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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05.22(금) - 금지된 욕망, 그리고 한문공부 본문

건빵/일상의 삶

20.05.22(금) - 금지된 욕망, 그리고 한문공부

건방진방랑자 2020. 5. 2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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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부가 하고 싶다

 

 

시험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공부하고 싶다라는 말이 얼마나 황당한 말인 줄 알 것이다. 그건 마치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했더니 서울대 들어갔어요.’라는 말이나 열심히 살았더니 기우가 집을 사서 아버지가 지하실에서 나왔어요(영화 기생충).’라는 말처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말이다.

공부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해야만 하니 하는 것이고, 재미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결과를 내야하니 하는 것이다. 그러니 때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렇게 볕도 좋고 꽃도 한가득 핀 날에 좁은 책상에 틀어박혀 책과 씨름이나 하고 있나라는 자괴감이 들고, ‘내가 합격만 해봐라 책엔 더 이상 손도 대지 않는다는 희망을 꿈꾸기도 한다. 이처럼 공부를 하려 맘먹은 때부터, 시험을 위한 공부를 시작한 때부터 공부는 하기 싫고 언제든 관두고 싶은 것이 되기 마련이다.

 

 

좁은 공간에 갇혀 세상을 만나는 순간들이다.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는 때라 어쩔 수 없다.    

 

 

 

금지된 욕망

 

재밌는 실험이 있다. 이른바 하지마!’라는 실험이 그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부터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하면 그 말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머릿속엔 코끼리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 설화에 담겨져 있듯 절대 뒤를 돌아봐선 안 돼!”라고 하면 평상시 잘 돌아보지도 않던 사람이 이때만큼은 이상하게도 뒤를 돌아보고 싶어지게 된다. 그러니 성경에선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는 와중에 그곳을 탈출하던 롯의 가족은 뒤돌아보지 말라는 신의 명령에 따라 잘 도망가는 듯했지만, 결국 금지된 욕망을 참지 못하고 롯의 아내가 뒤돌아보아 소금기둥이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됐던 것이다.

 

 

금기를 어기면 그에 따른 형벌을 받게 된다. 소금기둥으로 변한 롯의 아내.  

 

 

또한 판도라의 이야기도 이와 마찬가지다. 제우스는 신 헤파이스토스(공예기술자, 대장장이)를 불러 여자인간을 만들도록 하자 판도라Pandora(모든 선물을 받은 여자)라는 여자를 만들어낸다. 그러자 제우스는 판도라의 탄생을 축하하며 상자를 주면서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는 금기의 말을 남기게 된다. 그런 금기의 말은 판도의 뇌리 속에 깊숙이 박혔고 열어보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욱 자신의 발걸음을 상자 앞으로 끌어들이는 마력을 갖게 했다. ‘도대체 저기에 뭐가 있기에 열어보지 말라고 한 거야?’라는 작은 호기심은 들불처럼 타올라 존재를 뒤덮기 시작했고 결국 프로메테우스의 동생과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와중에 어느새 커질 대로 커진 궁금증을 스스로 참지 못하고 상자를 열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자 그 상자에 있던 온갖 나쁜 감정들, 질병들과 같은 것들은 모두 다 빠져 나왔을 때 화들짝 놀라 상자를 닫는 바람에 마지막 남아있던 희망만이 상자 속에 고이 남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세상엔 희망을 뺀 부정적인 감정들과 온갖 질병들만이 창궐하는 암흑세상이 된 것이다.

이처럼 ‘~하지마!’라는 언명은 단순히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욕망을 낳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차라리 그 말 자체를 하지 않았다면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볼 일도, 판도라가 상자를 열어볼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금기어로 제시된 순간부턴 오히려 크나큰 욕망으로 돌변해 깨고 싶고 범하고 싶은 것이 된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의 그림 판도라Pandora, 1896년 작품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올해 전 세계는 코로나 전염병으로 유래 없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사람은 대중과 만나서 함께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이 시기만은 사람을 가급적 만나지 말라고 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협동학습이 학생들의 정서발달 및 인지발달에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던 사람들도 지금만은 개별학습을 하며 교사 중심의 강의식 수업이나 온라인 수업을 하도록 권장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처럼 코로나는 사회의 기본 가치조차 한순간에 바꾸며 하기를 권장하던 사회에서 만나지 마!’, ‘모이지 마!’, ‘면대면으로 이야기 나누지 마!’와 같이 금지가 일상이 된 세상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나 때가 되면 당연히 문을 여는 도서관이나 여러 공공장소들은 문을 닫기에 이르렀고 3월이면 늘 입실을 허용해주던 임용고시반은 여러 차례 미룬 끝에 결국 1학기 임고생 반원 모집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코로나는 전세계를 바꿔놓았으며 함께 모여사는 것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올해는 1월까지 시험을 보느라 공부합격이란 생각 외엔 한숨조차 돌릴 여지가 없이 마구 달려야 했다. 당연히 시험이 끝나고 나니 긴장은 순식간에 풀릴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한문공부는 더 이상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였다. 더욱이 2월에 나온 최종 결과는 불합격이었으니 한동안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한동안 한문과는 척진 사람처럼 행동한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더욱이 임용고시반 모집은 3월에나 하게 되니 한 달 가까이는 놀 수 있다고 생각하여 원 없이 놀았고 정말 오랜만에 게임 삼매경에 빠져 오리ori’ 1편과 2편을 모두 다 깨고 그토록 하고 싶었던 블러드 스테인드(Bloodstained: Ritual of the Night)’까지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만큼 임용공부를 시작하면서 한 번도 맘먹어본 적 없는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고 마음을 다잡기 위한 휴지기를 둘 수 있었다.

 

 

 

오랜만에 게임의 세계에 흠뻑 빠졌다. 동화 같지만 엄청난 컨트롤을 요구하던 게임.   

 

 

하지만 그땐 몰랐다. 당연히 3월이 되면 임용고시반에 다시 들어가게 될 줄 알았고, 3월이 되면 다시 김형술 교수가 진행하는 한시 스터디가 진행될 줄 알았다. 그리고 그에 따라 마음을 다잡고 한문공부를 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예년이면 으레 진행되던 모든 것들이 좌초될 줄이야. 학교가 개강을 하지 않으니 김형술 교수의 스터디가 진행될 리 만무했으며 당연히 반원을 모집할 줄 알았던 임고반도 사실상 개점휴업을 하게 됐던 것이다. 그렇다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할 수 있냐 하면 위에서 말했다시피 열람실이 모두 문을 닫으며 그 또한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때 매우 재밌는 상황이 펼쳐졌다. 모든 게 금기가 되고 공부조차도 쉽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하지마!’라는 실험처럼 저절로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는 사실이다. 갑자기 한문이 죽도록 보고 싶어졌고 한시 스터디도 죽도록 하고 싶어졌다. 때론 봐야만 하니 보던 원문들도 해석을 하며 보는 재미가 있었으며 시간이 아까워 보는 척이라도 해야 했던 한문관련 서적들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작년까지처럼 임고반에 앉아, 도서관에 앉아 편안하게 공부할 순 없었지만 제한된 상황 속에서 하나하나 해나가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단지 아쉬운 건 한시 스터디가 언제 시작될지 모른다는 거였는데 하지만 이 또한 김형술 교수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하며 저번 주부터 시동을 걸어서 마침내 본격적으로 진행되게 되었다. 금지되었기에 공부가 하고 싶어진 인생의 아이러니, 올해의 공부는 이런 아이러니를 만끽하며 시작하게 됐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이렇게 적막이 흐르는 진리관이라니. 늘 불야성처럼 켜져 있던 임고반의 불도 벌써 몇 달째 꺼져 있다.  

 

 

 

2. 노인행(老人行)과 지지위지지(不知爲不知)

 

 

공부할 수 있는 곳들이 문을 닫거나 모집을 하지 않게 되며 사라지게 되자, 오히려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비록 공부장소는 임용고시반에서 집으로 바뀌었지만 원체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한 상태에서 하다 보니 공부의 맛을 충분히 느끼며 하나하나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올해의 공부 공간. 내 방에서 무르익는 학문의 열정. 

 

 

 

18년부터 이어져 오던 스터디 20년에도 계속된다

 

2018년엔 무작정 일면식도 없는 상황에서 교수님이 진행하는 스터디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들이대고 봤었다. 공부는 해야만 했는데 아는 건 하나도 없고 더욱이 스터디팀을 꾸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들이댐은 어찌 보면 궁지에 몰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심정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김형술 교수는 공부하고 싶은 사람 모여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그런 흐름은 작년까지 도도하게 유지되어 올해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학교의 개강 연기에 따라 스터디도 좀처럼 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을 때 김형술 교수는 너무 미루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어 결국 513일에 각 학생들에게 전화를 걸어 스타트를 천명하기에 이르렀고 520일엔 첫 스터디가 열리게 되었다.

 

 

스터디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함께 모여 스터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코로나로 대학교 개강은 2학기로 연기되었고 그에 따라 대학교의 강의실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살다 살다 공부할 장소를 구하지 못해 스터디를 하지 못할 상황에 몰리게 될 거란 건 전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늘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할 의지가 없음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핸 의지는 충만하되 할 장소를 구하는 게 쉽지가 않으니 김형술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면 우리 집에서라도 합시다라고 말을 했다. 그건 곧 단순히 스터디를 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든 이 스터디를 제대로 된 공부모임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을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공부장소를 구하는 문제라는 복병에 좌초할 뻔했던 상황은 그렇게 마무리되었고 편안하게 스터디를 준비하기만 하면 됐다. 물론 스터디 당일에 스터디 장소가 교수님의 댁에서 커피숍의 스터디룸으로 변경되긴 했지만 어찌 보면 이것 또한 뜻하는 바에 길이 있다는 유명한 말이 실질적으로 발현된 예가 아닐까.

 

 

장소가 변경되었다. 카페에서의 스터디는 정말 오랜만이다.   

 

 

 

 

노인행을 공부하다

 

첫 스터디에서 내가 맡게 된 원문은 성간의 노인행老人行이란 작품이다. 이미 19일에 썼던 기록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었다.

 

 

다시 스터디를 해야 하는 이 순간에 나에게 솔직하자는 생각이 먼저 든다. 겨우 2년 동안 공부한 것만으로 나의 한문실력이 월등할리는 없다. 그저 이제 첫 발걸음을 떼는 사람처럼 모르는 게 훨씬 많은 초심자일 뿐이다. 그러니 스터디를 준비하면서도 번역본이 있지만 참고하려 하지 않았고 그저 어설프게 나마 내가 해석할 수 있는 그대로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없으니 나를 인정하기 쉬웠고 스터디에서 여러모로 배울 테니 그저 있는 그대로의 실력으로 한걸음씩 가자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있어보이려 꾸미려는 마음보다 지금 나의 실력을 인정하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배우고 알면 아는 대로 말할 수 있는 정성일 것이다.

 

 

바로 논어에 나오듯 아는 걸 안다고 하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知之爲知之不知爲不知)’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이 스터디를 하는 내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전에 우치다 타츠루內田樹의 강의를 들을 때에도 배우는 사람은 모르는 게 있습니다. 잘 못하는 게 있습니다. 그러니 가르쳐주십시오라는 세 가지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논어이든 우치다 타츠루든 결국 배우려는 자세의 기본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배우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솔직한 자기 고백이고 객관적 자기 인식이다.  

 

 

나 또한 이런 생각에 충분히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에 따라 번역본이 당연히 있는 글임에도 번역은 참고하지 않고 한 구절마다 모르는 상태 그대로 소설을 써가며 한 편의 글을 해석해보았다. 그랬더니 해석에서 가장 걸리는 부분은 크게 남혼여가지기시(男婚女嫁知幾時)’독좌망연심단절(獨坐茫然心斷絶)’이란 두 부분이었다. 내용이 짧은 데도, 그래서 쉬울 것 같은데도 이 두 부분에서 여러 생각들이 몰아치니 참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럼에도 즐거웠던 이유는 지금 나의 여러 생각들을 스터디에서 풀어놓을 수 있으며 그걸 문제화함으로 아이들의 여러 의견을 청취할 수 있고 교수님의 혜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이런 고민의 지점이 스터디 내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어떤 방식으로 정리되어 가는지 지켜볼 것이고 그걸 성실하게 기록할 것이다.

 

 

여기서 스터디가 시작된다.  

 

 

 

3. 노인행에 나타난 노인의 이야기

 

 

확실히 카페에서 하는 스터디는 강의실에서 하는 스터디와 느낌이 다르다. 느낌이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았다. 첫째는 공간이 지닌 느낌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강의실은 애초에 배움을 전제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러니 잘 배워야 한다는 중압감이 작용하기 마련이지만 카페는 그렇지 않다. 편안하게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공간이기에 맘이 저절로 누그러지는 것이다. 둘째는 도구의 배치에 있다. 강의실의 책걸상은 칠판을 향해 있기 때문에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현격하게 나누어지게 된다. 물론 책걸상의 배치를 바꿔서 동그랗게 만들 수도 있지만 시간이 들고 품이 들기 때문에 애써 그렇게까지 하진 않는다. 그에 반해 이곳은 아예 스터디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답게 중간에 긴 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곳에 우리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그러니 일방적이라기보다 상방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며 자연스럽게 의사를 주고받게 된다.

바로 이와 같은 두 가지 차이점으로 인해 스터디의 분위기는 예전과는 달리 화기애애해졌고 작년 1114일 마지막 스터디를 한 후 무려 6개월 만에 재개되는 스터디인 만큼 배움의 파토스pathos가 일렁거렸다.

 

 

옹기종기 앉아 스터디를 한다. 사진만으로도 전해지는 열띤 분위기.   

 

 

 

노인행을 해석하며 두 가지 부분이 걸리다

 

성간이 지은 노인행老人行이란 시는 그렇게 길지 않다. 복잡한 내용이 있다거나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지도 않으니 쉽게 이해될 거란 기대도 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해석을 해보면 분명히 어렵지 않은 내용임에도 두 군데서 머뭇거리게 된다. 그건 마치 장자』 「양생주포정해우庖丁解牛에서 나오는 비록 그렇다 해도 매번 힘줄과 뼈가 엉킨 곳에 이르면 저는 하기 어려운 것을 보고서 두려운 듯 긴장하며 눈으로 세심히 보고 칼의 움직임은 섬세하게 합니다(雖然, 每至於族, 吾見其難爲, 怵然爲戒, 視爲止, 行爲遲).’라는 말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분명히 늘 소의 발골작업을 했을 테니 칼을 드는 순간부터 전광석화로 뼈와 살을 분리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일지라도 뼈와 힘줄이 엉킨 곳에 이르면 그전의 경쾌하던 손놀림과는 달리 바짝 긴장하며 칼의 움직임에 집중한 채 천천히 칼질을 한다는 것이다. 그처럼 아무리 쉬워 보이는 글조차도 턱하니 막히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부분이야말로 생각할 거리이자, 고민의 지점이기도 하다. 이 시를 보면서 턱 하니 막혔던 지점은 바로 남혼녀가지기시男婚女嫁知幾時라는 부분과 독좌망연심단절獨坐茫然心斷絶이란 부분이었다.

 

 

 

노인의 목소리는 어디까지인가

 

우리에게 익숙한 르뽀라는 말은 르포르타주Reportage라는 프랑스어에서 왔다. 이 말은 현장에 가서 사건과 인물을 취재하고 담아내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접어들며 객관이라는 말 자체가 거짓이다라고 생각하게 되며 인식의 지평이 확장되었지만, 그럼에도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려는 그 행위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기존에 있던 서정시와는 달리 서사시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현장에서 만난 뭇 민초들의 목소리를 시의 형식을 빌려 담아내려 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니 민초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담긴 경우엔 어디까지 그들의 목소리로 볼 것이며, 어디까지를 서술자의 평가로 볼 것인지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

이 시를 보면 일흔 살 노인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부분은 매우 명료하게 드러난다. 바로 자도自道’, 스스로 말했다는 구분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이야기가 끝나는 부분은 어디인가?’라는 것이다. 처음에 해석할 때만 해도 끝부분까지를 모두 노인의 이야기로 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모두 다 노인의 푸념정도로 생각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작가가 초반에 등장해 상황을 묘사했는데 마지막에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지 않은 채 끝내는 건 좀 이상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 생각으로 원문을 다시 보니 마지막의 獨坐茫然心斷絶이라는 말은 성간의 시평 정도로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두 번째 생각으로 생각을 정했고 아이들의 의견도 궁금했기 때문에 문제는 위 시에서 노인이 말하는 부분의 시작 와 끝 를 찾아 번역하시오라고 냈던 것이다.

 

 

노인의 진술이 시작되는 부분과 끝나는 부분
초반 종반
余生年七十 ~ 獨坐茫然心斷絶 余生年七十 ~ 牛蹄脫知奈何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스터디에 왔다. 그리고 이걸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임형택 선생은 전혀 다르게 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중간 중간 노인의 진술을 인용하며 그에 따라 작가의 인상을 담아낸 것으로 풀어낸 것이다. 이를 테면 여생년칠십余生年七十은 노인의 말이지만, ‘수각동준면심흑手脚凍皴面深黑은 작가의 평가이고, ‘남혼녀가지기시男婚女嫁知幾時는 노인의 말이지만, ‘단의람초재과슬短衣襤幓纔過膝은 작가의 평가라는 것이다. 내가 고민한 것과는 완전하게 다른 해석인 셈이다. 이에 대해 아이들의 의견도 여러 갈래로 나누어졌고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자 김형술 교수는 이렇게 짧은 시일 경우에 노인의 진술을 중간중간 끊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시에서 시평이 있다고 생각할 경우 차라리 노인의 말이 끝나는 부분을 우전도학우체탈石田䂽确牛蹄脫이라고 보는 게 더 신빙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봐야 쇠발굽이 돌밭에 빠졌죠라고 노인이 말을 마치자 작가가 쇠발굽이 빠졌는데 어이할 거나. 노인은 홀로 앉아 망연자실하게 마음이 끊어진 듯 보였네.’라고 평가를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의 시와 같은 경우는 논평이 따로 있다고 보기엔 힘들 거 같습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을 논평으로 보기엔 논평의 성격이 매우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경우엔 마지막까지 노인의 말로 보는 게 더 나을 듯합니다.”

 

 

노인의 진술이 끝나는 부분
건빵 보완 임형택 스터디 결론
牛蹄脫知奈何 石田䂽确牛蹄脫 중간중간 작가의 개입 獨坐茫然心斷絶

 

 

민초들의 생생한 삶을 담아내려는 손길들.   

 

 

 

 

4. 천하의 곤궁한 백성인 노인을 시로 담아내다

 

 

그 다음으로 노인행老人行이란 시에서 뜨거웠던 문제는 노인은 과연 결혼하여 자식까지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결혼도 하지 못한 독거노인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이 시의 노인을 보고 있으면 영화 '워낭소리'의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노인은 미혼인가

 

이 시를 해석하며 여러 번 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노인이 결혼하여 아이들까지 있다고 보긴 어려웠다. 우선 1구의 치쌍비雉雙飛라는 말을 통해 꿩이 쌍쌍이 날아가는 모습을 아련히 보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보였다. 보통 시에서는 쌍으로 나는 새를 묘사하여 자신의 외로움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을 펴곤 한다. 같은 작가가 쓴 채련곡採蓮曲에서도 원앙쌍비鴛鴦雙飛라는 구절을 써서 연밥 따던 처녀가 질투하는 모습을 형용했으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리왕의 황조가黃鳥歌에서도 새와 자신을 대조하며 자신의 외로움을 더욱 극대화시키고 있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치쌍비雉雙飛는 자신의 홀로됨을 극대화하는 표현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더라도 아내나 자식들의 그림자는 조금도 엿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짧은 내용일지라도 어느 부분에선 그림자만이라도 등장할 법한데도 아무리 봐도 그들의 체취는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 구절에 이르러 돌밭을 가는 순간에 이르러 쇠발굽이 빠져 먕연자실하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자식들이 정말 있었다면 함께 농사를 지으며 도와줄 수 있을 텐데도 자식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바로 이런 세 가지 사례들을 통해 노인은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일흔 살이 된 노인으로 결론지은 것이다.

 

 

노인은
미혼?
1. 꿩이 쌍쌍이 날아가는 걸 보고 한숨 짓는 노인의 모습
2. 아내와 자식들의 그림자조차 시엔 조금도 드러나지 않음
3. 돌밭을 가는 노인의 곁에 자식들은 조금도 돕질 않음

 

 

 

쌍쌍이 나는 새가 묘사된 건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미혼일 때와 기혼일 때의 해석 차이

 

바로 이와 같은 결론 때문에 남혼녀가지기시男婚女嫁知幾時라는 구절이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바로 자신의 젊었을 적 이야기라는 걸로 유추하게 되었고 젊은 시기에 손발이 동상 걸리고 얼굴은 매우 타는 힘겨운 생활 때문에 남자는 장가가고 여자는 시집가는데도 내가 어떻게 장가갈 생각이나 했겠는가?’라는 말로 풀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도 그다지 매끄럽진 않았기 때문에 스터디에서 이걸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스터디에 와서 이야기를 나눠 보니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가 자식을 시집 장가보내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했더라. 그렇게 해석하면 아들 딸 시집 장가가는데 그때 언제인지 알 수 있으랴?’라는 말이 된다.

 

 

男婚女嫁知幾時
대상 노인의 젊었을 적 자기 자신 노인의 자식들
해석 남들은 시집 장가가는데 내가 어느 때에 장가갈 줄 알겠는가? 나의 아들 딸 시집 장가, 그때 언제 알 수 있겠는가?

 

 

이처럼 노인의 현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완전히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김형술 교수도 여기에 대해선 충분히 생각할 만한 거리라는 걸 알려주며 여러 자료를 찾아보고 결론을 지어야 한다고 말해줬다.

 

 

 

천하의 궁민이었던 노인을 보는 안쓰러운 성간의 심정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만약 노인이 미혼이라고 한다면 기혼일 때에 비해 비감은 더욱 짙어진다고 말해줬다. 노인은 왜 결혼도 하지 못한 채 늙어가야만 했던가? 그건 두 말할 나위 없이 가난했기 때문이다. 가난하니 손발이 동상 걸려 트고 얼굴이 새카매지도록 일만 해야 했고 그저 무릎만 가릴 정도의 홑옷 누더기만 걸치고 근근이 살아야했던 것이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라도 살아갈 수 있었다면 동네처자를 자연히 만나게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히도 젊은 날에 징집되어야 했고 고향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백발이 성성해지고 만 것이다. , 그의 젊음은 가난과 군역에 완전히 희생당하고 말았다. 이 얼마나 서글픈 이야기인가? 그런데도 새로운 세계를 열겠다며 정도전 같은 신진사대부들이 의기투합하여 열어젖힌 조선이란 사회는 전혀 책임도지지 않고 일말의 가련하게 여기는 마음조차 가지고 있지 않으니 분통이 터질 만한 일이다.

맹자孟子에서 환과고독鰥寡孤獨을 말하며, 이들이야말로 천하의 곤궁한 백성들로 하소연할 곳도 없는 사람들이니 문왕이 정치를 펴고 인정을 베풂을 반드시 이 네 명의 사람들에게 급선무로 했었다(天下之窮民而無告者. 文王發政施仁, 必先斯四者)’라고 말했다. 노인이 미혼인 상황이라면 노인이야말로 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먼저 돌봐야할 궁민窮民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궁민으로서의 노인을 보는 성간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그러니 이와 같은 시를 남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리라.

 

 

정치를 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돌봐야 할 네 부류의 사람들. 환과고독.   

 

 

 

인용

지도 / 임용 공고문 / 20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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