沍, 鳥雀皆凍死,
한파가 몰려와 바람과 눈이 얼리게 하여 새와 참새가 다 얼어 죽는데도
索囊子輒躶體立,
삭낭자는 갑작스레 나체로 서 있기도 했고,
或僵卧溪石間, 睡三五日.
간혹은 시내의 너럭바위에 넘어지듯 누워 사흘에서 닷새를 자기도 했다.
起則汗流盈踵.
그러다 일어나면 땀이 흘러 발꿈치까지 찰 정도였다.
人與之衣不受,
다른 사람이 옷을 주더라도 받지 않았고,
強之則衣而如市, 與他乞子.
그에게 강압적으로 주면 입고선 시장에 가서 다른 거지에게 주었다.
元忠翼斗杓爲甄城尹, 招延之, 禮甚厚.
충익공 원두표가 견성의 부윤이 되어, 그를 초정하여 정중하게 매우 후대했다.
與之食則食, 與之言則辭不言.
그래서 먹을 것을 주면 먹었지만 그에게 말을 걸면 말을 하진 않았다.
已而失其所之,
이윽고 그가 간 곳을 모르지만,
有人數十年後遇之關西途中,
어떤 사람이 수십 년 후에 관서 가는 길에서 만났는데,
如故云.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한다.
여러 야사에 등장하는 삭낭자
余見野史, 至索囊子事, 未嘗不洒然駭也.
내가 야사를 보다가 삭낭자의 일에 이르면 일찍이 소탈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彼固有其中者耳, 顧人未之知也.
삭낭자는 야사 속이 있는 사람일 뿐으로, 그 사람을 돌이켜 보며 알지를 못했다.
然人之有道也 何必如是而已也
그러나 사람은 도리가 있다 하더라도 하필 이와 같아야 하겠는가?
或言索囊子名家子, 善文章,
어떤 이는 ‘삭낭자는 명문가의 자식으로 문장을 잘 지었으나,
遭家禍避世云, 其言近之. 『藫庭遺藁』 卷之九
집 안의 재앙을 만나 세상에서 은둔하였다’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에 가까운 듯하다.
인용
'한문놀이터 >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택영, 박은식 - 안중근(安重根) (0) | 2019.03.17 |
---|---|
삭낭자전索囊子傳 - 기언 (0) | 2019.03.05 |
배 위에서 똬리를 튼 뱀을 쫓아낸 홍섬의 재치 - 국조인물고 (0) | 2019.03.05 |
대동기문 - 김종수와 뱀, 그리고 곰방대 (0) | 2019.03.05 |
황희 일화1: 너의 말도 옳다汝言是也 - 송와잡기 (0) | 2019.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