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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07년 실학캠프 참가기 - 1. 돌아다니는 멍청이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07년 실학캠프 참가기 - 1. 돌아다니는 멍청이

건방진방랑자 2025. 5. 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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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돌아다니는 멍청이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얼마나 많은 날을 지냈는지 모른다. 앞날은 불투명했지만 어찌 되었든 대학에 왔으니 어떻게든 될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때론 그렇게 생각 없이, 고민 없이 정해진 수순대로 살아갈 때가 있다. 하긴 때론이 아니라, ‘대부분이 그렇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게 정해진 길만을 걷다 보면, 그게 당연히 가야 할 길로 보이고, 그 길 외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인생엔 분명 무수한 갈림길이 있지만, 우린 갈림길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길만 보고 맹목적으로 따라갈 뿐이다.

 

 

 

작은 배움만을 탐하다

 

하지만 모두 다 그렇게 들어서서 가고 있는 길이라 해서, 아무런 걱정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10대엔 맹목적으로 학교에서 하라는 공부만을 붙잡고 있어도 되지만, 적어도 20대가 되면 그런 공부 외에도 여러 가지 것들이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엔 스펙쌓기는 기본이고, 졸업을 할 수 있음에도 졸업예정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 위해 졸업을 무기한 연기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만큼 사회의 벽은 완고하고, 대학이 사회 진출의 지지대가 되기보다 걸림돌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니 더욱더 현실이란 벽을 느끼며 복지부동하고 온갖 불안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각만큼 사회진출이 쉽지 않다 보니, 졸업까지 무기한 연기하는 상황이다.

 

 

더욱이 한문교육과는 입학과 동시에 교사라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는 곳이다. 분명한 목표가 있다는 건, 여러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좋을 수도 있지만, 무언가 다양한 가능성을 느끼기도 전에 하나의 고착된 생각만을 하게 한다는 건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입학할 때부터 선배들은 중앙동아리에 들지 말고, 학과 동아리에 들어서 한문 공부만 맹렬히 하고, 웬만하면 민추(민족문화추진회) 수업도 같이 하면 더 좋다는 말을 한다. 그런 말을 들은 우리들은 맞아. 1학년 때부터 열심히 해야만 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대학의 큰 배움이 아닌 목표 위주의 좁디 좁은 취업용 배움만을 추구하게 된다.

 

 

  각 스터디(고전, 의암, 문우회)마다 방학 한 달 정도 서당에 들어가 사서를 공부한다. 그렇게 다들 열심히 살아간다.

 

 

 

작은 배움을 탐하다가 갇히다

 

길은 명확했고 목적지도 분명했다. 그러니 그 길을 따라 열심히만 걷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래서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 길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앞만 보고 열심히 걸어간 것이다.

 

모든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졸업과 동시에 합격이란 목표 아래 열심히 파고들었다. 그렇게 하면 무언가 될 것 같다는 희망이 어렸고, 누군가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뭘까? 하고 싶은 일이 뭘까?’를 고민하고 있을 때, 나는 그런 씨잘데기 없는 고민을 하지 않으니 남보다 훨씬 앞서 있다는 자부심마저 들었다. 그렇게 4(군 시절을 포함하면 7)을 보내며, 갈고 닦은 실력을 첫 임용시험에 맘껏 뽐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첫 임용시험은 경기도에서 보기로 했다. 전주에서만 26년을 살아오며 이곳이 너무도 편해졌고, 익숙해졌는데 그에 따라 단조로워지기도 했다. 그래서 좀 더 큰 곳으로 나가 다양한 것들을 접하고 수유+너머와 접촉하며 좀 더 앎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시험은 나에게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안겨줬다. 열심히 시험 문제를 풀었지만, 무려 10점 차이로 낙방했으니 말이다. 그때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중등 임용시험의 경우 경쟁률이 높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나, 장기간 오로지 졸업과 동시에 합격이란 꿈만을 좇아 대학생활을 했기에 그 낭패감은 미처 말로 할 수 없는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자신감은 급전직하했고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살고만 싶더라.

 

 

  첫 임용을 보던 날. 모든 우주의 기운이 나를 감싸고 도는 것 같은 포근함을 느꼈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빠꼼이에 대한 꿈

 

26년 간 나는 하나의 목표만을 좇아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집에 있는 빠꼼이를 꿈꿔왔던 듯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전혀 묻지 않고, 다양한 경험보다는 그저 주어진 길만을 따라가며 쉽게 쉽게 살아가기만을 바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난관에 부딪히고 나니, 그제야 내가 살아온 삶이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하는 자책감까지 들더라. 솔로몬이 했다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는 말이 그 순간 내 심경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그때 매우 묘한 경험을 하게 됐다. 크나큰 시련에 빠진 순간, 예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한 새로운 희망이 어렸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이 나에게 슬픔을 안겨줬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간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거란 직감이 들었던 것이다. 공부한다며 하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다며 밀쳐내 버린 수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그건 나에게 전혀 다른 삶을 살 것을 요구하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때 읽던 책이 한비야씨의 책들이었는데, 그 책은 하나 같이 나에게 충격을 줬다. 아래에 인용한 구절이 바로 그 당시에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문구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집에 있는 빠꼼이보다 돌아다니는 멍청이가 낫다라는 말이 있다. 책에서 배운 것, 신문, 방송, 영화에서 수없이 보고 들은 일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온몸으로 겪어내는 것만큼 효과적인 공부는 없기 때문이다.

-중국견문록, 한비야 저, 푸른숲, 2001, 143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는 돌아다니는 멍청이가 되지 않기 위해, ‘집에 있는 빠꼼이가 되고자 했다. 그래서 무언가 하나를 집중하며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 안에 침잠하지 못하고 밖으로만 떠도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일만이라도 제대로 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와 열정을 거기에만 쏟으며 여태껏 살아왔다.

 

 

 아마도 그때  내 얼굴은 이랬을 거다. 희망도 의미도 없던 그 때.

 

 

 

집에 있는 빠꼼이가 아닌 돌아다니는 멍청이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매너리즘에 빠져들었던 게 분명하다. 책은 타자와의 대화임에도 나는 그저 공부만을 위해 읽었을 뿐이다. 그러니 안다는 인식만 확고해져서 은연 중 난 아는 게 많아라는 착각에 빠져들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가르치려고만 들었던 것이다. 그런 경우 책을 읽으며 앉아서 유목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알량한 지식의 파편에 갇혀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됐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니 자연과 교감을 하거나 인간과 소통할 수 있도록 개방되기보다, 나 자신의 오감을 닫고 자부심만을 한껏 치켜세운 내가 한 때는 어마어마했다고 소리치는 소영웅주의에 갇히게 되었다.

 

첫 임용에서의 실패는 어찌 보면 나를 전면적으로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줬다. 그건 여태껏 살아온 삶에 대해 되돌아보게 했고, 다른 삶을 바라게 했다. 바로 그때 신문지에 난 다산연구소에서 주최하는 대학생 실학순례라는 문구가 나의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무언가 획기적인 변화를 열망하고 있던 그때, 나의 전공에 가까우면서 다양한 경험들까지 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이건 나를 위해 준비된 거다는 생각으로 참여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하지만 문제는 참여 대상이 대학생과 대학원생이었기에, 나처럼 졸업을 한 사람은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예전 같았으면, ‘나는 안 되는구나라는 것을 아는 순간 마음을 고이 접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기본적인 생각이 바뀌었고, 이 여행만은 꼭 하고 싶었기에,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해볼 참이었다. 비록 규정에 따라 안 된다는 말을 듣게 될지라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도전은 해보기로 했다. 분명한 건 뜻하는 곳에 길이 있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 광고를 보는 순간 필이 빡 왔다. '이건 가야만 해!'

 

 

 

넘어진 그곳에 서다

 

무엇을 하든 임용에 합격한 후에 하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임용이 된 후에 할 일 목록을 만들기도 했고, 그런 영광의 순간을 위해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첫 임용시험에서 보란 듯이 떨어지고 말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중등임용 시험의 경쟁률이 높으니, 첫 시험에서 떨어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닌,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임용을 보는 사람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첫 시험은 예행연습 삼아서 보는 거야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도 원체 기대도 컸고, 4년 간 최선을 다해 달렸다고 생각하니 떨어짐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삶이 언제고 맘처럼 되고, 순탄했던 적은 별로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때의 충격은 너무도 컸다. 어찌 보면 그건 임용공부만 하며 1년을 보낼 수 없는 가정환경에서 기인하는 충격인지도 모른다. 집이 좀 넉넉해서 맘 편안하게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만은, 현실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용돈은커녕 하루하루 지낼 돈조차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시험에 떨어졌다는 낙심은 단순히 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낙담 정도가 아니라,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실존적인 문제로까지 비약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삶의 극단에 내몰렸다. 그리고 그 순간 온갖 비극을 가슴에 안은 듯, 사시나무처럼 떨며 삶의 의미마저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면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주저앉았을지도 모른다.

 

 

   ▲ 첫 시험. 거기에 모든 기대를 걸었기 때문인지, 그 실패는 쓰라렸고, 삶의 의미마저 꺾어버렸다.

 

 

 

삶이 배반한 자리에서

 

그런데 극단으로 내몰려 아무런 희망조차 찾지 못하던 그 순간에, 가슴 깊은 곳에선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건 솔직히 아이러니다. 맘대로 되어가는 순간에 희망을 느끼거나, 무언가 잘 될 것 같은 상황에서 희망을 느끼는 건 당연하지만, 아예 바닥에 내려앉아 있음에도 희망이 어렸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니 말이다. 이건 소위 정신승리라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야 좀 더 명확하게 보인다.

 

그전까지만 해도 될 것이다’, ‘열심히만 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만을 하며 저돌적으로 도전하고 있었다. 거기엔 근거도 없고, 왜 그런 식으로 낙관만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없다. 그저 현실의 암울함을 이겨내는 방식으로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앞으론 행복할 거야라는 생각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지금-여기의 삶을 부정하며 미래의 어느 순간만을 긍정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지금-여기'를 긍정하는 법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런 관점은 기독교의 사상과 매우 닮아 있다. 기독교에서 현재는 늘 저주의 순간이고, 죄 사함을 받아야만 하는 순간이다. 태어나면서도 예수의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심에 빚을 졌으니, 사는 동안 그 죄값을 갚기 위해서 죄인의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언제 죄인이 아닌,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인 축복을 누릴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살아있는 순간엔 그런 축복을 절대로 누릴 수는 없고, 죽은 이후 천국에 가야지만 겨우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실에서 느껴지는 온갖 불안과 공포, 힘겨움은 일류의 시초인 아담이 저지른 죄로 인한 것이며, 결국 천국에 간 이후에야 온갖 핍박과 저주에서 벗어나 본연의 행복을 누리게 된단다. 나 또한 기독교 사상에 그때까지 심취해 있었기에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으며, 그걸 삶의 기본 모토로 삼고 살아왔다.

 

 

▲ 기독교의 원죄의식은 현실을 부정하게 만든다. 그 늪에 나 또한 빠져 있었다.

 

 

그런데 임용에 떨어져 어떤 희망도 없이 절망만이 가득하던 그 순간, 여태껏 지금-여기를 부정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만큼 공부를 하는 내내 희망에 들떠 살았다기보다 잡을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미래의 희망찬 순간을 향해 현재를 희생물로 바치고, 속죄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니 공부하는 내내 얼굴빛은 어두웠고, 분위기는 짐짓 무거웠으며, 걸음걸이는 세상의 무게를 한껏 짊어진 양 늘어졌다.

 

그래서 그 순간부터는 지금-여기를 살아야겠다는 생각했다. 임용을 준비하며 미뤄놨던 일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저주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신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고 보니 이건 아저씨란 영화에 나오는 명대사인 내일만 보고 살아가는 놈은 오늘만 보고 살아가는 놈에게 죽는다라는 말과 같은 뉘앙스인 셈이다. 그 대사처럼 내일만 보고 살아가는 놈에서 오늘만 보고 살아가는 놈이 되겠다고 생각하다 보니,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묘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 내일이 아닌 오늘을, 그리고 지금-여기를 살아가기로 맘 먹었다.

 

 

 

실패할지라도, 도전해보다

 

그 첫 발걸음은 신문지 광고를 통해 본 실학 순례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참여할 수 있는 대상을 보는 순간, 깊은 시름에 빠지고 말았다.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학생과 대학원생이라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2월에 졸업을 한 나로서는 조건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가야겠다고 맘을 먹었으니, 그런 제약 조건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미리 대상에 들지 않는다며 포기하기보다, 어떻게든 참가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 되니 말이다. 여기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독후감을 제출해야 하는데, 이때 읽어야 할 책들이 나의 전공(한문교육)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책이었다. 그러니 그 누구보다도 내가 훨씬 유리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유리하다 해도 독후감을 써야 하는 이상,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직접적인 평가를 받는 건 아니지만, 독후감을 통해 자격 조건은 되지 않지만, 열심히 준비했으니 참가해도 되겠어라는 평은 받고 싶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몇 날 며칠을 끙끙 앓았는지 모른다. 독후감을 보는 순간부터 좋은 인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씨줄과 날줄로 직조하듯 정성스레 한 자 한 자 써가며 나의 마음을 담았다.

 

독후감은 제법 맘에 들었다. 여러 날 고민한 생각들이 알알이 잘 박혀 있고,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다고 느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일 뿐, 정작 심사자들이 보고 판단해야 할 일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보내며 참가 기준에는 들지 않지만, 전공과 관련이 깊어 꼭 참석하고 싶으니, 좋은 결과 바라겠습니다라는 말로 참가의욕을 한껏 어필했다.

 

 

  ▲ 참가하고 싶다는 마음을 독후감에 담았다. 과연 통할까?

 

 

 

지금-여기를 축복하는 삶이 만든 기적

 

결과가 나올 때까지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물론 독후감은 심혈을 기울여 쓴 만큼, 당연히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원칙대로만 처리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게 기다리던 그때 마침내 ‘2007년 대학생 실학순례 대상으로 선정되었다는 메일이 오고야 말았다. 그 메일을 열어보던 순간, 그간의 불안했던, 가슴 졸였던 마음이 일순간에 위로받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무언가를 이렇게 열정적으로 하며, 그걸 위해 이렇게 여러 날 가슴 졸였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지금-여기의 삶을 중시하게 되면서 살아가는 태도와 관점이 바뀌었던 것이다. 삶이 배반했다고 해서 비극만 어리는 건 아니다. 비극 속에 어찌 보면 여태껏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넘겨버렸던 이 순간의 기쁨이 녹아들어 있기도 하니 말이다. ‘슬픔 속에 감춰진 기쁨’, ‘기쁨 속에 젖어든 슬픔을 느낄 수 있어야만 지금-현재를 긍정하며 살아갈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드디어 이제 본격적인 34일간의 실학자들의 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을 떠나야 한다. 과연 나는 실학자들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얼마나 잘 어우러지며 삶을 즐길 수 있을까? 기대와 걱정이 한껏 어리지만, 그럼에도 이 순간의 행복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이제 그 변화무쌍한 여행의 속으로 흠뻑 빠져 들어보자.

 

 

▲ 이제 3박 4일의 그 여행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인용

사진 / 여행기 /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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