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씨 노인의 묘지명
유수묘지명(兪叟墓誌銘)
이건창(李建昌)
유씨 노인의 묘지명을 짓게 된 연유
歲干支仲秋之月, 其日癸未. 織屨兪叟君業, 以疾終于江華下道尹汝化之隟舍. 壽七十, 無子. 厥明, 里三老集于汝化, 謀所以送叟者, 汝化來告余. 余予之以弗茹之地, 俾瘞之. 且爲之誌, 有字無名, 無譜無籍, 傷也. 其死可得以詳, 而其生則闕也.
유씨 노인의 기이한 행적
叟中歲獨身流寓, 與汝化爲主客, 三十年. 樸吶無佗能, 日惟業織屨. 然不自鬻以畀汝化, 汝化鬻得米, 則遺之使炊. 不得, 或累日不炊. 里人無所持來, 求屨叟卽與, 或匿直不以還, 久亦不自往索. 故或終年, 一步不出門. 余家與汝化相望而近, 然余竟不識叟面, 叟殆非庸人者歟.
성현과의 공통점
抑余甞悲古昔聖賢終身未甞一事行於世, 而其所業, 皆所以行者也. 今叟亦終年未甞一步行於路, 而其所業, 亦惟所以行者也. 雖其具鉅細有不同, 而其勤而無所用於己則同, 又可悲也.
유씨 노인이 성현보다 나은 이유
然聖賢旣不能自行, 而天下又卒不用其道. 反以招譏謗, 嬰患厄, 恤焉而不寧. 若叟固無意於行, 而隣里之人, 猶用其屨而歸其直, 叟得以食其力, 以老以終無他患. 使叟果庸人也, 則可以無憾, 叟而果非庸人也, 抑又何憾.
銘曰: “五穀芃芃民所寶. 斂精食實委枯槁. 惟叟得之以終老, 生也爲屨葬也藁.” 『明美堂集』 卷十九
해석
유씨 노인의 묘지명을 짓게 된 연유
歲干支仲秋之月, 其日癸未.
때는 간지 8월 계미일이었다.
織屨兪叟君業, 以疾終于江華下道尹汝化之隟舍.
짚신 짜는 게 유수군의 일이었는데, 병들어 강화하도 윤여화의 빈 집에서 죽었다.
壽七十, 無子.
나이 70살에 자식은 없었다.
厥明, 里三老集于汝化,
다음날 마을의 세 장로들이 여화의 집에 모여
謀所以送叟者, 汝化來告余.
유수의 장례문제를 논의했고 여화는 나에게 와서 사실을 알렸다.
余予之以弗茹之地, 俾瘞之.
나는 밭 갈아도 먹지 못할 땅을 주어 유수를 묻도록 했다.
且爲之誌, 有字無名,
또한 그를 위해 묘지(墓誌)를 지었으니 유수는 자(字)는 있으나 이름은 없고
無譜無籍, 傷也.
족보도 호적(戶籍)도 없음이 속상했다.
其死可得以詳, 而其生則闕也.
그가 죽은 것에 대해선 소상히 알지만, 그 태어난 것은 모른다.
유씨 노인의 기이한 행적
叟中歲獨身流寓, 與汝化爲主客, 三十年.
유씨 노인은 중년에 홀로 흘러 다니며 살다가 여화와 함께 주객이 된 지 30년이다.
樸吶無佗能, 日惟業織屨.
질박하고 어눌하여 다른 재능은 없었고 날마다 짚신 짜는 일만 했다.
然不自鬻以畀汝化, 汝化鬻得米,
그러나 스스로 팔진 않았고 여화에게 주었으며 여화가 팔고서 쌀을 얻어오면
則遺之使炊.
그로 하여금 불을 때어 밥을 짓게 했다.
不得, 或累日不炊.
그러지 못하는 날엔 혹 여러 날 동안 밥불을 때지 않았다.
里人無所持來, 求屨叟卽與,
마을사람들이 가져오는 것 없이 와서는 짚신을 구하더라도 유씨 노인은 곧 주었으며,
或匿直不以還, 久亦不自往索.
간혹 값을 숨겨 되돌려주지 않더라도 유씨 노인은 오래도록 스스로 가서 찾아오지도 않았다.
故或終年, 一步不出門.
그렇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문을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余家與汝化相望而近,
우리 집과 여화네 집은 서로 바라보일 정도로 가까운 데도
然余竟不識叟面, 叟殆非庸人者歟.
나는 아직까지도 그의 얼굴조차 모른다. 그는 아마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던 듯하다.
성현과의 공통점
抑余甞悲古昔聖賢終身未甞一事行於世,
또한 내가 일찍이 슬퍼하는 것은 옛적의 성현은 종신토록 하나의 일이라도 세상에 행하여지고자 하지 않았지만,
而其所業, 皆所以行者也.
유수가 일한 것이 모두 세상에서 행하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今叟亦終年未甞一步行於路,
지금의 노인은 또한 죽도록 길에 걸어 다니지 않았지만
而其所業, 亦惟所以行者也.
그가 일한 것으로 또한 행하여지고 있다.
雖其具鉅細有不同,
비록 갖춰진 규모가 같진 않지만
而其勤而無所用於己則同, 又可悲也.
부지런히 하고 서로 자기에게 쓰는 것이 없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니, 또한 슬퍼할 만하다.
유씨 노인이 성현보다 나은 이유
然聖賢旣不能自行, 而天下又卒不用其道.
그러나 성현은 이미 스스로 행하지 못했고 천하 또한 마침내 그 도를 사용하지 않았다.
反以招譏謗, 嬰患厄, 恤焉而不寧.
그런데도 도리어 비방을 불러왔고 환란에 걸려들어 근심스럽고 편하지 않았다.
若叟固無意於行,
그러나 노인은 본래 행하여지는 데 뜻이 없었지만
而隣里之人, 猶用其屨而歸其直,
이웃마을 사람들이 오히려 그의 짚신을 사용하고 그 값을 치루니,
叟得以食其力, 以老以終無他患.
노인은 이런 이유로 자신의 힘으로 밥을 먹을 수 있었고 늙어 죽도록 다른 근심이 없었다.
使叟果庸人也, 則可以無憾,
만일 노인은 과연 평범한 사람이라고 한들 섭섭하지 않을 것이며,
叟而果非庸人也, 抑又何憾.
노인은 과연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한들 또한 무엇이 섭섭하리오.
銘曰: “五穀芃芃民所寶. 斂精食實委枯槁. 惟叟得之以終老, 生也爲屨葬也藁.” 『明美堂集』 卷十九
묘지명은 다음과 같다.
五穀芃芃民所寶 | 오곡이 쑥쑥 자라니 백성이 보배로 여기도다. |
斂精食實委枯槁 | 알곡을 거둬 열매를 먹고서 마른 볏짚은 버리는 구나. |
惟叟得之以終老 | 오직 노인만이 그것을 얻어 생을 마쳤으니, |
生也爲屨葬也藁 | 살아선 짚신 짜고 죽어선 멍석에 덮였다네.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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