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한 아들 농아의 무덤에 바치는 마음
농아광지(農兒壙志)
정약용(丁若鏞)
농아가 죽게 된 연유
農兒孕於谷山, 生於己未十二月初二日, 死於壬戌十一月三十日. 疹而痘, 痘而癰也. 余在康津謫中, 爲文寄其兄, 令哭而諭之於其所圽.
농(農)이라 이름 지은 까닭
哭農兒文曰, 汝之入世而出世也, 纔三朞已, 而與我別居其二. 人有六十年生世, 而四十年與父別者, 其可哀也已. 汝之生也, 吾憂深, 名汝曰農. 旣已家及焉, 使汝活農而已, 然賢於死.
아비로 마음의 의지를 삼으려는 너의 소원을 끝내 이루어주지 못했구나
使吾死, 將欣然踰黃嶺而濟洌水, 是吾死賢於活. 吾死賢於活而活, 汝活賢於死而死, 非吾之所能爲也. 使我在, 汝未必活, 而汝母之書曰, 汝云: “父歸我則疹, 父歸我則痘.” 汝非能有所揆度而爲斯言. 然汝以我歸爲可依也, 汝願不遂, 其可悲也.
아비의 귀양으로 생이별하고 소라껍질만을 기다리다 죽어간 아들
辛酉之冬, 果川之店, 汝母抱汝而送我, 汝母指我曰彼爾父, 汝從而指我曰彼吾父, 而父之爲父, 汝實未知, 其可哀已. 鄰人之去, 寄矸螺二枚, 令遺汝, 汝母之書曰: “汝每康津人至, 索矸螺不得, 意甚沮, 及其死而矸螺至.” 其可悲也.
요절한 자녀의 이야기를 남겨둬서 그 흔적을 남겨야 한다
汝貌秀削, 鼻之左有小黑子, 其笑也雙牙尖. 嗟乎! 吾唯思汝貌, 不妄以報汝. 【得家書, 以其生日埋】
茯老常云: “子女之夭折者, 宜備書其生年月日名字面貌及死之年日, 俾有徵於後, 使其生有跡.” 其言甚仁
6남 3녀를 낳고 2남 1녀만이 살아남다
吾始庚子秋, 於醴泉郡舍墮一胎, 而辛丑七月, 妻因子瘧, 徑產一女, 八朔而生, 四日而夭, 未有名, 埋之瓦署之阪. 其次生武䍧ㆍ文䍧, 幸而成. 其次曰懼䍧, 其次曰女子孝順, 以順產爲孝也. 懼與順, 竝有壙銘, 非眞銘也, 志于冊也. 其次得一女, 今十齡, 已經二疹, 庶乎免夫. 其次曰三同, 死於谷山以痘折. 時妻有身, 因悲生子, 旣旬而又痘, 未數日而夭. 其次卽農䍧也. 三也生於丙辰十一月, 【初五日】 死於戊午九月, 【初四日】. 其次未有名. 懼與順, 埋之斗尺之岡, 三與其次, 埋之斗尺之麓, 農亦必麓矣.
凡產六男三女, 生者二男一女, 死者四男二女, 死倍於生也. 嗚呼! 吾獲戾于天, 殘酷如此, 爲之奈何! 『與猶堂全書』
해석
농아가 죽게 된 연유
農兒孕於谷山, 生於己未十二月初二日, 死於壬戌十一月三十日.
농아는 곡산에서 임신하여 기미(1799)년 12월 2일에 태어났다가 임술(1802)년 11월 13일에 죽었다.
疹而痘, 痘而癰也.
홍역이 천연두로, 천연두가 등창이 되었다.
余在康津謫中, 爲文寄其兄, 令哭而諭之於其所圽.
나는 강진에서 유배 중이라 글을 지어 농아의 형에게 붙여 곡하게 했으며 무덤에서 알리도록 했다.
농(農)이라 이름 지은 까닭
哭農兒文曰,
농아를 곡하는 글은 다음과 같다.
汝之入世而出世也, 纔三朞已, 而與我別居其二.
니가 세상에 왔다가 간 지 겨우 3주기일 뿐인데, 나와 헤어져 살 지는 2년이로구나.
人有六十年生世, 而四十年與父別者, 其可哀也已.
사람이 60년을 세상에 산다고 한다면, 40년을 아버지와 헤어져 산 꼴이니 슬퍼할 만하다.
汝之生也, 吾憂深, 名汝曰農.
니가 태어났을 때 나의 근심은 깊었기 때문에 너를 ‘농(農)’이라 이름 지었다.
旣已家及焉, 使汝活農而已, 然賢於死.
이윽고 집안의 화가 미치자 니가 농사를 지으며 살게 한 것뿐으로, 죽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아비로 마음의 의지를 삼으려는 너의 소원을 끝내 이루어주지 못했구나
使吾死, 將欣然踰黃嶺而濟洌水,
가령 내가 죽는다면 장차 흔쾌히 황령(黃嶺)을 넘고 열수를 건널 것이니,
是吾死賢於活.
이것은 내가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吾死賢於活而活, 汝活賢於死而死,
나는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나은 데도 살아있고 너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나은 데도 죽었으니,
非吾之所能爲也.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로구나.
使我在, 汝未必活, 而汝母之書曰,
만약 내가 있었더라도 니가 반드시 살진 못했겠지만, 니 어미의 편지에서 말하더구나.
汝云: “父歸我則疹, 父歸我則痘.”
“농아가 ‘아버지께서 돌아오시면 나는 홍역도 낫고 아버지께서 돌아오시면 나는 천연두도 낫겠죠.’라고 말합니다.”
汝非能有所揆度而爲斯言.
너는 헤아림이 있지 못하고서 이 말을 한 것이리라.
然汝以我歸爲可依也, 汝願不遂, 其可悲也.
그러나 너는 나의 귀향을 의지할 만한 것으로 삼았던 것인데 너의 바람이 완수되질 못했으니 슬프기만 하구나.
아비의 귀양으로 생이별하고 소라껍질만을 기다리다 죽어간 아들
辛酉之冬, 果川之店, 汝母抱汝而送我,
신유(1801)년 겨울에 과천의 점포에서 너의 어미가 너를 안고 나를 전송하였는데,
汝母指我曰彼爾父, 汝從而指我曰彼吾父,
너의 어미가 나를 가리켜 “저 사람이 너의 아버님이시다.”라고 말하니, 너도 따라서 나를 가리키며 “저분이 나의 아버지.”라고 했는데,
而父之爲父, 汝實未知, 其可哀已.
아버지가 아버지됨을 너는 실제론 알지 못했던 것이니, 슬퍼할 만하다.
鄰人之去, 寄矸螺二枚, 令遺汝,
이웃사람이 떠나갈 때 소라껍질 두 개를 붙여주며 너에게 보내게 했는데,
汝母之書曰: “汝每康津人至, 索矸螺不得,
너의 어미의 편지에 ‘아이가 매번 강진에서 사람이 도착했다고 하면 소라껍질을 찾는데 얻질 못하면
意甚沮, 及其死而矸螺至.” 其可悲也.
의기가 매우 소침해집니다. 그런데 죽을 때에 이르러서야 소라껍질이 도착했습니다.”라고 했으니 슬퍼할 만하다.
요절한 자녀의 이야기를 남겨둬서 그 흔적을 남겨야 한다
汝貌秀削, 鼻之左有小黑子, 其笑也雙牙尖.
너의 모습은 준수하고 코 왼쪽에 작은 점이 있으며, 웃을 땐 양쪽 송곳니가 뾰족하다.
嗟乎! 吾唯思汝貌, 不妄以報汝.
아! 나는 오직 너의 모습을 생각하며 망령되지 않게 너에게 알리는 것이다.
【得家書, 以其生日埋】
【편지를 받으니 태어난 날에 묻혔다고 하는 구나.】
茯老常云:
복로 이기양(李基讓)이 항상 말했었다.
“子女之夭折者, 宜備書其生年月日名字面貌及死之年日,
“자녀 중 요절한 사람은 마땅히 생년월일과 이름, 생김새와 죽은 날짜를 갖추어 써서,
俾有徵於後, 使其生有跡.” 其言甚仁
후대에 징험할 수 있게 하여 살았던 흔적이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말이 매우 진실하다.
6남 3녀를 낳고 2남 1녀만이 살아남다
吾始庚子秋, 於醴泉郡舍墮一胎,
나는 처음에 경자(1780)년 가을에 예천군의 집에서 한 태아를 유산했고,
而辛丑七月, 妻因子瘧, 徑產一女, 八朔而生,
신축(1781)년 7월에 아내가 학질 때문에 바로 한 딸을 출산하여 8개월 만에 태어났고,
四日而夭, 未有名, 埋之瓦署之阪.
4일 만에 요절하여 이름도 없이 와서의 언덕에 묻었었다.
其次生武䍧ㆍ文䍧, 幸而成.
그 다음엔 무장과 문장이 태어났는데 다행히 자라났다.
其次曰懼䍧, 其次曰女子孝順, 以順產爲孝也.
그 다음은 구장이고 그 다음은 딸인 효순인데, 순산함으로 효도했기 때문에 그리한 것이다.
懼與順, 竝有壙銘, 非眞銘也, 志于冊也.
구장과 효순이에겐 둘 다 광명이 있지만 진짜 광명은 아니고 책에만 기록되어 있다.
其次得一女, 今十齡, 已經二疹, 庶乎免夫.
그 다음으론 득녀하여 이제 10살이 되었고 이미 두 번의 홍역을 치렀으니 죽음을 면한 것일 게다.
其次曰三同, 死於谷山以痘折.
그 다음은 삼동이란 아이인데 곡산에서 천연두 때문에 요절하여 죽었다.
時妻有身, 因悲生子, 旣旬而又痘, 未數日而夭.
당시 아내는 임신 중으로 슬퍼하다가 출산했고 이윽고 열흘 만에 또 천연두를 앓다가 며칠 되지 않아 요절했다.
其次卽農䍧也.
그 다음이 곧 농장이란 아이다.
三也生於丙辰十一月, 【初五日】 死於戊午九月, 【初四日】.
삼이는 병진(1796)년 11월 5일에 태어나 무오(1798)년 9월 4일에 죽었다.
其次未有名.
그 다음 아이는 이름이 없다.
懼與順, 埋之斗尺之岡, 三與其次, 埋之斗尺之麓,
구장이와 효순이는 두척산에 묻었고 삼과 그 다음 아인 두척 산기슭에 묻었으며,
農亦必麓矣.
농아 또한 반드시 산기슭에 묻어야 한다.
凡產六男三女, 生者二男一女, 死者四男二女, 死倍於生也.
모두 6남 3녀를 낳았는데 살아 있는 자식은 2남 1녀이고 죽은 자식은 4남 2녀이니, 죽은 자식이 산 자식의 배가 되는 구나.
嗚呼! 吾獲戾于天, 殘酷如此, 爲之奈何! 『與猶堂全書』
아! 내가 하늘에 죄를 지어 잔혹함이 이와 같으니, 어이할거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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